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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두 분 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by 김민식pd 2012. 6. 8.

"먼저 이렇게 최후 진술의 기회를 주신 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곳에 계신 검사님들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검사님들의 말씀에 따르면 저는, 불법 파업을 선동하고 조합원 간 폭력행위를 조장하는 자로

 

즉각 구속이 불가피한 현행범입니다.

 

 

 

하지만 검사님들께 감히 말씀 드리자면, 저는 자유민주주의자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언론사 직원으로서, 제게 가장 소중한 자유는 언론의 자유입니다.

 

또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자로서 언론의 자유를 위해,

 

또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을 위해 지난 몇 달간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노력한 저의 모습이

 

여기 계신 검사님들께는, 불순하고 불법적인 행동으로 보여졌다는 점에서

 

저의 지난 행동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신 두 분 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위의 글은 어제 있었던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행한 저의 최후 발언입니다. 3시간 동안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간의 치열한 법적 공방을, 제3자로서 지켜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검사의 말 한 마디, 변호사님의 말씀 한 마디에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마음을 졸입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드디어 피의자 최후 진술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저의 발언보다는 사실 이용마 기자의 발언이 정말 마음을 울렸는데, 온전히 기억하지 못해 함부로 그의 뜻을 왜곡할까봐 이 자리에서 전하지 못하는게 아쉽습니다. 

 

검사는 130일 넘게 공정보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파업을 하고 있는 MBC기자들을 가리켜 '공영방송 사장의 명예를 함부로 훼손한 이들은, 기자도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이용마 기자는 몇번이나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기자로서의 자부심 하나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 자부심을 지키는 과정에서 해고를 당하고 이제 구속을 목전에 둔 사람에게, '당신은 기자가 아니다' 라니요?

 

장재훈 교섭국장은 최후 진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KBS 파업 뉴스인 리셋뉴스9팀이 한국방송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습니다. 기자협회도 인정한 기자들을 검사님이 기자가 아니라고 하시니 참 억울합니다."

 

지난 몇년간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데 앞장 선 사람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자고 큰 소리치는 세상입니다. 이 땅의 죽은 언론 탓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이라 하지만, 대한민국 검사라는 이가 진짜 기자와 가짜 기자도 구분하지 못한다니, 참담한 심경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떤 일의 한 가운데 서 있으면, 멀리서 보는 객관성의 시선을 잃어버립니다.

 

검사의 발언을 들으며, 나 역시 혹시 그런 오류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신 검사들께 감사드리며,

 

집행부 다섯명에 대한 두 번의 구속 영장 청구가, 두번 다 전원기각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어,

 

검사 여러분도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삼으시기 바랍니다.

 

 

어제 하루 종일, 저희 MBC 노동조합 집행부 다섯 사람을 응원해주시고, 늦은 밤 전원 기각 소식에 함께 기뻐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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