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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환상과 환멸 사이를 오가는 삶

by 김민식pd 2023. 6. 5.

지난주에 소개한 김소영 작가의 책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독서의 행복을 만끽하고 싶을 때면 저는 고전 문학을 떠올리는 편입니다. 이 책 <행복의 나락>을 골랐을 때만 해도 읽어 볼만하다는 생각 정도였는데, 조금 한가한 오후에 꼼꼼히 읽다 보니 이야기에서 광채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탁월한 문장마다 포스트잇을 붙였다면 모든 장이 뒤덮일 뻔했죠.’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읽어봤는데요. 단편집도 있다고? 알고보니 단편으로 더 유명한 작가라네요. 소설집 첫 번째 이야기인 <오, 붉은 머리의 마녀>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는, 갑자기 이야기의 결말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아, 김소영 작가님의 영업에 넘어가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행복의 나락>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 조이스 박(박주영) 옮김 / 녹색광선)

책의 머리맡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도날드는 환승하는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삶의 후반전이란 삶에서 이것저것을 잃어가는 기나긴 과정이므로, 그 과정 속에서 이 정도의 경험은 어쩌면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비행기 환승 세 시간 전에> 중에서

흠... 그렇지요. 저도 은퇴 후의 삶에서 많은 것을 잃었어요. 매일 가는 직장, 매일 만나던 동료, 매월 나오는 급여... 나이 50이 넘어가면요,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둘 늘어갑니다. 한때는 잘 나가는 피디였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실은 그게 다 인생의 과정입니다. 저자인 피츠제럴드도 그랬대요.

‘피츠제럴드의 삶 또한, 영광의 순간에서 많은 것들을 잃어가는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고 첫사랑 지네브라 킹을 만났으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거절당하고 대학도 마치지 못한 채 1차 대전에 참전한다. 이후 부유하고 아름다운 젤다 세이어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젤다 또한 지네브라 킹과 같은 이유로 피츠제럴드와 약혼을 파기한다. 그러다 1920년 첫 장편 <낙원의 이편>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젤다 세이어와 결혼한 그는 이른 나이에 최고의 인기 작가로서 부와 명성을 누렸다. 부부는 파리로 건너가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며 사교계의 유명 인사가 된다. 하지만 1930년 이후 내놓은 작품들의 연이은 실패로 피츠제럴드는 술을 지나치게 탐닉하게 되었고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인다. 사랑으로 맺어졌던 아내 젤다와의 결혼생활도 결국 파탄에 이르렀고, 젤다는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를 겪으며 그는 재기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작품을 집필했으나, 결국 술로 인한 심장마비가 그의 목숨을 앗아가고 만다.’

젊은 시절에 화려한 삶을 살았던 사람일수록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 힘들 수 있어요. 내가 가진 자산이 나의 젊음이자 외모의 매력이라면, 노후가 두려울 수 있지요. 미모, 젊음, 성공, 모두가 행복의 조건이지만, 집착하는 순간, 불행의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잃어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해요. 제가 은퇴하고 느낀 건, 나이 50에 새롭게 만나는 삶의 즐거움도 많다는 겁니다. 제게는 탁구가 그렇고, 줌바가 그렇고, 피아노가 그래요. 젊어서 드라마 피디로 바쁘게 일할 때는 제대로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물론 노후에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운동을 통해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지적 호기심을 확장하는 노력, 새로운 취미 활동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는 노력 등등. 

이 단편집 정말 재미있어요. 피츠제럴드처럼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작가의 작품을 번역할 때, 작업이 쉽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풍광과 문화까지 표현해야 하거든요. 번역가이자 저자이신 조이스 박님의 유려한 문체가 잘 드러나는 책이에요. 이 책을 읽고 피츠제럴드의 다른 작품을 읽다 ‘흠....’ 똑같은 저자라도 번역자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읽히는구나, 하고 다시 체감했어요. 




조이스박님은 역자 후기에서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사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삶의 표면을 멋지게 그린다는 편견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가 삶의 표면을 눈부시게 그린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그의 전부는 아니다. 환상은 환멸과 샴쌍둥이이기 때문이다. 환상을 좇는 자는 반드시 환멸에 머리를 박게 되어 있다. 피츠제럴드는 찬연하게 빛나는 삶의 표면 아래 처절한 환멸의 구렁텅이도 기가 막히도록 잘 그리고 있다. 본인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더 슬퍼지기도 한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환상을 직접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좇아보았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사는 행복과 저주를 동시에 다 겪었고, 명예와 부를 치열하게 좇아 그 정점을 누려보았으며 동시에 그로 인해 빚에 시달리는 구렁텅이에서 오래 허덕였던 삶이었다. 

사방에서 명멸하는 빛나는 이미지에 둘러싸여 사는 현대인들이 재소환된 피츠제럴드의 글들을 통해 자신의 삶 속에서 환상과 환멸의 변주를 잘 이루어 내시기를, 부디 환상에 너무 치우쳐 불협화음으로 환멸 속에 추락하지 않으시기를 빈다.’

참 따뜻한 말씀이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평생 사람은 환상과 환멸 사이를 오가며 산다고 생각합니다. 환상은 새로운 무언가를 향한 갈망으로 사람을 성장과 자기계발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요. 그러다 막상 꿈을 이루고 난 다음에는 환멸이 찾아옵니다. 어쩌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일지 몰라요. 20대에 꿈을 이루었다고 그 꿈에 만족하며 남은 평생을 사는 건 인생의 낭비잖아요? 환상과 환멸을 오가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삶을 꿈꿉니다.

<행복의 나락>을 읽고 피츠제럴드의 진성 팬이 되었어요. 나이 마흔 넷에 요절한 천재, 작가 데뷔 후, 20년 동안 160여 편의 단편을 썼다니, 그가 남긴 이야기만 찾아 읽어도 노후에 심심할 일은 없겠네요.

오늘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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