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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조 파이크처럼 존재감을 키우는 법

by 김민식pd 2012. 10. 18.

학교 진로 특강을 자주 다니며 '피디로 사는 즐거움과 독서의 필요성'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려 하는데, 때론 아주 고역인 강의가 있다. 방송에 대한 꿈을 가진 아이가 아니라 억지로 특강을 들으러 나온 친구들이 모인 자리가 그렇다. 자리에 앉아 있기는 한데, 쉼없이 옆자리 친구랑 장난치고 떠든다. 어떤 아이는 아예 강사인 내게 등을 돌리고 뒷자리 친구와 게임을 하기도 한다. 얌전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나름 웃기는 멘트를 휙 날렸는데 웃음이 터져나오지 않아 하나하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멍한 표정이다. 앞에 백여명의 아이들이 앉아있지만 마치 허공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 이건 뭐지? 

 

지난 주 고미숙 선생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몸과 마음의 교집합만큼이 존재감'이라는 말씀을 듣고 무릎을 쳤다. 그렇구나. 자신이 직접 선택한 진로에 대해 특강을 듣는 아이들과 억지로 끌려와 듣는 아이들은 존재감이 천지차이일 수 밖에 없구나.

 

그렇다면 존재감을 높이는 첫번째 길은,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몸을 이끄는 곳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그래야 그 분야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만만하던가? 여의치 않은 상황도 얼마나 많은데! 나만해도 아무리 연출이 즐거운 일이라 하지만 때로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론 대본 중에 정말 찍기 괴로운 장면을 찍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럴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연출이 일하기 싫은 티가 나면 같이 일하는 수십명의 스태프는 더 맥이 빠진다. 그래서 난 찍기 싫은 배우랑 일할 때도 즐겁게 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내 몸이 있는 곳에 마음도 함께 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연출이란 결국 존재감없는 연출이 되고 마니까. 

 

내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데려오는 일이 중요하기에, 수업 태도가 산만한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옆자리 친구들과의 잡담은 이따 수업이 끝난 후에 해도 되니까 지금은 내 수업에 좀 더 집중해보면 어떨까? 나와 이야기하는 한 시간은 두번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이잖아? 그리고 내 얘기가 재미없다고 딴청부리면 더더욱 재미없어질거야. 무엇이든 집중하지 않으면 재미는 알 수 없는 법이거든." 정말이다. 어떤 일이 재미있는지 없는지는, 집중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이건 선생이 억지로 시킨 일이니까.' 하고 마음을 접으면 재미를 알 수 없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김봉석님이 쓴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을 읽고 재미난 소설을 많이 건졌다. 그 중 하나가 로버트 크레이스의 '워치맨'이다. 정말 재밌다. 무엇보다 조 파이크라는 주인공이 끝장 멋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아놀드처럼 이 친구는 오로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사람이다. 팔에 화살표 문신이 있는데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 의미가 궁금하다고 했죠? 끊임없이 앞으로 움직이면서 스스로를 제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절대 물러서선 안 되고요. 앞으로 묵묵히 전진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하는 일입니다.' 

 

파이크는 틈만 나면 몸에 대한 장악력을 단련한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건 체력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가 몸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순간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파이크의 몸에 대한 집착은 쉽게 이해된다.

 

소설 제목 '워치맨'에서 작가는 격투 장면보다 주인공이 묵묵히 적을 기다리는 장면에 더욱 공을 들여 묘사한다. 조 파이크는 평소에 다져둔 체력을 바탕으로 미동도 없이 그늘에 몸을 숨기고 적을 기다린다. 프로들간의 싸움은 순식간에 끝난다. 하지만 그 싸움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얼마나 끈질기게 적이 허점을 드러내는 걸 기다리느냐 하는 것이다.  

 

조 파이크의 압도적인 존재감의 바탕에는 그만의 사명감이 있다. 약자를 보호하고 약자를 위해 봉사한다는 자신만의 목표가 있다. 결국 존재감을 키우는 최후의 방법은 마음 속 목표를 키우는 것이다. 단순히 먹고 사는 데서 내 삶의 존재이유를 찾는다면 몸과 마음의 교집합은 클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하고 그 목표를 위해 자신을 헌신한다면 그 존재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강의 시간에 딴짓하는 아이들을 보고 안타까울 때가 많지만 나 역시 과거에는 그랬기에 아이들의 입장이 이해된다. 나도 중고생 시절에 수업 시간에 늘 공상만 일삼곤 했으니까. 내가 바뀐 건 스무살 이후다. 나이들어 회사에서 연수를 받는데 요즘의 나는 수업에 완전히 몰입모드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마주하는 일이다. 직장 연수나 특강을 오는 사람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 속에는 반드시 배울 점이 하나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도자기 굽는 사람의 강연을 한 시간 듣는다면, 그 한 시간은 그 사람의 인생을 축약한 한 시간일 것이다. '내 평생 도자기 구울 일이 없으니 그런 강의는 들어봤자 소용이 없다', 가 아니라, '내 평생 해보지 못한 일을 평생 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 생각하고, 수업에 집중한다. 그게 한가지 일만 하며 살아온 그 사람의 인생을 존중하는 방법이고, 또한 그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 내 인생의 한 시간을 소중히 활용하는 길이라 생각하니까. 

 

나는 오늘도 여의도 MBC 앞에서 천막 농성을 이어간다. 그제는 새벽에 촬영나가는 스태프들 소리에 잠을 깼다. 일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에 부러움의 시선을 던지다가 얼른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드라마 현장이 아니라 농성장이다. 정직 6개월, 내가 바란 결과는 아니지만, 어차피 겪어야할 시간이라면 최대한 즐겁게 보내야겠다. 내가 선택한 길,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내 몸의 역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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