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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나는 왜 블로그를 하는가

by 김민식pd 2023. 5. 22.


예전에 소개한 <직면하는 마음>(권성민 지음 / 한겨레출판)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젊은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어느 소설가는 꾸준히 드라마화 제안을 받으면서 대본도 직접 써볼까 하고 드라마 작법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거기서 강사의 첫 마디를 듣고 두 장르 사이의 거대한 차이를 느꼈는데, "소설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드라마는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요? 얼마나 많은 돈과 인력이 투입되느냐에서 시작합니다. 소설은 작가 혼자 작업실에서 씁니다. 망해도 혼자 망해요. 출판사에 손해를 끼치긴 하지만, 영화가 망했을 때 제작사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규모가 적습니다. 드라마 연출하면서 저는 그게 늘 힘들었어요.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나를 믿고 내게 기회를 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점에서...

청춘시트콤 <뉴논스톱>이 제 데뷔작인데요. 아마 가장 즐겁게 일했던 시기같아요. 그때는 제가 철이 없어서,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건 마음껏 다 해봤거든요. 2000년 당시 MBC가 잘 나갈 때고, 본사 제작 시스템이라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칠 염려도 없었고요. 나중에 드라마로 부서를 옮기고 외주제작사와 함께 일을 하다보니 심적 부담이 커지더라고요. 나때문에 여러 사람 밥줄 끊기는 건 아닌가 하고... 그 부담이 결국 퇴사라는 결정으로 이어졌지요. 

명퇴하고 제 삶의 중심에는 블로그가 있어요. 일상에서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서 합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요. 그리고 그 경험을 블로그에 기록합니다. 블로그 포스팅의 반응이 없어도 나 혼자 망하면 될 일이니 부담이 적습니다. 오로지 나의 즐거움에 집중합니다. 이걸 쓰는 내가 즐거워야, 읽는 분들도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이라는 부담을 내려놓고, 취미라 생각하며 이어갑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어느 순간 잘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 그게 은퇴자가 일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현업을 할 때처럼 남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시장의 반응을 살피지 않아도 되니 가능한  일이지요. 

권성민 피디는 학생들을 만나는 강의 자리에 자주 불려간답니다. 피디 지망생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작문'의 어려움에 대해 호소하지요. 피디 시험 작문 주제는 예상이 불가능한 영역에 있어요. '평상심' '세상에서 나만 알고 있는 유일무이한 생각' '한류' 이런 제시어들이 나오거든요. 한 시간씩 머리를 싸매고 글을 써야 하지요. 준비하는 이들 입장에서 주제가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막막할 겁니다. 저자는 이런 조언을 해요.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예상 질문을 뽑아가며 연습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무엇을 쓰는 사람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인가?" 어차피 뭐가 나올지 모른다면 내 예상이나 통제 바깥의 것에 매달리기보단. 내가 잘 아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내 삶을 관통하는 질문이나 가치가 있다면 무슨 제시어가 나오든 상관없이 그 얘길 하면 된다. 그런 사람이라면 어차피 PD가 되어서도 계속 그 이야기를 하게 될 테니까.'

2010년에 블로그를 만들 때, 제목을 놓고 고민했어요. 내 삶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무엇일까? 3가지 단어가 떠올랐어요. 저는 일단 공짜를 좋아하고요. 돈을 쓰지 않고도 즐겁게 살 수 있다면 돈을 벌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이게 20대부터 저의 철학입니다. 인생을 즐기겠다는 자세가 있고요. 더 큰 세상을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공짜, 즐기는, 세상. 그래서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지요. 

은퇴하고 공짜에 더이상 연연하지는 않아요. 평생 벌고 모은 돈이 있으니 조금씩 쓰면서 살아가려고요. 내가 즐기는 일을 하나씩 더 늘여가고 싶어요. 탁구도 배우고, 줌바도 배우고. 내가 경험한 세상의 영역을 끝없이 넓혀가고 싶습니다.

내 삶의 주제는 무엇인가, 그걸 고민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 책에 대해 쓴 첫번째 리뷰는 여기에 있어요.

https://free2world.tistory.com/2942

 

변수로 가득 찬 세상, 상수가 필요하다

중고생 진로 특강을 가면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피디가 될 수 있을까요?" 공대를 나온 제가 피디의 꿈을 품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도서관을 찾아가는 것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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