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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다시 수행이 필요한 시간

by 김민식pd 2012. 7. 19.

파업을 오래 하면서 노동조합 집행부 가운데 지병이 생긴 사람이 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허리 디스크다. 로비 바닥에 앉아서 연좌 농성을 오래한 탓에 디스크로 병원 치료를 다니는 사람도 있다. 얼마전 템플스테이에 가서 스님께 물었다. "장좌불와(잠잘 때 조차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하는 것)하시는 스님들이 디스크는 안 오나요?" "스님들이 가만히 앉아서 명상만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운동을 많이 합니다. 산을 걷고요, 아침 저녁 예불 때마다 108배를 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앉아 있는 것, 힘듭니다. 미리 108배같은 운동을 해서 몸을 풀어줘야 합니다."

 

평소에 108배를 늘 하는데, 파업 시작하고는 하지 않았다. 마음 수양을 위해 절을 하는데 자꾸 어떤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절을 하면서도 마음이 괴로웠다. 이에 대해서 스님께 물었다. "절을 할 때 자꾸 미운 사람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흐트러집니다. 미운 사람을 생각하며 그 사람 나가게 해달라고 하는 절이 과연 수행일까요?" "미운 사람이 생각나면 그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절을 올리면 됩니다. '나는 저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지. 나는 선배가 되어도 저렇게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나는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교훈을 내게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불가에서는 역행보살이라 부릅니다.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덕에 내가 깨닫고 배우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절을 하십시오."

 

어제는 새벽 2시에 잠을 깼다. 전날, 170일 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조합원들을 올려보냈는데,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늦은 밤 보복인사를 날렸다. 누운지 3시간만에 잠을 깼는데, 아무리 뒤척여도 잠은 오지 않았다. 결국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새벽 3시에 108배를 시작했다. 유튜브에 108배를 치니 108배 동영상이 떴다. 스님의 낭송에 따라 절을 올리면 아무래도 잡생각을 물러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회사에 나갔다.

 

MBC 주위에는 '하나되는 대한민국 승리의 MBC'라는 올림픽 방송 홍보 간판이 둘러처져 있다. 파업에 동참한 스포츠 피디가 총 8명이다. 올림픽 방송을 목전에 두고 사람이 부족한 스포츠국 입장에서는 파업을 풀고 올라온 조합원을 반기리라 생각했지만, 웬걸 인사 발령을 내어 8명의 피디 중 1명은 징계, 3명은 타부서 전출을 시켰다. 절반을 쫓아낸 것이다. 그 중 2명은 용인드라미아 센터로 발령이 났는데, 용인에 있는 사극 세트장 관리 업무다. 왕복 출퇴근만 150킬로인데, 사극 세트장 위치는 기본적으로 산 속이다. 회사앞에 집을 얻어 여의도에 사는 사람을 졸지에 왕복 4시간 걸리는 부서로 보낸 것이다. 보복 인사도 이런 악질적인 보복 인사가 없다. 집행부의 방침을 믿고 업무에 복귀한 조합원들 등에 칼을 꽂고 '하나되는 대한민국'이란다. 

 

저녁에 로비에서 농성을 하는데 대형 프로젝트 화면에서 계속 올림픽 예고가 나왔다. 김성주 아나운서가 '올림픽은 MBC'라며 나와 환하게 웃는다. 'MBC보다 돈!'이라며 나간 사람을 데려오면서, '돈보다 MBC!'라며 6개월간 월급도 받지 않고 파업한 아나운서들은 전출시키는 회사, 업무 복귀하라고 난리칠때는 언제고 우리가 회사와 협상도 안하고 자발적으로 집행부의 결정으로 조합원들을 올려보냈더니 외려 보복인사라..... 만감이 교차하는데 김재철 사장이 퇴근하더라. 해고자들과 함께 서서, 구호 하나 외치지 않고, 조용히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았다. '저 분이 나의 역행보살이란 말이지?' 

 

힘들다..... 어떤 상황에서도 즐겁게 살자고 다짐했는데, 앞으로 남은 한 달, 즐겁게 지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시 수행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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