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이야기 하나 더.

다른 동물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가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하고 믿는 능력덕분이다. 그 능력 덕에 우리는 더 큰 집단을 이룰 수 있고, 하나의 국가나 민족을 이룰 수 있고, 종교와 신앙, 그리고 윤리를 통해 집단을 통제할 수 있었다. 과학과 문화 역시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믿을 것인가에 따라 발전해왔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란 이데올로기이기도 한데, 사피엔스의 현재 지배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다. 책의 막바지에 나오는 '쇼핑의 시대'에서 한 대목.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생산량을 늘려야만 한다. 상어가 계속 헤엄치지 않으면 질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누군가 제품을 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조업자와 투자자는 함께 파산할 것이다. 이런 파국을 막으면서 업계에서 생산하는 신제품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항상 구매하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종류의 윤리가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소비지상주의다. (중략)

소비지상주의는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사람들로 하여금 제 자신에게 잔치를 베풀어 실컷 먹게 하고, 자신을 망치고, 나아가 스스로 죽이게끔 한다. 검약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말한다. (중략)

이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소비자다. 우리는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상품들을 무수히 사들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것들을 말이다. 제조업자들은 일부러 수명이 짧은 상품들을 고안하고, 이미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제품을 불필요하게 갱신하는 새 모델을 발명한다. (중략)

소비지상주의 윤리가 꽃피었다는 사실은 식품 시장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통 농업사회는 굶주림이라는 무시무시한 그늘 속에서 살았다. 오늘날의 풍요사회에서 건강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만인데, 그 폐해는 가난한 사람이 (이들은 햄버거와 피자를 잔뜩 먹는다) 부자들보다 (이들은 유기농 샐러드와 과일 스무디를 먹는다) 훨씬 더 심각하게 입는다. 미국 사람들이 해마다 다이어트를 위해 소비하는 돈은 나머지 세상의 배고픈 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액수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적게 먹으면 경제가 위축될 테니)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 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소비지상주의 윤리와 사업가의 자본주의 윤리를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 후자에 따르면 이윤은 낭비되어서는 안 되고 생산을 위해 재투자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오늘날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는 노동의 분업이 존재한다.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값비싼 사치품에 돈을 흥청망청 썼지만, 농부들은 한 푼 한 푼을 아끼면서 검소하게 살았다. 오늘날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부자는 자산과 투자물을 극히 조심스럽게 관리하는데 반해, 그만큼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빚을 내서 정말로 필요하지도 않은 자동차와 TV를 산다.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동전에는 두 계율이 새겨져 있다.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중에서) 

 

아, 정말 명쾌하게 세상 만사를 이야기로 풀어간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 정국 하에서 빈부의 격차는 날로 커져간다. 이건 전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똑같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중에서 한국은 유독 좀 심한 편이다.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의 책을 읽고 있다. 과격한 사회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한 샌더스의 반격. 

"미국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소득의 대부분을 최상위 1퍼센트가 가져가는 상황이야말로 과격합니다. 또한 (월마트 소유주) 한 집안의 경제적 부가 하위 1억 3000만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사실, 이런 미국의 현실이 과격한 것입니다."

'사피엔스'를 읽다 보니 자본주의란 필연적으로 경제의 양극화를 가져오는 이데올로기구나 싶다. 물론 경제가 굴러 가기 위해서는 소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그냥 두면 남은 이익을 투자로 돌리지, 노동자들에게 이익을 배분하거나 사회에 환원하지 않는다. 쉬운 해고가 용이해지면 더 많은 청년을 고용하기보다, 오히려 수익률을 높이고 자본의 축적을 도모할 것이다. 그게 자본의 생리다. 그걸 정부 여당이라고 모를까? 몰라서 '쉬운 해고 노동 개악'을 외치는 걸까? 자본주의 시대에서 돈이 세상의 주인이다. 권력은 자본의 논리에 동원되기 쉽다. 


주주 자본주의에서는 1원 1표지만, 민주주의에서는 1인 1표다. 자본에 의해 끌려가는 정치 권력을 그나마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투표다. 그점에서 나는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샌더스의 행보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흔히 미국이나 일본의 현재가, 한국 사회의 수십년 후 미래라고 말한다. 지금 미국과 일본을 들여다보면 우울하다. 특히 재무장을 추진하며 우경화되고 있는 아베의 일본은 특히 더 그렇다. 아베의 일본보다는, 버니 샌더스의 미국에 희망을 걸어본다.

 

'사피엔스' 600페이지가 넘는 대장정이었지만, 사실 책을 읽은 건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다만 책을 덮고도 고민은 몇날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소비지상주의의 시대, 짠돌이는 어떤 이데올로기로 스스로를 무장해야 하나?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사피엔스'에서 얻은 고민, 버니 샌더스에게 물어보련다.

그런 점에서 다음에 읽을 책은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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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9, 과학하고 앉아있네 1. 이정모의 공룡과 자연사 (원종우, 이정모 / 동아시아)

2016-30 과학하고 앉아있네 2. 이명현의 외계인과 UFO (원종우, 이명현 / 동아시아)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과학 전문 팟캐스트 방송인데, 과학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방송 내용을 책으로 묶어냈는데, 1권에선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관장이신 이정모 박사가 나와서 공룡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룡이 언제 생겼어요?"하고 물어보면, "옛날에." 그럼 "언제 사라졌어요." 하고 물으면 "또 옛날에."라고 답을 합니다. 그 오랜 옛날을 어떤 방법으로 분류하고 기억하는 게 편할까요? 

'지질시대를 보면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나누잖아요. 고생대는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페름기.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 신생대는 3기, 4기 이렇게 나눈다고 해요. 헷갈리잖아요. 요것만 따라하지면 돼요. 캄, 오, 실, 데, 석탄, 페, 트, 쥐, 백이잖아요. 제가 외우는 방법은 이거예요. 'Come'은 '오시라'죠. 'Come 오실 때 석탄 퍼오시면 튀긴 쥐포 백 마리 드릴게요.'

(17쪽)

대중 강연과 저술 활동을 많이 하는 과학자는 이렇게 어려운 설명도 귀에 쏙쏙 들어오게 참 잘한다. 자연사 박물관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우주의 모형을 보며 지구가 얼마나 작은 곳인지, 공룡이나 삼엽충의 화석을 보며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실감한다. 공룡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

 

'공룡의 멸종에 대해 생각해야 될 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공룡은 실패의 상징이 아니라는 거예요. 공룡은 어쨌든 전체로 보면 1억 5,000만 년이나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어요. 어떤 생명도 죽음을 피할 순 없지만, 지금 우리가 여태까지 지구상에서 살았던 생명의 종 가운데 99퍼센트는 과거형이거든요. 그런데 공룡은 1억 5000만 년 이상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아주 성공한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둘째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공룡이 일시에 멸종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죠. 그러니까 백악기 말에 막판에까지 살았던 공룡들은 그들 가운데서도 1퍼센트에 해당하는 거죠. 나머지 99퍼센트는 차근차근히 죽었어요. 멸종하고 어떤 새로운 게 생기고, 하나가 비워주면 누군가가 채우고 해서. 모두 다 살아 있으면 새로운 종이 생길 수가 없죠. 셋째로는 공룡이 6,500만 년 전에 죄다 멸종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공룡은 지금도 살아 있죠. 뭐로 남아 있냐면 바로 새로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오늘 공룡 이야기를 듣고 나서 "공룡이 좀 땡기네, 어디 가서 공룡 한번 먹어볼까? 할 수도 있어요. 그러고 '치맥'을 하시면 됩니다. 새는 공룡 그대로예요. (중략)

공룡 중에 큰 트럭만 한 것도 있지만, 보통 몸무게 1킬로그램 이하에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것도 있었거든요. 닭 같은 거죠. 닭을 보면서 공룡이구나 생각하면 크게 틀린 게 아니에요. 사실 새는 공룡의 후손이다. 좀 더 나아가면 새는 백악기 말 대멸종을 견뎌낸 공룡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죠.'

(같은 책 51쪽)

'주라기 공원'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면, 공군의 폭격으로 섬이 불타오를 때, 주인공들은 가까스로 헬리콥터를 타고 섬을 탈출한다. 그때 헬기 옆으로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이 잡히는 데 상당히 의미심장한 배치였다. 공룡은 멸종한 게 아니라, 새의 모습으로 우리 옆에 있다는...

책의 후반부에는 공연장에서 녹음한 팟캐스트답게 청중과의 질의응답으로 꾸며졌는데, 재미난 질문과 재치난 답이 많다.

'질문 : 거대한 몸집에 비해 공룡이 다리가 앙상해 보이는데, 관절염에 안 걸렸을까요?

답: 걸렸을 겁니다. 하지만 보통은 관절염에 걸리기 전에 뭐 잡아먹히든지 했겠죠. 공룡들이 암 걸렸다는 얘기는 못 들어보잖아요. 그 이유는 그 전에 죽기 때문이죠. 요즘 들어 갑자기 암 환자가 많아지는 이유는 오래 살고 진단법이 발달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최근 들어 몇 년 사이에 암 환자의 생존율이 엄청나게 높아졌죠. 치료법은 별로 발전된 게 없어요. 치료법이 좋아져서 생존율이 높아진 게 아니라, 암 진단법이 좋아졌어요. 요즘은 위암 같은 것은 초초기에 발견을 해요. 그러니까 옛날 같으면 꽤 커진 다음에 발견했기 때문에 생존율이 낮았던 것이고 요즘은 초초기에 발견하니까 수술해서 아무런 문제 없이 살고 있는 거죠. 공룡이 관절염에 왜 안 걸렸겠어요? 오래 살았다면 걸렸을 겁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약하면 잡아먹히니까 대체로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럴 확률이 거의 없는 거죠.' 

(같은 책 90쪽) 

아, 세상 만사 정말 명쾌하게 풀어준다. 이정모 박사님, 역시 이름난 과학 저술가 답게 쉽게 설명을 잘 해주신다.

 

다독비결 29

2015년 연말에 나온 경향신문 선정 '올해의 저자' 중 한 사람이 이정모 선생이었다. 작년에 나온 이정모 선생의 '공생 멸종 진화'가 화제였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그 책도 읽고싶어진다. '올해의 저자' 리스트 중에서 새로운 저자를 발굴하는 것도 다독의 비결이다.

 

 

좋은 저자를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 때로는 우연이 인연을 이끈다. 2권에 나오는 한국 SETI 조직위원장이신 이명현 박사님과 나의 인연이 그렇다. '10월의 하늘'이라는 과학 강연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만나 오늘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몇 해 전에는 네팔 여행 중 포카라에서 만나기도 했다. 이명현 선생님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시는데, 박사님이 하시는 과학 강연도 강력 추천 아이템이다.

다독비결 30

나는 저자 강연회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책을 읽으면 저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아 좋다. 작가 강연을 쫓아다니며, 작가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는 것은 작가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고 전작읽기를 도와준다. 이것도 다독의 비결.

이제는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린 명왕성에 대한 얘기가 책에 나오는데, 문득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요원들이 행성 이름으로 서로 암호명을 부르는데, 그 중 사이먼 페그가 자신의 암호명을 가지고 불평을 늘어놓는 대목이 있다. 
“Why do I have to be Pluto, it isn’t even a planet anymore?”

난 왜 명왕성이야? 더 이상 행성도 아니잖아?
“You can be Uranus.” 그럼 넌 천왕성할래?

 

사이먼 페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데, 극장에서 혼자 웃음이 빵 터졌다. Uranus는 누군가의 암호명으로 부르기에 참 부적절한 이름이다. 왜? 발음이 Your anus거든... 암호명, 니 똥꼬... "니 똥꼬 나와라, 오바." "여기는 니 똥꼬!" ㅋㅋㅋ

중고생 아이가 있는 집에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리즈를 추천한다.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 과학 입문서를 찾기도 힘들다. 이정모 이명현 모두 다, 과학계에서는 내로라하는 파워라이터들인데, 책에서 눈여겨 봐야할 또 한 사람이 파토 원종우 선생이다.

원종우 작가의 '태양계 연대기'도,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도 다 재미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다방면에 박식할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다. 원종우는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다. 문화운동가, 기타리스트, 작가로 활동하는 전방위 지식인인데, 무엇보다 그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는 스토리텔러의 재능이 탁월하다.

계속 이어지는 '과학하고 앉아있네' 책 시리즈가 기대된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꼭 한번 들어보시길~

http://www.podbbang.com/ch/6205

 

아, 그리고 참, 하루 늦은 발렌타인 데이 특집!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과학자들이 유성생식 찬가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엔트로피 사랑'!

시트콤 '빅뱅 이론'의 한국판 뮤비라고 보면 된다.

가사를 외워두었다가 프로포즈할 때 써먹어도 좋을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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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요즘같이 추운 날 밤 야외촬영은 진짜 힘들다. 드라마 촬영 중 추위를 잊자고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만약 말이야, 딱 한 가지 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초능력을 갖고 싶어?"

조연출이 얘기했다.

"전 공간 이동 능력이요. 그럼 아침 6시 55분까지 푹 자고 7시에 촬영 버스에 짠 하고 나타날 수 있잖아요."

조명감독이 거들었다.

"난 염력. 이 추운데 일일이 선깔고 나를 필요 없이 그냥 원하는 위치에 라이트를 딱 갖다 놓게."

장소 섭외는 천리안을 갖고 싶다고 했다. 굳이 헌팅을 가지 않고도 멀리 있는 장소를 볼 수 있는. FD는 독심술. 피디가 말을 안 해도, 다음 씬에 뭐가 필요한지 미리 알 수 있게. 한창 얘기를 하다 문득 슬퍼졌다. '젠장 초능력이 생겨도 우리는 일을 하겠다는 거잖아?'

 

 

'국내파 영어 연수' (문성현 지음 / 혜지원 출판)란 책을 보니 '3배속 직독직해 훈련법'이란 글이 있다.

지구 최고 갑부 중 한 사람인 빌 게이츠에게 누가 물었다.

"원하는 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떤 힘을, 왜 얻고 싶은가요?"

빌 게이츠가 '오래 사는 거?' 했더니 옆에 앉은 워렌 버핏이 '그건 재미 없잖아?' 하고 눙친다. 그랬더니 빌 게이츠는 'read books super fast' 책을 엄청 빨리 읽는 것이라고 답한다. 워렌 버핏이 옆에서 거든다.

"빌은 책을 진짜 빨리 읽어요. 나보다 3배는 빠르지. 말인즉슨 나는 책 읽느라 인생에서 10년을 날린거라구."

 

(아래 링크는 두 사람의 짧은 인터뷰가 있는 기사 원문, 영상은 PC에서만 열리네요.) 

http://superheroyou.com/one-superpower-gates-buffett/

 

 

빌 게이츠도 그렇지만 워렌 버핏의 독서량은 엄청나다. 일반인의 5배를 읽는다고 하고, 열 여섯살에 이미 경영 관련 서적 수백권을 읽은 걸로 유명하다. 두 사람은 책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자본주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 같다. 그런 다독가들도 책을 더 빨리 읽는 것이 소원이라니 참.

 

 

새해 결심으로 블로그에 하루 한 권씩 독서일기를 올리는데, 문제가 생겼다. 재미난 소설의 경우 나는 반나절이면 다 읽는다. 하루에 책을 2권 읽는 날도 있는데, 블로그에서는 이틀에 한 번꼴로 독서일기를 업데이트 하니까 (영어 스쿨도 올리고, 취미 교실도 하니까) 정체 현상이 빚어졌다. 그래서 어제는 포스팅 하나에 책 5권을 몰아서 올렸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어떻게 이렇게 책을 빨리 읽는 거지?'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영어 공부 덕이다.  

책을 빨리 읽으려면, 한 글자 한 글자, 따로 읽기 보다, 단어 몇개를 모아서 읽어야한다.

이를 테면, 위의 문장을 '책' '을' '빨' '리' '읽' '는' 이런 식으로 우린 읽지 않는다. '책을 빨리' '읽는 비결은' '간단하다' '한 글자 한 글자' '끊어 읽기 보다' 이런 식으로 모아서 한번에 읽는다. 한 글자 한 글자, 끊기보다 의미군으로 묶는 이유는 전화번호를 읽고 외울 때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010-3985-2687을 읽고 외운다고 해보자. (없는 번호 확인하고 예문으로 올립니다. 1234-5678은 외우기 너무 쉬워서요. ^^)

0,1,0, 3, 9, 8, 5, 2, 6, 8, 7, 이렇게는 못 외운다. 우린 흔히 3,4개씩 숫자를 묶어서 불러주고, 외운다. 010, 3985, 2687 이렇게.

_여기서 잠깐.

동양인들이 서양인보다 수학을 더 잘한다고 하는데, (각종 국제 경시대회 성적을 보면 그렇단다.) 그 이유가 발음의 차이란다. 우린 4자리 숫자를 읽을 때, 2687 이륙팔칠 혹은 이천육백팔십칠이라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two thousand six hundred eighty seven라고 읽는데, 음절수가 많아서 한번에 발음하고 외우기 힘들단다. 짧게 발음 가능한 한자 덕에 동양 아이들이 암산이 능하고, 문제도 빠르게 푼다는 얘기.

 

 

묶어서 읽기는 영어 암송의 기본이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예를 들어보자. 마법사의 돌의 비밀을 캐던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해그리드와 마주치는데 뭔가 숨기는 눈치로 허둥대며 가버린다.

헤르미온느가 해리에게 묻는다.

"What was he hiding behind his back?"

" Do you think it had anything to do with the Stone?"

"I'm going to see what section he was in."

"Dragons! Hagrid was looking up stuff about dragons! Hagrid's always wanted a dragon, he told me so the first time I ever met him."

(Harry Potter and the Socerer's Stone 230쪽 J.K. Rolwling / Scholastic)

 

 

***여기서 잠깐***

회화 공부를 위해 영문 소설을 읽는다면, 지문은 설렁설렁 넘기고 대화 위주로 읽는게 속독의 비결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대화만 읽어도 파악이 되고, 대화문을 많이 읽으면 회화가 자연스럽게 는다.

*********

위 문장을 읽을 때도, 암기할 때도, 의미 단락을 끊어서 읽고 외운다.

What was he hiding  뭘 숨겼어? 

behind his back?  등 뒤에

Do you think  생각해?

it had anything to do with  관계가 있다 

the Stone? 그 돌? (마법사의 돌)

I'm going to see  가서 봐야지

what section  어떤 부분에

he was in. 그가 있었는지

Dragons! 용!

Hagrid was looking up  해그리드가 찾아본 건 

stuff about dragons!  용에 대한 것

Hagrid's always wanted a dragon,  해그리드는 늘 용을 원했어

he told me so  내게 그렇게 말했어 

the first time  처음으로

I ever met him.  내가 그를 만났을 때

 

위의 대화를 암기하려면, 일단 10번 정도 소리내어 읽은 다음, 컨닝 페이퍼에 이렇게 적어둔다.

뭘 숨겼어? 등 뒤에. 넌 생각해? 관계가 있다고, 그 돌이랑? 가서 볼 거야, 어떤 부분에, 그가 있었는지. 용이야. 해그리드가 찾아본 건, 용에 대한 것.

 

이걸 보고 영어 문장 전체를 떠올리는 게 암기 연습이다. 이렇게 문장을 파악하면, 영어 직독 직해와 속독이 가능하고, 회화 응용이 쉬워진다.

What was she hiding under the table?

Do you think it had anything to do with Korean TV drama?

I want to know what film she is interested in.

She was looking up stuff about cosmetics. She always wanted fair skin, she told me so the first time I ever met her.

새로운 문장을 만들 때도 기본 뼈대가 되는 것은 기존에 외워둔 문장들이다. 괄호안을 상황에 맞는 단어로 채워주면 된다. 의미 단락 별로 영어를 외워두면 어떤 상황에서도 응용이 쉬워진다. 게다가 이렇게 문장을 파악하면 영어 책 읽기도 빨라진다. 한번에 몇 단어씩 묶어서 파악하는 게 저절로 버릇이 된다.

 

빌 게이츠가 탐내는 초능력을 얻는 방법? 많이 읽으면 된다. 영어책을 많이 읽고 외운 덕에 속독이 가능해졌고, 그 덕에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읽은 덕에 영어 표현이 더 풍부해졌다.

새해 영어회화 책 한권 외워보시라. 영어책을 외우는 것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습관이다.

좋은 습관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익혀두는 것이 두고두고 이득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처럼 언젠가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될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다. 내 경우, 그냥 대본을 빠르게 파악하는 드라마 PD가 되더라. ^^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좋다. 어려서 꿈은 돈 벌어서 책을 마음껏 읽는 것이었다. 천하의 빌 게이츠도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는가. 굳이 갑부가 아니어도 도서관에 가면 책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마음껏 즐기시길, 공짜로 즐기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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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시절부터 이권우 선생의 책을 좋아한다.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그의 강의를 들은 적도 있는데, 그때 느낌이 왔다. '아, 이 양반, 고수로구나.' 이런 고수는 페이스북에서 친구 신청을 해두고 그의 근황을 살핀다.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주문했다.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아,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공부로구나!

책을 워낙 많이 읽는 분인지라, 고전 곳곳에서 독서의 미덕을 찬양한 구절을 찾아내 소개한다. 그중 율곡이 권하는 독서법이다.

'대체로 글을 읽는 자는 반드시 손을 마주 잡고 반듯하게 앉아서 공손히 책을 펴놓고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모아 정밀하게 생각하고, 오래 읽어 그 행할 일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 글의 의미와 뜻을 깊이 터득하고 글 구절마다 반드시 자기가 실천할 방법을 구해본다. - 격몽요결, 63~64쪽.'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77쪽 이권우 지음/ 한겨레 출판)

유배를 떠난 다산 정약용이 자제들에게 '이제 집안이 망해 니들은 출세길이 막혔으니 과거 시험 걱정말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마음껏 읽으라'고 말하는 대목도 재미있다. 이건 내가 새겨들어야 할 글 같다. ^^

저자가 독서 강연을 가면 부모들이 아이가 만화를 너무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는데, 그때 만화를 보는 것도 책과 친해지는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한단다. 공감한다. 나도 만화를 무척 좋아한다. 만화 '슬램덩크'와 '미생'의 그림 콘티를 가지고 드라마 연출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책과 나쁜 책을 이렇게 나눈다. 재미있는 책과 재미없는 책. 재미 있는 책은 독서에 흥미를 붙여주는 좋은 책이고, 재미 없는 책은 독서가 숙제처럼 지겨운 것이라는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는 나쁜 책이다.

방학이면 아이들에게 방학 중 읽을거리로 추천도서 목록이 나오는데, 억지로 다 읽으라고 시킬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을 먼저 읽게 하여 독서가 즐거운 경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게 우선이다. 제일 좋은 것은 방학 때 학원 다니는 시간을 좀 줄여서, 방학 동안이라도 마음껏 책을 읽게 해주는 것인듯. 

저자는 책읽기는 글쓰기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나도 글쓰기를 즐긴다. 매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블로그에서 한 편 씩 올리는데, 글감이 떨어질까봐 요즘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올린다. 다른 이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나의 글을 쓰고 싶다.

'읽기가 의미의 수용이라면, 쓰기는 의미의 창조입니다. 쓰기는 능동적인 행위이잖아요. 남에게 설득당하기보다 남을 설득하려는 일이니까요. 무슨 일이든지 능동성을 띈 행위는 좀 더 기쁘고 행복하기 마련입니다. 그 어떤 희열보다 창조적 행위를 능동적으로 했을 때의 기쁨이 제일입니다. 바로 이 점을 주목하자는 겁니다. '읽자'를 강조하기보다 '쓰자'를 강조해보자는 거죠. 수동보다는 능동을, 수용보다는 창조에 방점을 찍자는 말입니다.'

(같은 책 136~137쪽)

글읽기는 누가 생각해도 쉽다. 그냥 읽으면 되니까. 하지만 글쓰기는 웬지 어렵다. 어려울 땐 고수들에게 배우면 된다. 독서의 달인답게 저자는 글쓰기에 대한 여러 책을 읽고 그중 고갱이를 소개한다.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인 '스티븐 킹'을 가상의 인터뷰로 불러내 그에게서 글쓰기 비법을 듣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덕분이다. 인터뷰 중에 소개한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도 인상적이었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강조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손을 계속 움직여라. 그러지 않으면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둘째,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셋째,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넷째,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두어라. 다섯째, 생각하려 들지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여섯째,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문득 나탈리 골드버그의 책도 읽고 싶어졌다.

****** 다독 비결 7.

독서의 달인들이 낸 책을 읽으면, 책에서 소개하는 책 속의 책에 끌리게 된다. 로쟈 이현우의 책도 그렇고, 서평가 금정연의 책도 그렇다. 다독의 미덕을 아는 이들에게서, 다독의 동기부여를 받는다. 좋아하는 작가에게서 좋아하는 책을 소개받으니 이야말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황홀한 유혹이다.

'쓰려고 읽으면 잘 읽게 되고, 잘 읽으면 제대로 쓰게 된다.'

책을 그냥 읽기보다, 책에 대해 쓰려고 마음먹고 읽으면 훨씬 더 잘 읽게 된다. 정말 와닿는 말씀이다. 만화로부터 시작한 나의 독서편력은 소설과 경제, 인문학까지 넘어갔는데, 가장 어려운 분야가 과학책이었다. 나 스스로 이과보다는 문과 체질이라고 생각한 탓일까? 과학에 대한 책은 읽기 힘들었다. 과학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 '뉴스타파'에 과학책 소개 칼럼을 연재했다. 좋은 책을 소개해야한다는 책임감에 더 많은 과학책을 읽게 되었고, 과학책의 재미를 잘 전해야한다는 책임감에 더 열심히 쓰게 되었다.

올 한 해, 책을 읽는 해로 정했는데, 그냥 읽고 넘어가면 혼자만의 기록 갱신일 뿐이다. 책을 읽고 감상문을 글로 남긴다면, 좋은 책의 핵심을 블로그 독자와 공유할 수 있다. 일단 제대로 쓰기 위해 열심히 읽게 되었다. 영어와 마찬가지로 독서는, 얼마나 능동적인 태도로 임하느냐에 따라 얻는 것이 달라진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에게 공짜로 무언가 나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얻는 사람은 역시 나다. 

새해 벽두에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 한 해의 시작, 이것으로 충분하다. 

'책일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이것이 올 한 해 나에게 주어진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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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요즘 블로그에 새 글이 뜸했습니다. 새 드라마 방송 시작하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거든요. 드라마 연출을 시작하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도... ^^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에도 독서를 거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게 책읽기는 숨쉬는 것처럼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거든요. 책을 읽지 않고 일만 하다보면 내 속에 무언가가 고갈되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바쁠 때는 어떻게 독서를 하는가? 오늘은 농축적이고도 집약적인 독서 방법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요즘 저는 짬만 나면 하루 15분씩 책을 낭송합니다. 낭송은, 단순히 소리내어 읽는 낭독은 아니구요, 그렇다고 책을 완전히 외우는 암송도 아닙니다. 정좌하고 앉아서 논어나 금강경 같은 동양 고전을 소리내어 읽습니다. 그러다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있으면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되뇌어 봅니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다시 책을 보고 소리내어 읽습니다. 이렇게 몇번을 반복해서 흔들림없이 글이 소리가 되어 나오면, 즉 귀에 들리는 소리가 낭랑하게 자리를 잡으면, 다음 글로 넘어갑니다.

 

이 방법은 저의 스승이신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께서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라는 책에서 말하는 독서법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책을 눈으로만 읽는 묵독보다는 소리내어 읽는 낭송을 권하십니다. 공부란 머리로 하기보다 몸으로 하는 것인데, 성대를 울려 소리를 내고, 소리의 파동으로 오장육부를 흔들어, 뜻을 뼈에 새기는 공부, 그것이 낭송이라 하십니다.

 

낭송은 예전에 제가 영어를 독학으로 공부할 때 큰 도움을 받은 방법입니다. 영어책의 회화 본문을 하루에 한 페이지씩 외웁니다. 아침에 15분 정도 반복하여 소리내어 읽습니다. 그런 다음 등교길이나 쉬는 시간에 혼자 중얼중얼 외워봅니다. 막히는 부분은 쪽지에 적어놓은 번역문을 보며 다시 되새깁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 소리내어 읽고 외우는 방법만한 게 없습니다. 국내에서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하여 외대 통역대학원에 한번에 합격한 제가 보증하는 방법입니다. (꼼꼼한 자기 자랑~^^)

 

2010/12/27 - [공짜 영어 스쿨] - 회화 말트기는 문장 암송으로!

 

그렇다면 어떤 책을 낭송할 것인가? 예, 공부의 달인이신 고미숙 선생님께서는 친절하게 낭송용 책도 함께 펴내셨어요. 낭송 Q 시리즈라 하여, 춘향전 흥보전 심청전같은 판소리와 사기 논어 맹자같은 동양 고전, 그리고 아함경 금강경같은 불경이 있습니다. 글귀를 가려뽑아 입말에 편하게끔 원문을 다듬어 낭송에 좋은 책을 만들었어요. 이번 기회에 동양고전도 한번 즐기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진짜 공부는 눈으로 훑는 게 아니라 몸에 새기는 것입니다. 

낭송, 바쁜 직장인들에게는 저비용 고효율의 독서법으로 최고입니다!

 

 

책을 읽다 지칠 때는 드라마를 보면서 쉬셔도 좋아요. 

요즘 제가 야외연출하고 있는 드라마, 여왕의 꽃.

방송 첫주부터 시청률 20%를 넘기며 화제라는군요. ^^ 

 

 

 

내 생애 단 한 번 행복할 수 있다면!

네, 저는 책을 읽겠습니다. 그것도 좋은 글을 소리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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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PD연합회에서 원고 청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조금 분량이 길어요~^^)

 

나의 인생, 나의 프로그램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 떠오른 작품은 나의 데뷔작인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이었다. 피디로서 처음 만든 작품인지라 애정도 많고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 상을 안겨준 작품이라 고마움도 큰 작품이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이 글쓰기에 대해 즐거운 일보다는 괴로운 일이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인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방향을 바꿨다. 내 인생의 성공작이 아니라 최고의 실패작에 대해 글을 쓰기로.

 

10년 전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당시 패기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시트콤 연출가였다. ‘뉴 논스톱에서 논스톱 3’까지 2년 반 동안 청춘 시트콤을 만들며 30분짜리 에피소드 500편을 만들었다. 둘 다 시청률 7,8%에서 시작해서 20%를 넘겼다. 시트콤을 만드는 노하우를 얻었다고 자신했지만, 연출가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자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MBC 무한도전의 독무대가 된 토요일 저녁 7, 당시에는 KBS 2스펀지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이 들어갔다가 판판이 깨지고 물러나던 시절, 예능국에서는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버라이어티로 붙어 질 바엔 아예 다른 카드를 내보자. 주간 시트콤을 이 시간에 방송해보자. 그 편성 계획을 듣고 나는 부리나케 국장님께 달려갔다. ‘저를 써주십시오. 논스톱 때 매주 5편씩 연출하느라, 때로는 방송의 퀄리티에 대해 아쉬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12부작짜리 주간 시트콤을 연출할 기회를 주신다면 작품성이 뛰어난 프로그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나는 MBC 입사하기 전, 외대 통역대학원을 다녔다. 국내에서 독학으로 공부한 영어 실력으로 동시 통역사가 되려고 고군분투했다. 회화 테이프를 듣고 받아쓰고 대화를 달달 외우며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해서 국제 컨퍼런스에 통역을 하러 갔는데, 연사가 갑자기 조크를 하면 그걸 어떻게 옮길까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갔다.

제가요, 연사가 조크만 하면 실력이 딸리거든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미국 시트콤을 많이 보세요. ‘프렌즈사인펠드같은 시트콤을 자주 보면 생활 영어 표현도 늘고 미국식 유머 감각도 익힐 수 있을 거예요.”

 

교수님의 충고에 따라 시트콤을 열심히 봤는데, 봐도 그만 너무 많이 봤다. 시트콤에 중독되는 바람에, ‘이렇게 재미난 시트콤이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1995년 여름 당시 한국형 청춘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나 가족 시트콤의 원조 순풍 산부인과가 방송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그래 내가 한번 만들어보자.’ 하고, 시트콤 피디로 전직했다.

 

 

뉴 논스톱을 만들던 시절, 연출로서 아쉬움이 많았다. 미국 청춘 시트콤 프렌즈의 광팬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더니 누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피디가 프렌즈마니아라고 하는데 왜 정작 자신은 프렌즈보다 퀄리티가 떨어지는 저질 시트콤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시청자와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연출답게 나는 바로 답글을 달았다. ‘프렌즈는 시즌제 주간 시트콤이지요. 논스톱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일 시트콤이구요. 프렌즈는 1년에 24편 만들고, 저는 1년에 200편 만듭니다. 프렌즈 피디더러 한국 와서 이 스케줄로 한번 만들어보라고 하세요.’

 

정말이다. 난 당시 야외를 하루에 30개 씬을 찍었고, 스튜디오 녹화는 일주일에 단 하루였는데, 80개 씬을 새벽 2시까지 다 끝냈다. 시트콤은 코미디 프로그램이라는 속성상 밤을 새고 녹화를 하면 촬영장 분위기가 다운되어 대본의 재미를 살릴 수 없다. 난 지금 가끔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정말 미친 속도감으로 시트콤을 찍어댔다고 생각한다.

 

시트콤의 오랜 마니아로서 직접 논스톱 시리즈를 만드는 과정은 즐거웠다. 다만 문제는 그 즐거움이 끝이 나질 않는다는 거. 20006월에 망해가는 시트콤 논스톱에 조연출로 합류했다. 당시 가문의 영광논스톱이 방송 3개월도 못 채우고 연속으로 조기종영하던 시절이었다. 너무 빨리 끝난 논스톱에 이어 새 청춘 시트콤 이름을 지어야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거다. 그래서 그냥 논스톱에다 자 하나 붙이고 주인공 바꿔서 새로 시작했다.

 

뉴 논스톱은 방송 초반, 양동근 박경림의 투톱 코미디로 사람들의 관심을 끈 후, 조인성 장나라 두 명의 슈퍼 루키를 투입해 단번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봄에 평균 시청률 7,8% 로 시작했다 겨울에는 20%를 넘겼다. 신인이었던 출연자들이 떠서 드라마나 영화로 넘어가고, 나 역시 1년 반 넘게 논스톱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스톱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논스톱이라는 제목에 를 빼고 ‘3’를 뒤에 붙여 계속 하라고 주문했다. 제목처럼 논스톱으로 계속 가라는 거지.

 

논스톱 3’을 시작하면서 나는 작가들을 모아 대본을 만들고 감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2년 반 동안 논스톱을 만들었지만 지겹지는 않았다. 야외 조연출로 시작해서, 스튜디오 녹화, 궁극에는 대본 작업까지, 시트콤 제작에 관한 모든 과정을 맡아서 했으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연출로서 행복한 시절이었다. 다만 논스톱이라는 제목 탓인지 도무지 프로그램이 끝날 기미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2년 반 동안 500편의 이야기를 만들자 아이디어 고갈이 심각했다. 회사 측에 양해를 얻어 논스톱에서 빠지고 주말 버라이어티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옮겨 갔다.

 

고백하자면, 난 내가 빠지면 논스톱도 끝날 줄 알았다. 아니더라. 논스톱 4, 논스톱 5, 끝도 없이 잘만 되더라.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논스톱의 성공은 내가 잘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청춘 시트콤을 만드는 MBC 예능국의 시스템의 힘이었다는 것을. 그런데 30대 초반의 나는 아직 어려 그걸 몰랐다. 그 무지의 결과는 내 인생 최대 참담한 실패작, ‘조선에서 왔소이다로 이어졌다.

 

일일 시트콤을 연출한 내게, 12부작 주간 시트콤은 매력적인 기회였다. 새로운 시간대와 새로운 포맷에 걸맞은 새로운 시트콤을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시트콤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야기가 새로우면 된다.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만들고 싶은 궁극의 시트콤이 있었다. 이른바 시간 여행 시트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이야기. 내가 타임머신에 꽂힌 데에는 사연이 있다. 난 초등학교 6학년 때 UFO를 봤다. 당시 우리 집 옥상에서 친구들과 놀던 나는, 환한 대낮에 하늘을 날아가는 세 개의 빛을 보았다. 그 빛은 문득 멈춰 서서 한참을 같은 자리에 떠 있다 갑자기 세 방향으로 흩어졌는데, 그 물체가 날아가는 속도나 모양 등을 생각해보면 아직도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안 온다.

 

내가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외계인의 비행접시라고 보기엔 우주는 너무 넓다.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인 시리우스만 해도 그 빛이 지구까지 오는데 8.6년 걸린다. 빛의 속도로 달려도 8.6년이 걸리는 거리, 81조 킬로미터 떨어져있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의 빛이 지구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이 4년에서 4000년 사이란다. 빛의 속도로 달려오는 직선거리가 이 정도라면 그 사이에 있는 공간은 얼마나 광활하고 넓겠는가. 이 넓은 우주에서 누군가 지구를 찾아내어 그 먼 거리를 날아 찾아오기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럼 그 UFO는 누가 보낸 것일까? 혹시 우리 자신이 보낸 게 아닐까? 이 지구에 사는 미래의 인류가 과거의 역사를 탐방하기 위해 보낸 탐사선이 UFO 아닐까? 우주여행을 하려면 빛의 속도, 혹은 그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야 겨우 태양계나 우리 은하를 벗어날까 말까 한다. 내가 만약 미래의 과학자로서 광속보다 빠른 우주선을 만든다면 저 텅 빈 광활한 우주를 헤매어 다른 생명체를 찾기보다 오히려 과거로 우주선을 보낼 것 같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광속 이상으로 여행하면 시간을 거꾸로 가는 것도 가능하니까.

 

어려서 UFO를 목격한 건 내 인생 최고의 축복 중 하나다. UFO를 본 후, 인생이 아주 즐거워졌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몰입이 쉬웠다. 우주 전쟁이고, 시간 여행이고, 마법사고, 무엇이든 내게 다 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UFO도 있는데, 세상에 뭐가 불가능하겠어? 그런 자세로 살다보니 책읽기가 즐거웠고, 온갖 상상과 공상을 즐기다보니 자연스레 SF에 빠지게 되더라. 통역대학원 다닐 때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소설에 빠져 직접 번역까지 했다. 평생 500권의 책을 낸 아시모프, 경이로운 필력을 보면, 그야 말로 외계에서 온 우주인이 아니었을까?

 

새로운 시트콤을 만들어보라는 지시가 나왔을 때, SF 시트콤을 바로 떠올렸다. MBCPD가 많지만 SF가 좋아 번역까지 해 본 이는 나밖에 없으니, SF를 소재로 시트콤을 만들어야겠다.

 

 

 

 

조선 시대 양반과 상놈이 타임 슬립을 통해 21세기 서울에 떨어진다. 팽팽 놀고먹기만 했던 양반 선비는 할 줄 아는 게 쥐뿔도 없고, 양반 체면에 일을 하지도 않는다. 양반은 나날이 행색이 초라해져 거지꼴이 되어가고, 그 양반을 모시던 몸종은 현대에 와서 갑자기 귀하신 몸이 된다. 심심풀이 삼아 지푸라기로 짚신을 꼬면, 민속학자가 보고 아니 400년 전 소실된 꽈배기 짚신 꼬기 기술의 전승자가 아직 있었다니, 인간문화재가 나타났다!” 난리를 친다. 나무를 하다 바위틈에서 조그만 애기 삼을 보았는데, 몇 년 더 키워 어머니 몸보신이나 시켜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대충 숨겨놓았다. 타임 슬립으로 현대에 와서 그 자리에 가보니 400년 묵은 산삼이 되어 삼식이를 떼부자로 만든다. 이렇게 양반과 종놈은 현대에 와서 신분이 바뀌어 간다.

 

종놈 삼식이는 21세기 서울이 바로 천국이다. 신분의 차별도 없고, 능력에 따라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이런 사회. 이건 어려서 꿈꾸던 율도국이 아니던가. 양반 윤덕형에게 서울은 지옥이다.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무심히 역사책을 뒤지다 자신의 노름 친구인 봉림대군이 왕으로 즉위한 사실을 알게 된다. 형인 소현세자의 급사로 봉림대군이 왕이 된다니!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야겠다. 21세기에 와서 읽은 역사책을 토대로, 미래를 예견하는 왕의 책사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어야겠다.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방법이 있다면,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방법도 있으렷다? 여기서 안박사가 등장한다. 안박사는 타임머신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실험을 진행하다 그만 잘못되어 자신이 과거로 가는 대신 과거의 두 사람을 현재로 불러오고 말았다. 윤도령을 위해 과거로 돌려보내려 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주의 힘에는 평형을 이루려는 작용이 있어, 둘이 과거에서 왔다면, 돌아가는 것도 둘이 함께 여야 한다는 것.

 

그러나 종놈 삼식이는 과거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양반 상놈 없이 모두가 평등한 지상낙원을 두고 왜 조선시대로 돌아간단 말이냐. 그런 삼식이에게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온다. , 21세기 서울은 돈이 양반이고 사람은 죄다 돈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종놈이구나. 여기도 사람 살 곳이 못 되는구나.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조선으로 돌아가려는데........ 과연 안박사는 두 사람을 돌려보낼 수 있을까?

 

안박사는 어쩌다 타임머신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을까?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위해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머니는 그가 열 살 때 돌아가신다. 의사의 꿈을 버리고,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타임머신을 만들어 어머니 살아생전 과거로 돌아가는 게 꿈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중환자실에서 어느 의사에게 하신 말씀이 어린 마음에 사무치게 남았다.

이제 겨우 열 살 된 우리 아들, 저 아이가 어른이 되는 걸 못 보고 가는 게 제일 안타깝네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장성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안박사의 꿈이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타임머신이 제대로 작동해, 20년 전 과거로 날아가는 안박사. 의사 가운 하나 걸쳐 입고 새로 온 인턴인양 어머니의 병실에 들어가는데 막 문을 열고나오는 어린 시절 자신과 스쳐지나간다.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에게 애써 담담하게 말을 건넨다.

방금 나간 아이가 아들인가 보죠?”

, 이제 겨우 열 살 된 우리 아들, 저 아이가 잘 커서 어른이 되는 걸 못 보고 가는 게 제일 안타깝네요.”

무심한 듯 이어지는 안박사의 말.

어머니, 제가요, 관상을 좀 보거든요. 제 눈에는 저 아이의 미래가 눈에 선하게 보여요. 아마 중학교에 가면 과학영재 대회에 나가 장관상을 받을 거예요. 고등학교에 가면 물리학과 상대성이론을 공부하고, 스무 살이 되면 웜 홀을 이용한 타임머신이라는 걸 연구할 거예요. 그 과정에서 재미난 친구들도 만나죠. 윤도령과 삼식이라고.”

안박사는 관상을 핑계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긴 이야기가 끝이 나자 어머니는 미소 지으며 눈을 감는다.

고마워요, 이렇게 찾아와줘서.”

 

이렇게 죽이는 엔딩 장면은 끝내 방송을 타지 못했다. 12부작으로 기획되었지만 방송 4회 만에 조기종영 결정이 내려져서 7회에 방송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실패는 오로지 내 탓이다. 나의 욕심과 열의가 너무 과도한 탓이었다. 제작을 준비하며 작가를 섭외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다들 피디가 직접 만든 기획에 대해 부담을 표했다. 작가란 자신이 직접 만든 캐릭터로 대본을 써야 이야기가 술술 풀리는 법인데, 연출이 만든 스토리 원안에 살을 붙이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경륜 있는 연출이라면, 내가 말한 기획안을 듣고 작가가 난색을 표했을 때 감을 잡았을 것이다. ‘, 이 이야기가 아직은 대중들에게 매력이 없구나.’ 그러나 나는 당시 한 번의 성공 경험밖에 없는 즉, 실패가 예비 된 연출이었다. 기성 작가를 포기하고, 방송 기회만 준다면 무엇이든 써보겠다는 신인 작가를 찾아 일을 시작했다. 작가의 경험이 부족하면 어때, 여차하면 내가 쓰면 되지 뭐, 하고 들어갔는데 완전 판단미스였다. 일주일에 2일 촬영 준비하고, 4일 찍고, 하루 편집하면 시간 다 간다. 틈틈이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대본을 쓸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연출이 직접 대본을 쓰다 보니 뭔가 이야기에 허점이 있어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역시 무모한 자신감과 오만은 필패로 가는 최단 코스다.

 

조기종영 당한 후, 정말 괴로웠다. 한동안 바깥출입을 못할 지경이었다. 나름 뉴 논스톱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도 받고 잘 나가는 피디인 줄 알았는데, 내가 이리도 재능 없는 연출이었다니.......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송창의 선배님이 부르셨다. 홍대 나와서 술 한 잔 하자고. 술자리에서 송 선배님이 대뜸 그러셨다.

민식아, 쪽팔려 죽겠지? 근데 난 말이다. 이번에 네가 쫄딱 망한 게 정말 잘 된 일 이라고 생각한단다. 완전 운 좋은 거지. 축하할 일이야, 이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발딱 쳐들었다.

, 선배님,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후배는 지금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

송 선배님이 잔에 술을 채워주셨다.

민식아, 네가 지금 몇 살이니?”

서른일곱인데요.”

캬아~ 망하기 참 좋은 나이다. 네가 말이야, 이번 작품도 성공했다고 치자. 그럼 넌 아주 기고만장해 지겠지? 막 신이 나서 달려. 그러다 나이 40 넘어 어느 날 한번 망하잖아? 당연히 망하겠지. 야구에서도 공 10개 중 3개만 쳐도 3할 타자라고 칭송받는데 말이야. 피디 중에 시청률 한 번도 안 망해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없잖아? 누구나 망해. 그런데 너무 나이 들어서 처음 망하잖아? 그럼 재기가 불가능해. ? 이미 스타일이 굳어버렸거든.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고칠 수 없는 나이가 돼. 주위를 둘러봐라. 사업하다 30대에 망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재기에 성공하는데 50 다 되어 망한 사람들은 그냥 폐인으로 살다 간단다. 기왕에 망할 거라면 30대 후반, 아직 다시 일어날 힘이 있을 때 망해야지. 그런 점에서 넌 아주 운이 좋은 거라니까?”

 

단언컨대 나는 그 시절, 시트콤 대가의 애정 어린 충고가 절대 순순히 들리지 않았다. 머리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가슴으로 와 닿는 말씀은 아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돌아보니, 시련을 겪고 있는 후배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다. 송창의 선배님께는 정말 감사드린다.

 

조기종영이 내게 가져다 준 의외의 선물이 있다. 바로 스노보드라는 취미다. 당시 난 10년 넘게 스키만 탔다. 스키를 타면 최상급 코스에 올라가 멋진 자세로 타고 내려오는데, 굳이 보드를 새로 배우고 싶지 않았다. 초보자 코스에 가서 무릎 꿇고 앉아 비굴한 자세로 보드를 배우기는 싫었다. 이 나이에 초보자가 뭐야. 조기종영을 겪은 후,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 현재 내가 잘하는 것만 하고 살기에 남은 인생이 너무 길다. 새롭게 즐기려면 기초에서부터 배우는 일도 마다하지 말아야지. 갑작스런 종영 후, 시간이 남아돌아 겨울 내내 스노보드를 배우며 마음의 상처를 달랬다. 늙어서 살짝 위험한 레포츠를 배우면 집중할 수밖에 없기에 딴 생각이 들지 않고 고민이 사라진다. 참 좋다. ^^ 요즘은 해마다 스키장 시즌권을 끊어 스키와 보드를 번갈아 타며 겨울을 보내는데, 이게 다 조선에서 왔소이다조기 종영 덕분이다.

 

(시즌권 사진 보고 딸이 막 웃었다. '아빠, 표정이 왜 이래?'

생긴게 약하면 설정으로 가야한다. ^^)

 

훗날 나이 마흔에 드라마국으로 이직하게 된 것도 시트콤 조기종영 덕분이다. 드라마국 피디 사내 공모에 지원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하는 이가 많았다. ‘드라마 갔다가 망하면 어떡할래?’ 망한다고 죽는 건 아니더라. 조기종영도 당해봤는데 뭐가 무서워. 만약 연속 흥행을 이어가는 시트콤계의 스타 피디였다면 드라마로 옮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잘 하는 것 놔두고 굳이 새로 시작할 이유가 없으니. 하지만 망해보니 알겠더라, 어차피 망할 거라면 새로운 거라도 도전해보자. 서툴러서 망했다는 핑계라도 있을 테니.

 

조선에서 왔소이다가 망한 후 깨달았다. PD는 재미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재미난 이야기를 찾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아무리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도 직접 대본을 쓰지 않는 한 좋은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는 없다. 좋은 작가일수록 남이 만든 이야기를 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만든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니 좋은 대본을 찾는 것이 좋은 연출의 첫 걸음이다.

 

드라마 연출로 나는 재미난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산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그것만 들여다보며 산다. ‘조선에서 왔소이다이후에도 바뀌지 않은 건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들자는 생각이다. 기왕에 망한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 망하는 편이 나으니까.

그리고 ......... 망해도 죽지는 않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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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꿈이란 무엇인가, 나이 마흔 일곱에도 매일 고민하고 사는 문제입니다. 

드라마 피디의 3가지 품성 (전편)에 달린 댓글입니다.

 

'저는 pd의 꿈을 꾸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내일 진로에 관한 발표를 하기 위해서 pd님 블로그에 들어와서 글 읽고 갑니다.

사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안전하게 교대에 가거나 간호학과에 진학하라고 강요를 많이 하시는데 저는 pd가 되고 싶습니다 ㅠㅠ 그런데 요즘 pd 경쟁률도 너무 세고 혹시나 시험에서 계속 떨어져서 백수로 전전하거나 나중에 후회를 할까봐 저도 걱정이 많이 됩니다 ㅠㅠ

그리고 제가 pd가 될 그릇은 아니라고 하시거든요 ㅠㅠ 저보고 길거리에서 똥 누고 아프리카 땅바닥에서 잠 잘 자신 있냐며,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힘들 거라구요ㅠㅠㅠ

아무래도 여자다 보니까 4,50대가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한 고민도 갖게 되는 것 같아요ㅠ pd가 그런 부분에서는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고ㅠㅠ

ㅠㅠ 어떡하죠 ㅠㅠ 제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는 걸까요..?'

 

음... 질문 잘 받았어요. 중간에 똥얘기에서 으잉? 하긴 했지만...

(실은 여배우에게 가장 가혹한게 저 문제거든요. 산 속에서 밤을 새어 사극 촬영을 할 때... 음... 해결책은요? 왜 옛날 아씨들이 긴 장옷 치마를 입었는지 알겠더라구요. 흠흠흠.)

죄송합니다, 다시 정색하고 답변 모드! 

 

나의 꿈은 누가 정하는 건가요? 당연히 나지요. 부모님이 아무리 나를 사랑해주셔도 나의 꿈을 대신 정할 수는 없어요. 왜? 내 인생이니까요.

 

만약 부모님이, '너는 다른 사람들을 돌봐주는 걸 좋아하니까,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돌봐주는 게 좋겠다.' 혹은 '너라면 아픈 사람들을 돌봐주는 간호사 선생님이 되어도 보람있을 것 같구나.' 라고 말씀하신다면 참 좋겠어요. 그럴땐 이렇게 얘기하면 되거든요. '맞아요. 그래서 전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어 세상의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하거나 '휴먼다큐 사랑 같은 다큐를 찍어 어렵고 아픈 와중에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방송에 담고 싶어요.' 라고 말하면 되거든요.

 

하지만 부모님이 '잘릴 걱정없이 안전하게 살기 위해' '취직이 쉬운 전문 직종이니까' 라는 이유로 교사나 간호사를 권하신다면 참 난감하지요. 안전하게 사는 건 꿈이 아니거든요. 그건 진짜 진로 상담이 아니지요. 아이의 적성이 무엇이고, 취향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기보다,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에 아이를 맞추겠다는 거잖아요.

 

물론 부모님 입장에서 걱정은 될 거에요. '내가 살아보니 대한민국 사회는 지옥이야.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어. 그러니 넌 공무원이 되거라.' 이런 거죠. 근데요, 공무원이 꿈인가요? 어떤 직업은 꿈이 아니에요. 피디도 꿈은 아니에요. 피디가 되어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이 진짜 꿈이지요. '난 굶어죽지 않고 무사히 평생 버티겠어.' 그게 꿈인가요? '굶어죽어도 좋으니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겠어.' 이게 진짜 꿈 아닌가요?

 

조카 아이가 있습니다. 신문방송학과 신입생이에요. 네, 그 아이의 진로 선택에는 저의 영향도 있다고 사촌 누나가 그러더군요. 그 아이가 어렸을 때, 제가 MBC 음악중심 리허설에 데려가서 그룹 god가 공연 준비하는 걸 보여준적이 있대요. 그때 제가 아이를 무대 위로 번쩍 들어올려서 스피커 옆에 놓아주었답니다.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아이로서는 바로 코 앞에서 가수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본게 평생을 가는 충격이었나봐요. '이렇게 가까이에서 스타들과 함께 일하는 직업, 피디가 되겠어.' 그 아이가 신방과에 들어간 건 어쩌면 제 영향일 수 있겠군요.

 

얼마 전 그 아이를 만난 자리에서 물어봤어요.

'20년 후, 어느날 , 네 인생을 돌아봤더니, 네가 피디가 아닌거야. 신방과를 나왔는데, 막상 공중파 피디 공채에서는 떨어지고, (경쟁률이 1200대 1이니 붙을 가능성보다는 떨어질 가능성을 생각하는 게 옳은 자세지요.) 연출 말고는 하고 싶은 일도 없는데 막상 보니 연출은 기회가 없어 평생을 백수로 살고 있는거지. 그때 가서 네가 이 삼촌을 원망하지 않을까?'

 

아이가 그러더군요. '피디의 꿈을 갖게 된 후로 공부와 학교 생활이 더 즐거워졌어요. 피디의 꿈 덕분에 삶이 즐거우므로 이 길을 가게 된 데 있어 후회는 없어요.'라고.

 

그 아이는 고교 시절 밴드부 보컬도 하고 요즘도 동아리 활동으로 홍대 공연을 준비하고 그래요. 예능 피디의 꿈을 꾼 덕에 아이의 삶이 더욱 다채로워 진거죠. 그래요,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인거죠. 이렇게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아이라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다시 질문자의 얘기로 돌아와서... 부모님이 어떤 진로를 권해주신다면 조언에 감사드리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그 일을 하는 순간 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에 자신이 없으면 그 길로 가지 마세요. 그건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에요.

 

피디라는 직업을 꿈꿀 때, 피디가 된 후의 삶을 즐기겠다는 자세는 위험합니다. 안 될 수도 있거든요. 피디의 꿈을 꾸는 현재를 즐기셔야 합니다. 피디가 되기 위해 여행을, 독서를, 연애를 즐기셔야 합니다.

 

길거리에서 똥누고 아프리카 땅바닥에서 잘 수 있느냐? 인도 여행 가보세요. 거긴요, 노천이 다 화장실이에요. 처음에는 기겁하지요, 하지만 한 달 정도 여행하고 나면 그것 또한 삶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부모님이 엄살이 심하신 것 같아요. 부모님 어렸을 때, 요강이란게 있었거든요? 화장실이 멀리 있어 어두운 밤에는 화장실도 못 가고 그랬어요. 그래서 방 한 구석에 요강을 두는데, 문제는 큰 놈이 해결이 안된다는 거요. 변강이 아니라 요강이잖아요. 작은 애만 해결해야 하는데, 급하면 큰 친구도 거길 이용하거든요? 그럼요, 밤새 냄새가 나서 아주......

 

네, 이야기가 빗나갔군요. ㅋㅋㅋ 들어보니 님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이 지극하셔서 그러시는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그런 거 다 아무 문제 없어요. 옛날엔 아무 문제도 아니었어요. 요즘도 그래요. 제 친구 중에 요즘 비박 캠핑에 미친 친구가 있는데요. 밤에 산에 올라갑니다. 가서 맨 땅 바닥에 누워 별보며 잠들고 새벽 이슬 맞고 아침에 깨어요. 고생도 그런 개고생이 없는데 그 친구는 재밌다며 환장을 하더군요.

 

길가에 똥누고 맨 바닥에서 자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 받는 거, 네, 두렵지 않아요. 그렇게 해서 무언가를 만들잖아요? 그럼 수백만명을 웃길 수 있어요. 울리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웃고 울 수 있어요. 그럼 된 거 잖아요.

 

어제는 영화를 봤어요.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백업 싱어라고 하지요, 무대 뒤에서 코러스를 넣는 이들. 영화는 그들의 삶을 조명합니다. 스타로부터 스무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그들. '서칭 포 슈가맨'이 생각나는 영화기도 해요.

인터뷰에서 스팅이 그래요. '백업 가수, 그 분의 재능이 스타가 되기에 부족할까요? 아니에요. 재능은 충분하죠. 하지만 운이 없었던 거에요. 재능만 갖고 스타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피디도 마찬가지에요. 최종 승부는 운이에요.

하늘이 내게 정해준 운명을 모르니,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하루 하루 성실하게 노력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 먹고 살아야 해요. 성실하게 노력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힘들지 않거든요.

 

그리고 결혼, 육아에 대한 고민도 하는데요, 워워워. 너무 일러요. 먼저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는 게 우선이에요. 미리 그런 고민하지 마세요. 그때 가면 다 해결되게 되어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우선이에요. 나머지는 나중에 고민해도 되어요.

 

님께서 다시 글을 올렸죠?

 

'사실 pd님께서는 제가 봤을 때는 뭐든 잘 풀린 케이스 같기도 해요 ㅎㅎ 공대도 한양대 공대(!!) 나오시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셨고 한국외대 대학원에 진학하시고 mbc pd도 바로 되셨던 것이라면 정말 승승장구한 삶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신문에서 직장 하나에도 버티지 못하거나 짤려서 술로 전전긍긍하며 삶을 살거나 사업에 실패해서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한 사람들도 많이 봤거든요ㅠㅠ 또 저희 아버지같은 경우도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고 사람을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셔서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 아니면 다른 곳에는 적응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시진 않아요 ㅠ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사는 것에도 어느정도 경제적인 능력이 수반이 되어야 하고 성격적인 면이나 지능도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ㅠㅠ 씁쓸하지만..ㅠㅠㅠ'

 

라고 하셨어요.

 

인정해요, 저도 제가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라는 거. 그래서 블로그 하는 거에요. 운좋게 피디가 되었으니 이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공짜로 나누기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에. 무엇보다 전 제 직업이 정말 좋거든요.

 

근데요, 신문에서 나오는 실패담, 믿지 마세요. 언론은 기본적으로 비극을 더 키우게 되어 있어요. 어떤 사람이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다! 라고 기사를 쓰면 사람들이 보나요? 그래서 뭐? 하지요. 어떤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해서 죽음에 이르는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극소수에요. 제가 보기에 더 무서운 건요. 우리 나라 대다수의 어른이 자신의 꿈이 뭔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겠다는 의지도 없이 그냥 하루 하루 살고 있다는 거죠. 살아있지만 제대로 살고 있는 건 아니죠. 꿈없이 늙어 죽는 거, 그게 더 무서운 현실 아닌가요?

 

내성적인 성격, 너무 걱정마세요. 실은요... 저도 무척 내성적이에요. 오죽하면 술 담배 커피 이런거 하나도 못하겠어요. 골프, 도박, 카지노 이런 것도 하나도 못해요. 포커나 고스톱도 쳐 본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제가 드라마 촬영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는 이유, 그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그런 거에요.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이 오히려 집중력이 더 뛰어나서 일을 잘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콰이어트'라는 책을 보면 내성적인 사람이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얘기도 나와요. 성격 탓 보다는 오히려 적성 탓이 커요.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오래하다보면 사람이 소극적이 되고 움츠러들기 쉽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면요, 성격도 다 고쳐져요.

 

경제적 능력, 성격, 지능... 중요한 것 처럼 보이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적성이에요. 적성에 맞으면 노력을 더 기울이구요, 즐거운 일을 하다보면 자연히 성격도 바뀌게 되어요. 좋아하는 일을 미친듯이 열정을 기울여 하다보면 재능과 지능과 능력을 다 갖춘 것 처럼 보여요. 그러니 성격과 지능과 경제적 능력은 너무 걱정마세요. 적성을 찾으면 따라오는 거 거든요.

 

글이 길어졌네요.

나는요, 님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 기뻤어요.

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고민을 하고, 그 해답을 찾아 현직 피디의 블로그까지 찾아내어 댓글로 질문도 올리는 열정을 가진 분이에요.

많은 어른들은 꿈을 포기하고, 질문을 던지는 일조차 못하며 살거든요. 

어린 나이에 이런 멋진 자세를 갖춘거 정말 칭찬할 일이에요.

부모님이 걱정하는 건, 이렇게 멋진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 거에요.

이런 귀한 딸이 길에서 똥 누고(ㅋㅋㅋㅋㅋ) 맨바닥에서 자고 고생하는 게 싫으신거죠.

그 마음도 이해할 수 있어요.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신 분들이에요.

님을 사랑하는 부모님을 믿고,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해봐요. 결국은 님의 뜻을 지지해주실 테니까요.

무엇보다 자신을 믿으세요.

 

꿈을 이룰 수도 있구요. 꿈으로부터 스무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꿈을 이룬 사람들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삶을 살 수도 있어요. 후자라고 불행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꿈도 꾸지 않고 사는게 제일 불행해요. 꿈은요, 그걸 가지고 노력하는 순간 그 자체로 행복이에요. 

 

추신:

어제 영화를 보며 내내 생각했어요. 

재미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욕심에 나이 마흔에 드라마 피디로 전직했는데, 저는 3년째 개점 휴업 상태랍니다. 아마 내 인생에 드라마 연출이라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어쩔 수 없지요. 제 실력이 부족한 탓이니... 대박 드라마 연출이라는 꿈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님의 글을 읽으며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추스려봅니다.

오늘 하루 더 즐겁게 시작하려구요.

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니까요.

하루 하루 즐겁게 살 수 있다면,

언젠가 기회는 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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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최근 종영한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SF라는 장르를 좋아해서 SF 번역가로 일했던 나로서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정말 반갑다. 예전에 조선에서 왔소이다라는 환타지 시트콤을 연출한 적이 있는데, 연출력이 부족했는지, 흥행에 참패를 겪었다. 시청률 저조, 제작비 초과, 광고판매 부진의 PD 삼거지악을 저지르고, 방송 4회만에 종영 결정이 내려져 12부작인데 7부에서 막을 내렸다. 당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MBC에서 당신이 가장 연출료가 비싼 피디인거 알아? 1년 동안 시트콤 일곱 편 만들었으니까, 편당 연출료로 따지면 1천만원이 넘는 셈이잖아.” 아내의 농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타임슬립 시트콤, '조선에서 왔소이다.') ^^ 

 

친구들을 만나면 내게 묻는 질문이 있다. “드라마 피디는 시청률이 대박나면 월급 더 받는 거니?” “아니.” 급여가 성과연동제가 아니라면 사기 진작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며 걱정하는 친구도 있다. 그럼 꼭 이렇게 얘기해준다. “시청률 더 나와서 월급 더 받아야한다는 건 시청률이 낮을 때 월급을 깎아도 좋다는 얘기거든? 창의력이 중요한 조직에서 시청률과 급여를 연동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급여체계가 아니란다.” “네가 시청률 올릴 자신이 없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친구들의 이런 반응,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는 피디 사회는 버팔로 사냥으로 먹고 사는 100명의 인디언 마을이라 생각한다. 그 마을에는 모두가 창을 하나씩 들고나가 버팔로를 잡아서 먹고 산다. 100명이 버팔로를 몰아서 다 같이 창을 던지면, 3~4개의 창이 버팔로를 맞히고 그래서 잡은 고기를 100명이 나눠먹는다. 그런데 어느 날 인디언 하나가 나서서 이렇게 얘기한다. “매번 버팔로를 맞히는 건 난데 왜 내가 너희들이랑 고기를 나눠먹어야 하지? 이건 불공평하잖아. , 안되겠다. 지금부터 다들 창에 각자 이름 써. 그래서 버팔로에 꽂힌 창에 이름 적힌 사람만 고기 먹기.”

 

, 새로운 보상 체계를 적용시켜 사냥에 나간다. 버팔로를 맞힌 사람은 배 터져라 먹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쫄쫄 굶는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그동안 버팔로를 한 번도 맞히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한다. 100명이던 마을 사람은 70명이 되고, 다시 한 달이 지나면 50명이 된다. 50명이 사냥을 나가면 예전처럼 버팔로를 몰기도 어려워지고 창을 던져도 한두 개 맞은 버팔로는 그냥 달아나버린다. 결국 마을 사람 전원이 굶어죽게 된다.

 

나는 PD가 버팔로를 잡는 인디언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맞힐 때도 있고, 놓칠 때도 있다. 중요한건 그럼에도 사냥에 나가 창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 성과가 좋지 않다고 사냥에서 아예 배제하는 건, 실패의 경험에서 배워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일이다. 어린 후배들이 보기에도 그렇다. 인생이 살아볼만 하다고 느끼는 건 극적인 역전도 가능할 때다. 좀 빌빌하던 선배도 자신에게 딱 맞는 기획을 만나면 펄펄 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어린 후배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한 번 실패하면 영원히 내쳐지고 성공도 반복하는 사람만이 기회를 얻는 세상이라면, 그런 정글에서 즐겁게 일하는 보람은 없다. 승자도 패자도 다 같이 불안한 세상이 될 테니까.

 

드라마 나인을 보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의 향이 나온다. 만약 내게 그런 향이 있다면 10년 전 조선에서 왔소이다.’가 쫄딱 망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서 10년 전 죽을 것같이 괴로워하던 나에게 이렇게 말해줘야지. “너무 자책하지 마. 타임슬립이라는 소재, 10년 후에야 유행하고 심지어 그 중에는 대박 드라마도 나온단다. 그리고 살다보면 역전의 기회는 반드시 오니까 웃으며 버텨.”

 

동료들이 나눠주는 버팔로 고기를 얻어먹으며 하는 생각. ‘언젠가는 나도 버팔로를 맞히는 날이 올 테니, 일단 오늘은......... 감사히 먹겠습니다!’

 

(PD 저널 연재 칼럼 '김민식 피디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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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이천명 가까운 지원자들 중 단 두사람에게만 주어진 MBC 예능 PD의 자리.

졸업을 앞두고, 처음 넣어본 전형에서 덜컥 주어진 합격 소식은, 내 인생 너무나도 큰 선물이 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느낀, 혹은 새삼 확인한 사실들이-
언론사를 준비하거나, 혹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꿈을 쫓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될까 후기를 적어본다.


나는 거의 10년째 TV를 거의 보지 않은 채 살아왔다.
PD가 되겠다는 사람이 TV를 보지 않는다는게 스스로 우습기도 했지만- 사실 볼 시간도 별로 없었다.
학기 중에는 학과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방학이 되면 읽고 싶던 책들을 잔뜩 읽고, 여행을 떠나고, 글을 읽고 쓰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험준비도 안했다.
PD시험이 그동안 어떻게 나왔는지, 어떤 내용들을 알고 있어야 하는지- 서류전형을 넣고 나서야 알아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시험'준비를 안했을 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PD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준비-는 하지 않았지만, 생활 속에서 '좋은 컨텐츠를 만들기 위한 고민'은 끊임없이 해왔다.


내 꿈은, 'PD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꿈이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PD가 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할까?'가 아니라, '그런 세상을 이루어가려면 무엇을 해야할까?'를 고민해왔다.
그 꿈은, 반드시 PD가 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나를 신나고 즐겁게 만들어 온 일들이 PD라는 직업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에-
그 꿈을 PD라는 자리에서 이루어갈 수 있다면 더 없이 신나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 PD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떨어지면 또 그런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다른 일을 얼른 찾아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NGO단원도 좋고, 독립프로덕션들도 좋았다. 그것도 기대가 되었다.
PD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란 생각이 오히려 두둑한 배짱을 챙겨주었다.

때문에- 내가 준비한 것은 'PD시험'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여기서 잠깐!

내 블로그를 자주 찾는 분들이라면, 여기까지 읽고 '음, 김민식 피디가 또 자신의 입사 전형 이야기를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미안하지만 위의 글은 내가 쓴 글이 아니다. MBC 예능국에서 무르팍 도사를 만드는 신입 피디인 권성민 군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이다. 난 얼마전 이 블로그 글을 보고 깜짝 놀란 한편 반가웠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과정을 거쳐 MBC에 입사한 친구가 또 있구나!

 

설 연휴 동안 권성민 피디의 블로그를 차근 차근 살펴보시기 바란다. 좋은 피디를 꿈꾸는 사람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피디 공부의 최고 장점은 즐겁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무엇이든 미친듯이 한다면, 그게 바로 피디가 되는 길이다. 당신의 삶이 즐겁지 않다면 예능 피디의 삶은 의미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즐거운 일을 하시라.

 

일부러 내 글인양 속이려고 종교나 학벌 부분은 제하고 올렸다. 글의 원문을 보시면 훨씬 더 감동이다. 이런 멋진 후배가 있어, MBC의 미래는 아직도 밝다고 생각한다! 머지않아 권성민 피디의 아름다운 생각이 담긴 재미난 예능 프로그램 하나, 기대해본다. 

 

글의 전문은 아래 블로그를 참고하시길~

 

http://www.cyworld.com/miracleofgiving/9261878

(이상하게 이 글은 모바일 환경에서는 열리지 않는다... ㅠㅠ 이래서 난 티스토리가 좋아! ^^

PC로 읽어보실 걸 권해드린다.)

 

그리고...

설날 맞이 특별 이벤트를 하나 마련했다.

 

 

기존의 강연회와 차별화하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중이다... 음... 긁적긁적...

그리고 그동안 방명록에 올라온 사연 중 글로 미처 풀지못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해드리는 코너도 마련했다. 질의 응답 시간을 길게 준비했으니, 와서 마음껏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질문을 던져주시길... 공개 질문이 여의치 않다면 비밀 댓글이나 방명록에 '강연회 참가 신청했습니다.' 하고 글을 남겨주시면 된다. 직접 얼굴 보고 물어주시면 약발이 더 잘 받긴 한다... ^^

강연 신청은 아래 페이지를 참고해주시길~

아, 참, 강연은 무료 참가다. 내가 사랑하는 공짜 강연회, 이번엔 제가 서비스해드립니다~^^

 

http://www.yes24.com/Event/01_Book/2013/OT0121Free.aspx?CategoryNumber=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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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얼마전 단식 농성을 했다. 시작하고 처음 3일이 가장 힘들었다. 끼니때만 되면 배는 맹렬하게 꼬르륵 거리며 빨리 먹을 걸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때 예전에 읽은 책이 떠올랐다.

 

'수십만년 동안 수렵채취를 통해 진화해 온 인류가 수십년 사이에 일어난 문명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나온 게 비만이다. 수렵채취민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 다음 끼니가 생길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을 것이 생겼을 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고, 여분의 열량은 온 몸 구석 구석에 지방으로 축적하는 것을 진화의 수단으로 삼아 인류는 생존해왔다.

 

냉장 기술과 운송수단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수십년 내 생긴 일이다. 수십만년 동안 영양빈곤의 환경 속에서 진화해 온 몸의 유전자는 영양 과잉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걸핏하면 배고프다고 엄살을 부린다. 현실과 몸의 괴리가 비만을 낳았다.'

 

단식을 하면서 온몸의 감각 기관이 내게 음식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칠 때마다 이렇게 달랬다. '안 죽는다, 걱정 마라. 넌 아직도 수렵채취로 살던 원시인의 자세를 버리지 못했구나. 이젠 우리도 문명인답게 살아보자꾸나.'

 

어제 '세상을 바꾸는 시간'을 통해 꿈꾸는 유목민이라는 김수영씨의 '쫄지마 질러봐 될거야'란 강연을 보았다. 여자 혼자서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며 사는 모습에 '멋지다!' 하고 감탄하다가도 '근데 막상 민지가 나중에 저렇게 살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지?'란 걱정도 들었다. 이런 게 딸을 둔 아빠의 이중성인가?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과잉 보호도 문명의 발달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평균 수명이 6~70세였던 시절에는 자식들이 20대가 되면 가정을 꾸리고 30대가 되면 자리를 잡아야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들의 독립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 시절을 살아온 현대의 부모들이 지금도 자식들에게 20대 취직과 30대 자수성가를 종용하는데, 죄송하지만 이건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다. 취향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20대에 빠른 취직을 택한다면, 남은 60년이 두고 두고 괴롭다. (직장 생활하는 30년도 괴롭고, 퇴직하고 전문가로 살아야하는 30년도 괴롭다.) 안정적인 직장보다 평생을 즐길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조건보고 대충 30세 전후에 결혼했다가 평생 후회하는 수가 생긴다. 예전에는 직장에 매여살던 남자들이 55세에 정년퇴직하면 얼마 못가 이승에서는 작별이었다. 성격 안 맞아도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이제는 퇴직하고 집에서 삼시 세끼 챙겨달라며 30년을 더 산다. 생각만 해도 눈이 깜깜해서 4,50대에 이혼이 느는 거다. '조금만 참고 살아.' 이런 얘기 함부로 못한다. 40대라고 해도, 50년을 더 참고 살라는 말인가? 자식이 결혼이 늦다고, 혹은 이혼했다고 인생의 낙오자나 실패자라 생각하는 것도 시대착오다. 90까지 사는 인생에서, 40에 배필을 만날 수도 있고, 50에 새 출발 할 수도 있는거지!  

 

모든 아이들이 비슷비슷한 장래 희망에 '공무원이 최고야!'를 외치는 세상, 이거 우울하다.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이던 시절은 전쟁 직후 1950년대 보릿고개 시절, 꼬박 꼬박 월급이 나온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으로 작용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2050년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100년 전 기준으로 성공을 종용하다니. 굶어죽을 걱정이 없어졌는데도, 꼬박 꼬박 배고프다고 신호를 보내는 위장의 명령에 복종하다 비만으로 외려 수명을 줄이는 것처럼, 수명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빠른 취직에 목매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에 평생을 허비하는 것도 비극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한단 말인가? 나는 아이에게 좀더 실패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주고 여지를 주는게 자식을 진정으로 믿고 사랑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나 죽기 전에 저 놈 인간 되는 꼴 봐야하는데, 마냥 손 놓고 살 수는 없지!' 한다면, 생각 고쳐드시기 바란다. 평균 수명 대로만 살아도 90살이다. 부모가 90에 죽어 자식이 60세가 다 되었는데도 사람 구실 제대로 못한다면, 그게 어디 부모탓이겠는가? 지 탓이지.

 

20대에 취직하지 못한 것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부모가 원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느라 나이 마흔에도 자신의 꿈이 무언지 모르고 사는 것이다. 30대에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것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부모의 잣대에 맞춰 사람을 찾느라 20대에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보는 일이다.  과잉보호가 아이의 독립을 막는다. 아이에게 실패를 허락할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것, 그게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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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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