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마흔 다섯살의 김민식이 무언가 하는 것은 지금 현재의 내가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 만난 인연이 하는 일입니다.

 

1996년에 외대 통역대학원에 재학하던 저는 인터넷 통신 동호회에 SF소설을 번역해서 올렸어요. 그렇게 번역한 책을 출판하고 싶어 박상준 님을 찾아갔죠. SF 출판 기획에서는 박상준 님이 우리 나라 최고의 전문가시거든요. 그 분께 제가 나우누리 통신에 올린 원고를 보여드리고 출판을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아이작 아시모프의 유작 '골드'를 번역 출판했답니다.

 

우연히 MBC에 피디로 입사하고 10년을 바쁘게 살다, 박상준님이 '오멜라스'라는 국내 최초 SF전문 출판사를 차렸다기에 인사하러 갔어요. 갔다가 'SF 명예의 전당'이라는 시리즈를 기획하신다기에 다시 번역을 맡았어요. 마침 '내조의 여왕' 공동연출을 마친 직후라 여유가 있었거든요. 그곳에서 편집자 두 사람을 만났는데, 그 중 최지은 편집자님이 저를 보고 무척이나 반가워하시더군요. 

"김민식 피디님, 오래전부터 뵙고 싶었어요!"

"에? 저를 어떻게 아시나요?"

"뉴논스톱 연출하실 때 부터 팬이었어요."

"네?"

"제가 양동근 팬클럽 회장이었거든요. 우리 동근씨가 논스톱 덕에 떴잖아요. 그때 감독님이 쓰시는 연출일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양동근 팬클럽 회장이었던 분을 그렇게 만날 줄 몰랐어요. 5년전에 인터넷에 올린 논스톱 촬영 후일담을 기억해주시는 분이 있을 줄이야. 그렇게 친해진 편집자들이랑 종종 만나 영화 얘기, 만화 얘기, 게임 얘기하며 놀았어요. 우리끼리 SF 단편 영화를 찍기도 하고요. 그러던 어느날 최지은 님이 제게 이러는 거에요. 

"피디님, 책 써보실 생각 없으세요?"

"에이, 제가 무슨 책을 써요. 드라마나 잘 만들어야죠."

"피디님, 제가 밀어드릴테니 꼭 한번 해보세요."

 

자신이 없었어요. 카페나 블로그에 짧은 글은 많이 써봤지만, 과연 그런 글로 책 한 권을 채울 수 있을까? 하지만 지은님을 믿고 한번 시도해보자고 했지요. 그분이 평소 일하는 걸 보며 믿음이 갔거든요. '이런 분이라면 믿고 나를 맡겨볼 수 있겠다.' 

 

같이 일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본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배우에게는 배역을 줄 마음이 없습니다. 애정없는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와 애정없는 배우를 만난 배역, 그건 서로에 대한 실례지요. 그리고 한번 믿으면 끝까지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에 대한 모든 결정은 지은님에게 맡겼지요. 전문가에게 맡기는게 최고잖아요? 

 

지은님은 우리 프로젝트를 위해 평소 눈독 들이고 있던 최고의 북 디자이너, 이승욱 님을 영입합니다. 단어로 줄을 끊어읽는 독특한 페이지 디자인이나 지도를 막대 그래프로 표현하는 것도 다 이승욱님 아이디어인데요, 승욱님이 책 디자인에 공들여주신 덕에 책이 풍성한 자료집으로 거듭날 수 있었어요. 이승욱 디자이너님은 제 글을 읽고 이우일 님의 그림이 어울리겠다며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이우일님을 모셔옵니다. 덕후계의 지존이라 생각하고 존경하던 이우일 작가님이 제 책에 그림을 맡아주시게 될 줄 미처 몰랐어요. 완전 영광입니다. 제 글을 손 봐주신 분은 오멜라스에서 만났던 양은영님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배명훈 작가님 소설을 많이 작업하신 분입니다. 전에 오멜라스에서 뵈었을 때 그 꼼꼼한 일 솜씨와 깐깐한 글 솜씨에 반했거든요. 

 

책의 방향은 최지은님이 잡아주고, 부족한 초고는 양은영 님이 다듬어주시고, 책의 매무새는 이승욱 님이 잡아주시고, 그림은 이우일 님이! 초보 작가의 책 한 권에 수많은 업계 최고 전문가들이 붙어 도와주신 겁니다. 이 책은 공동창작의 결과물인데, 그 중심에는 작가 에이전시 고래방의 대표이자 책임 편집자인 최지은 님이 있지요. 제 책에서 좋은 점은 최지은 님의 공이고, 부족한 점은 초보작가인 저의 모자람이랍니다.

 

10년도 더 된 인연의 총합을 통해 나온 책이고요,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독자로 만나는 여러분도 제게는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다들 고맙습니다.

 

 

      

앞 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최지은, 세번째가 양은영 님입니다.

고래방 SF 단편영화 '사이좋게 지내요' 촬영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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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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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onism 2012.11.01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아, 이 두 분이랑 함께 작업하신 거였군요! 저도 상준님 소개로 두 분을 몇 번 만나뵈었는데, 정말 열정 넘치는 분들이죠 :)
    신간 대박 기원합니다!!

  2. 면봉 2012.11.01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동감가는 글이네요 피디님
    ㅎㅎ 저도 우연히 트위터하다가 피디님 불로그 소문듣고 왔는데 너무 재밋어서 매일매일 글보러오는데 ㅎㅎ 이러다가 피디님 책내신다는 글보고 오늘 드뎌 책장만했어요 만약 제가 제 트친과 팔로우상태가 아니였다면 피디님의 블로그를 늦게 알게되었겠죠?아니 몰랐을수도있겠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