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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풍요보다 화목이 더 중요한 이유

by 김민식pd 2023. 6. 16.

개인적으로 저는 지난 2월에 쿠바 여행을 하며 마음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음식, 잠자리, 교통 등 최소한의 기본 인프라가 너무 열악하고요. 그나마 장점이라면, 물가가 싸다는 점인데 그건 쿠바가 너무 가난한 탓이에요. 왜 한국 여행자들은 쿠바 여행을 낭만적이라고 여겼을까? 아마 한국에 없는 어떤 특징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화목이에요. 모두가 공평하게 가난하기에 누릴 수 있는 화목.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정신건강을 전문적으로 연계해 분석해온 대표적 사회심리학자인 김태형 선생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풍요중독사회> (김태형 / 한겨레출판)

저자는 오늘날 한국인의 삶을 “학대를 피해 미친 듯이 위계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회가 이상적인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바로 풍요와 화목이지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동시에 모두가 평등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 두 가지 조건으로 세로축과 가로축을 나누면 4분면이 나옵니다. 


인류 역사는 가난-화목사회로 시작합니다. 수렵채취사회가 그렇지요. 인류 역사에서 이 원시공동체 사회가 차지하는 비율은 95퍼센트나 됩니다. 원시공동체 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평등 수준은 대단히 높았던 화목한 사회였어요. 

농경이 시작되고 물질적으로 조금 풍요로워졌지만 잉여생산물이 나오면서 계급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가난-불화사회가 나타난 거죠. 비록 계급간에는 불화하지만 계급 내에서는 화목했어요. 같은 농부들끼리는 자산격차가 크지 않아 대부분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인류는 풍요로운 시절을 맞게 됩니다. 제가 기억하는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경제 발전으로 한국 사회가 더 풍요로워졌고, 비록 독재정권과는 불화했지만, 노동자와 대학생이 함께 공동의 적과 싸운 화목한 시절이었어요.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소위 선진국들도 과거에 비해 평등 수준이 크게 높아지고 화목해졌습니다. 이 시기 자본주의 나라들은 상대적인 의미에서 풍요-화목사회였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며 자산의 격차가 커졌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발전한 자본주의 나라들은 대부분 전형적인 풍요-불화사회가 되었습니다. 현재로서는 사회주의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북유럽 국가들이 풍요-화목 사회입니다. 상대적으로 평등 수준이 높고 인간관계가 양호하니까요.

①가난-불화사회는 ‘한 쪽밖에 없는 콩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사회’, 
②가난-화목사회는 ‘콩 한 쪽이라도 나누어 먹는 사회’, 
③풍요-불화사회는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극소수가 독차지해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는 사회’, 
④풍요-화목사회는 ‘먹을 것이 풍족하고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사회’.

여러분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공동체에서 살고 싶은가요? 물질주의적 시각으로 보면 ④, ③, ②, ①로 선호도가 나올 것 같은데요. 심리학자인 저자는 ④, ②, ①, ③순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더 중요한 것은 풍요가 아닌 화목이기 때문이지요.

'위계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정해지고 차별을 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위계에 만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 자신이 낮은 위계에 속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다 보면 자기혐오에 빠질 수도 있다. 나아가 자신과 같은 위계에 있는 사람을 좋아하기란 불가능하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듯이 자신의 위계를 긍정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만이 동일한 위계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다. 자본가들한테 차별당하는 노동자가 자신이 노동자인 것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면 그는 다른 노동자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들과 연대하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이 노동자인 것을 긍정하고 자랑스러워하면 그는 다른 노동자들을 사랑할 수 있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낮은 위계에 속해 있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동일한 위계의 타인들과 연대할 수 있다. 위계 상승 욕망이 강하다는 말은 곧 그가 자신의 위계를 탈출하고 싶어 한다는 말과 통한다. 자신의 위계를 부정하는 사람이 같은 위계 사람들과 불화하는 것은 필연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사회에 마구 칼질을 해 사람들을 다층적 위계로 썰어놓고는 동일한 위계의 사람들조차 채로 쳐 사방으로 흩어놓습니다. 21세기형 불화를 특징으로 하는 풍요-불화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철저히 파편화되고 원자화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요. 참 가슴아픈 현상이지요.



사람의 신체는 위협을 느끼는 상황, 즉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소화나 면역 등 일상적인 신체 활동을 억제합니다. 아드레날린과 같은 특정 호르몬의 분비가 촉진되는 반면 정상적 신체 기능을 위한 호르몬 분비는 억제됩니다. 그러다가 위협이 사라지면 신체는 다시 일상적인 신체 활동으로 복귀합니다. 불안으로 인해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신체는 심혈관계나 면역체계 등에 이상이 생깁니다. 소화불량, 피로, 우울증 등이 나타나고 면역기능이 저하되어 각종 질환에 취약해집니다. 만성 스트레스는 몸의 건강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칩니다.

공포는 지속 기간이 짧은 반면 불안은 깁니다. 풍요-불화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몸의 건강이 빠른 속도로 나빠지는 것은 불안, 특히 존중 불안에 점령당한 채 살아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앵거스 디턴이 쓴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에 나오는 미국 사회가 그렇습니다. 술이나 약물 중독에 의해 서서히 건강이 나빠지거나, 분노 조절 장애로 인한 총기 사고로 인한 사망률도 높아집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미국에서는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그런 뉴스를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도 우려됩니다. 악순환이 계속 되는 거지요.


“선진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나라는 가장 부자 나라가 아니라 가장 평등한 나라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실제로 평등한 사회일수록 건강지수가 높습니다. 화목-불화 변수가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대전 시기의 영국입니다. 사람들은 전쟁 상황에서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건강이 크게 악화된다고 예상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10여 년 동안 영국 민간인의 기대수명은 급속하게 늘었어요. 이 시기의 기대수명 증가폭이 20세기 나머지 기간의 기대수명 증가폭의 2배였습니다. 전쟁 중이었는데도 왜 이렇게 기대수명이 높아진 것일까요?

영국 정부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높여야만 했어요. 극소수의 자본가들만 부유하고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비참한 삶을 면치 못하던 제1차세계대전 직후만 하더라도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사회주의운동 등 치열한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갈등이나 혼란을 그대로 두고 전쟁에서 승리하기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영국 정부는 부자들한테 세금을 걷어 국민들에게 나눠 줌으로써 영국 사회의 평등 수준을 전례 없이 끌어올렸습니다. 전시에 영국 정부는 완전고용 상태를 달성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올리며 주요 생필품 배급제를 실시하는 등 국민 단합을 이룩하기 위한 평등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영국 사회의 빈부격차는 급속하게 줄어들었고 나치 독일을 무찔러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로 사회적 결속력도 높았습니다. 그 결과 영국 국민들의 건강이 급속하게 증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범죄율도 크게 떨어졌어요. 영국은,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전쟁 상황을 매개로 풍요-불화사회에서 가난-화목사회로 전환되었다고요.

전시의 영국은 모든 것이 부족한 가난한 사회일 수밖에 없었지만 평등 수준을 급격히 높였기 때문에 국민들은 존중 불안에서 해방되었고 마음과 몸의 건강 수준이 극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양차 세계대전 시기의 영국은 사람에게는 풍요보다 화목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다층적 위계 사회에서는 낮은 위계에 속한 사람일수록 건강 수준이 낮습니다. 1970년대 영국의 남성 공무원 17,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망률 연구에 의하면 맨 아래 위계의 공무원들은 맨 위 위계의 공무원들보다 평균적으로 사망률이 4배나 높았습니다. 맨 아래에서 위계가 한 계단씩 올라갈수록 건강 수준 역시 계단식으로 높아졌고요. 사회 극빈층이 아닌 소위 ‘철밥통’이라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인데도 건강은 위계에 따라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절대적 소득 수준보다 존중 불안과 관련된 위계가 건강에 더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뜻이지요. 즉 절대적 빈곤도 당연히 문제지만 다층적 위계는 큰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건강해지려면 빈곤을 퇴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다층적 위계, 불평등을 없애야 합니다. 오늘날의 인류는 과학기술과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으로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과거보다 훨씬 더 부유해졌고 더 풍요로워졌어요.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류는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심각해진 정신질환이나 사회악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화목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제아무리 부잣집일지라도 화목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것처럼, 화목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책의 맺음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약 중독자는 마약이 자신에게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마약을 과감하게 끊지 못해 파멸에 이르곤 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는 마치 이런 중독자를 연상시킨다. 사회를 화목하게 만들지 못하는 물질적 풍요가 사람들과 사회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풍요만을 추구하면서 자멸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는 사회적으로는 더 많은 경제성장을 향해,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돈을 향한 전력 질주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풍요에 중독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풍요-불화사회를 풍요-화목사회로 바꾸려면 사회제도를 바꿔야 한다. 개인들에게 사이좋게 지내라고 호소하기 전에 서로 싸우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부터 만들어야 한다.'

교황은 신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능한 정치와 시장자본주의의 실패를 확인했다면서 인류애를 중심에 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사회제도를 변혁해야 합니다. 불안하지 않은 사회, 화목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면 인류는 다가올 미래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겠지요. 21세기는 인류가 먼 옛날부터 간절히 꿈꿔왔던 이상사회인 ‘풍요-화목사회’로 나아가는 역사적인 분기점이 되어야만 한다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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