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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웃는다

by 김민식pd 2018. 6. 15.

(지난 2월 영국 런던으로 콘텐츠 진흥원에서 주관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영국의  ITV 편성 책임자의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 중, 한국의 피디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를 옮깁니다.)

강연을 해준 사람은 리얼리티 쇼 편성 책임자였어요. ITV는 예능 포맷의 강자입니다. 미국에 포맷을 수출하기도 하는 회사지요. 같은 리얼리티쇼 쇼라도 미국 포맷과 영국 포맷은 약간씩 다르답니다. 미국은 도전에 대한 긴장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연출하고, 영국은 출연자의 실수에 대해 약간 슬랩스틱같은 코미디로 푼다고요. 그래서 영국의 리얼리티쇼 쇼는 진행자의 역할이 중요하답니다. 영국 시청자들은 유머코드를 중시하거든요. 미스터 빈을 봐도 약간 바보스러운 몸개그가 먹히잖아요? 이때 중요한 건 출연자의 호감도랍니다. 도전자가 실수하는 모습을 보고 유머스럽게 놀려야 방청객과 시청자가 함께 웃을 수 있는데, 진행자의 멘트에 웃는 건 사람들이 그 진행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랍니다. 누군가의 실수를 함부로 비웃으면 비호감이 되기 쉽다나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웃지, 웃기는 말에 대해 웃는 게 아니라고 말했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잘 웃기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잘 웃기는 것 아닐까 하고요. 웃음에도 예의가 필요한 시대거든요. 

코미디 쇼의 경우, 진행자의 호감도가 중요하기에 낯선 포맷을 론칭할 때는 노련한 진행자를 쓴다고요. 오래된 포맷을 새로 리부트하는 것 또한 중요한 시도라고 하는군요. Dancing on the ice의 경우, 시청률이 떨어져서 끝냈는데요. 2,3년 지나서 다시 재개했더니 활력이 살아나더라는거죠. MBC처럼 오래된 포맷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있는 회사가 시도해볼만한 전략이 아닌가 싶어요. <나는 가수다>를 다시 론칭하거나, <사랑의 스튜디오 2108> 같은 식으로?

편성 책임자로서 일과를 들려달라니까 하루 3,4번의 외주 기획안 피치 미팅이 있답니다. 물론 10번 만나면 그중 9번은 거절하는 입장이지요. 제가 드라마 피디로 일하며 가장 힘들어하는 대목이에요. 오디션을 보는데, 100명을 만나본 후, 그 중 한 명을 뽑거든요? 이런 식이니 제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거절이에요. 그런데 이게 참 힘듭니다. 거절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기획안이 좋고 나쁘고는 없다, 단지 내가 필요한 시간대 시청층과 맞느냐, 채널 이미지와 맞느냐가 있을 뿐'이라고 말하네요. 저도 배우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연기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를 보는 게 아닙니다. 배역에 맞느냐 안 맞느냐를 봅니다. 오디션에서 잘 되지 않았다고 절대 낙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편성 책임자로 일하지만 때로는 경영진과 편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요. 무척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 같더라고요. 저런 스타일은 자신의 업무 능력에 대해 자부심이 강해서 윗선과 부딪치기 쉬운데요. 상사와 의견충돌이 있을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어요. '뭐가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군요. 편성 전략 수립은 수천만의 시청자들의 반응을 예측하는 일인데요. 정답은 누구도 몰라요. 보스가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면 그것도 받아들인답니다. 어차피 나의 생각도 정답이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정답은 없다', 그 말이 정답이네요.

런던 템즈 강변에 있는 ITV 사옥.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느껴졌어요. 틈나는 대로 런던 연수에서 들은 이야기를 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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