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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서로에게 실패를 허락하는 가족이 되자

by 김민식pd 2012. 11. 16.

얼마전 단식 농성을 했다. 시작하고 처음 3일이 가장 힘들었다. 끼니때만 되면 배는 맹렬하게 꼬르륵 거리며 빨리 먹을 걸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때 예전에 읽은 책이 떠올랐다.

 

'수십만년 동안 수렵채취를 통해 진화해 온 인류가 수십년 사이에 일어난 문명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나온 게 비만이다. 수렵채취민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 다음 끼니가 생길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을 것이 생겼을 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고, 여분의 열량은 온 몸 구석 구석에 지방으로 축적하는 것을 진화의 수단으로 삼아 인류는 생존해왔다.

 

냉장 기술과 운송수단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수십년 내 생긴 일이다. 수십만년 동안 영양빈곤의 환경 속에서 진화해 온 몸의 유전자는 영양 과잉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걸핏하면 배고프다고 엄살을 부린다. 현실과 몸의 괴리가 비만을 낳았다.'

 

단식을 하면서 온몸의 감각 기관이 내게 음식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칠 때마다 이렇게 달랬다. '안 죽는다, 걱정 마라. 넌 아직도 수렵채취로 살던 원시인의 자세를 버리지 못했구나. 이젠 우리도 문명인답게 살아보자꾸나.'

 

어제 '세상을 바꾸는 시간'을 통해 꿈꾸는 유목민이라는 김수영씨의 '쫄지마 질러봐 될거야'란 강연을 보았다. 여자 혼자서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며 사는 모습에 '멋지다!' 하고 감탄하다가도 '근데 막상 민지가 나중에 저렇게 살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지?'란 걱정도 들었다. 이런 게 딸을 둔 아빠의 이중성인가?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과잉 보호도 문명의 발달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평균 수명이 6~70세였던 시절에는 자식들이 20대가 되면 가정을 꾸리고 30대가 되면 자리를 잡아야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들의 독립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 시절을 살아온 현대의 부모들이 지금도 자식들에게 20대 취직과 30대 자수성가를 종용하는데, 죄송하지만 이건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다. 취향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20대에 빠른 취직을 택한다면, 남은 60년이 두고 두고 괴롭다. (직장 생활하는 30년도 괴롭고, 퇴직하고 전문가로 살아야하는 30년도 괴롭다.) 안정적인 직장보다 평생을 즐길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조건보고 대충 30세 전후에 결혼했다가 평생 후회하는 수가 생긴다. 예전에는 직장에 매여살던 남자들이 55세에 정년퇴직하면 얼마 못가 이승에서는 작별이었다. 성격 안 맞아도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이제는 퇴직하고 집에서 삼시 세끼 챙겨달라며 30년을 더 산다. 생각만 해도 눈이 깜깜해서 4,50대에 이혼이 느는 거다. '조금만 참고 살아.' 이런 얘기 함부로 못한다. 40대라고 해도, 50년을 더 참고 살라는 말인가? 자식이 결혼이 늦다고, 혹은 이혼했다고 인생의 낙오자나 실패자라 생각하는 것도 시대착오다. 90까지 사는 인생에서, 40에 배필을 만날 수도 있고, 50에 새 출발 할 수도 있는거지!  

 

모든 아이들이 비슷비슷한 장래 희망에 '공무원이 최고야!'를 외치는 세상, 이거 우울하다.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이던 시절은 전쟁 직후 1950년대 보릿고개 시절, 꼬박 꼬박 월급이 나온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으로 작용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2050년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100년 전 기준으로 성공을 종용하다니. 굶어죽을 걱정이 없어졌는데도, 꼬박 꼬박 배고프다고 신호를 보내는 위장의 명령에 복종하다 비만으로 외려 수명을 줄이는 것처럼, 수명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빠른 취직에 목매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에 평생을 허비하는 것도 비극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한단 말인가? 나는 아이에게 좀더 실패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주고 여지를 주는게 자식을 진정으로 믿고 사랑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나 죽기 전에 저 놈 인간 되는 꼴 봐야하는데, 마냥 손 놓고 살 수는 없지!' 한다면, 생각 고쳐드시기 바란다. 평균 수명 대로만 살아도 90살이다. 부모가 90에 죽어 자식이 60세가 다 되었는데도 사람 구실 제대로 못한다면, 그게 어디 부모탓이겠는가? 지 탓이지.

 

20대에 취직하지 못한 것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부모가 원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느라 나이 마흔에도 자신의 꿈이 무언지 모르고 사는 것이다. 30대에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것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부모의 잣대에 맞춰 사람을 찾느라 20대에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보는 일이다.  과잉보호가 아이의 독립을 막는다. 아이에게 실패를 허락할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것, 그게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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