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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구속과 자유, 그 촘촘한 경계 사이에서

by 김민식pd 2012. 5. 26.

 

공짜로 즐기는 미디어 중 웹툰이 있다. 예전에는 만화방에 가서 빌려보던 만화, 요즘은 집에 앉아 공짜로 본다. 그런 점에서 웹툰은 중년의 덕후가 발견한 새로운 장난감이다.

 

내가 요즘 즐겨보는 웹툰은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다. 3일 연휴를 맞아 집에서 뒹굴거릴 분들은 일독을 권한다.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er/15039

 

이 만화의 압권은 그 제목이다. '미생,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취업을 위해 인턴을 시작한 한 바둑 기사의 이야기다. 인턴이나 취업 준비생들의 삶을 한마디로 축약한 단어가 미생, 아닐까? 놀고 먹는 백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장인도 아닌... 위태한 형국에 놓인 바둑판의 돌이다. 아직 죽은 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 수도 아닌... 

 

월요일에 구속 영장 실질 심사를 받고 경찰서 유치장에 앉아서 '미생'의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나는 지금 어떠한 상태인가? 나는 자유인인가, 갇힌 자인가? 영장이 기각되면, 나갈 것이고, 영장이 발부되면, 그 자리에서 남아 반년에 가까운 세월을 구속의 상태로 보내야한다. 과연 그 순간, 나는 자유였을까, 구속이었을까?

 

대학에서 석유시추공학, 석탄채굴학, 이런거 공부한 공돌이라 법은 잘 모른다. 그런데 구속영장 청구를 받아보니, 내가 참 순진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죄가 있고 없고는 법정에서 가려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단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재판을 받을 때 까지, 즉 그 죄의 유무가 가려질 때까지 일단 유치장에서 세월을 보내야한다.

 

유치장 경험, 별로 유쾌하진 않다. 유치장에 앉아있는 동안 머리를 스치는 생각. '나가면 착하게 살아야지. 다시는 검찰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결국 구속 영장이 노리는 바는 바로 이 자기 검열이 아닐까? '우린 너를 언제든지 유치장에 가둘 수 있어. 네가 죄가 있고 없고는 상관하지 않아. 일단 가둬놓고 그 죄를 따질테니까. 그러니까 까불지 마.' 

 

이건 검찰의 꽃놀이 패가 아닌가? 구속이 되면, 나의 몸이 유치장에 갇히고, 구속이 안되어도 나의 마음은 자기검열의 감옥에 갇힌다. 난 그들이 나의 몸을 가두는 것보다 나의 마음을 가두는 것이 더 두렵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내키는 대로 즐겁게 사는 중년의 덕후가 자기 검열의 감옥에 갇히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옥이 아닌가! 

 

꽃놀이 패는 꽃놀이 패로 받아야한다.

 

유치장에 있는 동안 주위를 둘러봤다. 책이 100여권 눈에 띄었다. 감방 안에서도 책은 마음껏 읽게 해주는구나. 하긴 그렇지,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서 탈출만 꿈꾸는 죄수보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죄수가 낫지.

 

내 삶에 있어, 최고의 낙이 독서다. 나는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는다. 만약 구속 된다해도, 술 담배 커피는 아쉬울 게 없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좋아하는 책이나 실컷 읽고 나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속되면 완전한 독서가의 삶을 살 것이요, 나가면 자유로운 양심으로 살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꽃놀이 패가 아닌가.

 

유치장 생활 끝에 얻은 교훈이다. 몸을 가두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마음을 가두는 것이다.

 

 

3일간의 황금 연휴의 첫 아침이다. 주말 동안, 여러분의 인생을 마음껏 즐겨보시기 바란다.

아니, 3일 동안은 마음껏 놀면서, 하고 싶은 것만 찾아 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란다.

세상의 기준에 묶여,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사는 건 아닌지?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갇혀, 진짜 나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사는 건 아닌지...

 

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내 몸을 인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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