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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그동안의 축제, 즐거웠습니다.

by 김민식pd 2012. 7. 17.

(MBC 파업 상황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십니다. 오늘부로 조합원들은 방송 현장에 돌아갑니다. 저와 집행부는 매일 회사 로비에서 농성을 이어가며 얼마 남지 않은 김재철 사장의 마지막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170일을 함께 싸워주신 조합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한 선배님의 글로 대신합니다.)

 

현장에 다시 서는 MBC 노동자들, 그 위대한 단결
-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Op.92 2악장

 

이것은 신성한 축제다.

 

분노는 결국 폭발했다. <PD수첩>이 ‘피떡수첩’이 되고 뉴스데스크가 외눈박이 편파보도로 얼룩질 때 이미 저항은 예고되고 있었다. 2010년, ‘청와대 조인트’ 사장의 말바꾸기가 39일 파업을 유발했다. 그로부터 2년, 저들은 제 손으로 방송을 망가뜨리기 바빴다. 무죄가 확정된 프로그램에 대해 사과방송을 하고 PD들을 징계한 것은 오직 청와대를 향한 충성 맹세였다. ‘국장책임제’ 등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는 모두 불구가 됐고, 그 어둠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패악을 저질렀다. 정당한 아이템은 휴지통에 들어갔고, 멀쩡한 리포트는 삭제되거나 손발이 뒤틀린 채 방송됐다. 대화는 불가능했다. 로봇같은 하수인들이 모든 보직을 장악했고, 대화로 해결을 시도한 PD ․ 기자들은 한직으로 쫓겨났다.

 

MBC 노조원들은 온몸으로 거부했다. 이 모든 패악의 근원인 아바타 사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공정방송도 사내민주화도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노조원들은 모두 깨닫고 있었다.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 끝까지 투쟁이다! 1월 30일 시작된 파업 투쟁은 한겨울 추위를 뜨겁게 달구었다. 저들이 ‘정치파업’이라 매도했지만, 4 ․ 11 총선 이후 투쟁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 올랐다. 그리고 장마와 불볕더위가 교차하는 7월 18일, MBC의 자랑스런 노조원들은 강철같은 단결력을 유지하며 현장에 복귀했다. 이미 생명이 다한 아바타 사장의 퇴로를 열어주기 위함이었다. 170일 동안 흔들림 없었던 파업 투쟁의 결기를 보도 ․ 제작 현장의 치열한 실천으로 이어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자랑스런 MBC 노조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진짜 투쟁은 지금부터라는 것을.

 

MBC가 ‘주인 없는 회사’라고? 모르는 말씀이다. MBC 구성원들은 어느 회사 직원들보다 더 강한 주인의식을 갖고 있다. 9시에 출근해서 맡은 일만 하고 6시에 퇴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 좀 더 창의적이고 생동감 있게 하려고 몸과 마음을 바친다. 그리고, 이러한 주인의식의 원천이 바로 MBC 노동조합이다.

 

MBC가 ‘노영방송’이라고? 이 또한 모르는 말씀이다. 노조 집행부가 인사권을 갖고 회사를 경영하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든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국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게 노동조합의 존재 덕분이라면, ‘노영방송’은 좋은 게 아닐까?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방송 언론인의 기본자세를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이렇게 좋은 방송사가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보도 부문, 편성제작 부문, 기술 부문, 미술영상 부문, 경영 부문…. 각 파트의 조합원들은 모두 자기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집행부를 중심으로 힘차게 단결했다. 파업 초기에 집행부가 강조했듯, 조합원들은 누가 시켜서 파업을 한 게 아니라 스스로 떨쳐 일어난 것이다. 모두 자발적이었고 민주적이었다. 정영하 위원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등 집행부는 십자가를 진 채 앞장섰고, 노조원들은 이들을 신뢰하고 사랑했다. 집행부는 피흘리면서도 노조원들에게 환하게 웃어 보일 수 있었다. 파업 시작할 때의 튼튼한 대오는 날이 갈수록 강해졌고, 그 단결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보도 ․ 제작 현장에 다시 선 것이다.

 

170일의 파업, MBC 역사에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아픔이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입장을 밝혀야 했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모든 사람은 필사적으로 자기 합리화의 논리를 만들었다. 백인백색(百人百色)의 변명들, 모두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국 자기 걸 지키면서 궁색한 입장을 합리화하는 궤변이기 일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할 수 있었던 건 오직 파업 노동자들뿐이었다. 모든 걸 버릴 각오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한한 절망의 힘이 징계 ․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투쟁으로 나타난 것이다. 국민의 힘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기에 승리를 확신했던 것이다.

 

이제 방송장악 세력과 적당한 타협은 없다. “계선조직으로 들어가니 어쩔 수 없었노라”는 변명은 이제 국민 앞에 통하지 않는다. 25년 전, 6월항쟁에 무임승차한 원죄를 이번 파업으로 비로소 갚았다. 이제 우리는 부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실천하느냐, 그것뿐이다. 전제조건은 단 하나, 제작 현장에서 굴종과 기만과 궤변의 사슬을 영원히 장사지내는 것뿐이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은 모든 비겁한 것, 비굴한 것, 비열한 것을 불살라서 떠나보내는 우리의 장엄한 행진곡이다.

 

“나는 인류를 위하여 향기로운 포도주를 빚는 디오니소스다. 사람들에게 거룩한 도취감을 주는 것은 바로 나다.”

 

1812년, 베토벤이 마흔두 살 때 작곡한 이 교향곡은 숭고한 도취를 통한 삶의 카타르시스다. 라이프치히에서 이 곡을 들은 대부분의 청중들은 “술에 취한 사람이 작곡한 음악”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칼 마리아 폰 베버는 “베토벤이 이제 정말 정신 병원에 갈 때가 됐군”이라고 했다. 베토벤 자신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베토벤은 통념도, 인습도, 사람들의 쑥덕거림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자기의 기질대로 행동했다. 자신의 천재성과 힘의 자각에서 오는 기쁨, 그 힘을 거침없이 분출하려는 욕망이 있을 뿐이었다.

 

오늘 우리는 디오니소스의 포도주에 취하자. 거룩한 도취감을 맛보고 다시 깨어나자. 자아를 잊은 헌신, 그 진정성이 배어 있는 방송…. 파업이 우리들의 축제, 그 시작이었다면 지금부터 우리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그 축제를 완성해야만 한다. 저들이 처참히 망가뜨린 MBC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 진정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려는 우리의 불꽃같은 노력을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MBC 이채훈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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