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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책벌레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by 김민식pd 2023. 5. 29.

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읽습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책을 소개하는 책을 읽는 거지요. 좋은 책을 소개하는 책을 만나면, 갑자기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확 늘어납니다. 책벌레의 행복이 바로 거기에 있지요.

MBC 아나운서로 일하다 사표를 내고 책방을 연 김소영 아나운서를 볼 때마다 놀랍니다. 어쩜 저렇게 단단하고 멋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김소영 아나운서가 쓴 책을 보면, 그 비결은 바로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이어온 독서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워낙 책을 좋아해서 서점까지 만들고 꾸리는 사람.

독립 서점을 운영하다 어느 날 문득 ‘우리도 인터넷 서점처럼 책을 집 앞까지 배송해 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고요. 한 달 동안 가장 특별하게 읽은 책 한 권을 골라, 책을 선정한 이유를 담은 책편지를 함께 보내는 서비스를 출시합니다. 어느새 매달 수천 명의 독서 친구들이 모이게 되고요.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게 됩니다. 한 달에 한 번, 한 통의 ‘책편지’를 쓰는 시간. 그렇게 모은 21통의 책편지를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김소영 에세이 / 책발전소 X 테라코타)

MBC의 간판 아나운서로 활약하다 문득 퇴사하고 서점을 연 저자.

‘최근 몇 년간 사업을 하면서 외로움이란 주변에 사람이 없는 데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어느 누구에게든 편하게 털어놓고 말할 수 없는 데서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이 언제나 잘 풀릴 수만은 없기에 어떤 날은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처럼 느껴지고, 가족조차도 내 마음을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끌어내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43쪽)

이 글을 읽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가끔 저에게 ‘피디님은 항상 명랑하셔서 외로움은 안 타실 줄 알았어요.’라는 분이 있는데요. 내가 외로운 건,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의 고민을 터놓고 말할 수 없다는 데서 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거든요. 타인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비난을 감당하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 역시 오롯이 혼자 해내야 할 몫이고요. 그렇기에 저는 외로움은 인생의 상수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제게는 책이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터놓지 못하는 고민, 고민 상담받는 기분으로 책을 읽거든요. 

‘인간은 완벽히 혼자 있는 순간이 되어야 비로소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듯합니다.’

(49쪽)

맞아요. 그래서 저는 외로움을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장욱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시를 쓴다는 건 수류탄 던지기에 가깝고, 소설은 길고 지루한 지뢰 매설 작업과 비슷하다고 말했는데요. 제가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감탄해 마지않았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서사, 환상적인 분위기와 기막힌 표현들, 의도하지 않은 듯 은근히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 하나하나가 작가의 성실한 매설 작업의 결과물인 거겠지요.’
 
(63쪽)

이 대목을 읽고 깨달았어요. 에세이를 쓰는 것도 지뢰 매설이구나. 읽는 사람의 마음에 가서 탁 터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글을 쓰지만, 때로는 내 발목을 날리기도 하는 지뢰... 그렇게 생각하면 글을 쓰기가 참 두려워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저자들의 꼼꼼한 매설한 지뢰가 내 마음의 발화점을 건드리고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권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결론’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클럽 멤버들이 책편지를 읽고 나면, 책을 펼치도록 해야 하니 결말 언급은 피해야 했습니다. 애써 제가 정한 원칙을 지키다 보니 점차 이 중간 과정에 오래 머무는 일이 싫지 만은 않았습니다. 정말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은 시작과 결말이 아닌 그 과정에 있다는 것을, 작가가 만든 이야기 속을 유영하며 때로는 감탄하고, 슬퍼하며, 짓눌렸다 또 살아나며 나의 감정이 팔딱팔딱 숨 쉬는 과정에서 찾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220쪽)

진로 특강을 다니며, ‘피디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중고생에게 ‘책을 더 많이 읽으세요.’라고 재미없는 답변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답을 조금 바꾸려고요. ‘김소영 아나운서의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를 읽어보세요. 조금 더 단단한 어른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어요. 피디가 되느냐 마느냐, 아나운서가 되느냐 마느냐, 그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느냐가 중요해요. 나는요, 피디가 되려고 어려서부터 매년 200권의 책을 읽은 게 아니에요. 책을 읽는 게 너무 즐거웠는데,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직업도 재미있겠다고 느끼게 된 거죠. 무엇을 하든 그 과정이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21권의 책소개를 받으며 매 순간 설레었어요. 다음 번에는 김소영 작가님의 추천으로 만나본 책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재미난 책을 소개받을 수 있어 행복한 하루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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