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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고독한 인생 수업

최고의 복수는 나의 성장

by 김민식pd 2022. 7. 4.

https://free2world.tistory.com/2815

 

남과 싸우는 사람 vs 나와 싸우는 사람

<모태 솔로를 만나다> 제3화, 지난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2편을 보고 오셔도 좋아요. https://free2world.tistory.com/2814 청년에게 물었어요. "『삼국지』에 나오는 사람 중 누구를 제일 좋아해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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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물입니다. 3편을 보고 먼저 오셔도 좋아요~

1990년 영어세계 5월호 잡지입니다.

제 이름이 잡지에 실린 건, 내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어려서 늘 책을 읽으며, 책에 내 이름이 나오는 날이 올거라곤 상상도 못했지요. 번역 응모로 그런 꿈같은 일이 제게 생겼어요. 

<영어세계> 잡지를  들어보이며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이날이에요. 내 인생이 바뀐 날. 남이 시키지 않은 일에 도전해서 처음 결실을 맺은 날. ‘아! 나도 하면 되는구나!’ 그 이후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다음 해, 복학했는데요. 학교  신문에 전국 대학생 영어 토론 대회 공지가 떴어요. 주최하는 학교가 경희대학교였어요, 고교 시절 저를 괴롭히던 친구가 다니는 대학이었지요." 
눈을 빛내는 청년에게 말했어요.
"저는요,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했어요. 앙갚음을 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었죠. 그 친구는 부반장에, 공부도 잘하고, 저보다 덩치도 훨씬 더 컸거든요. 속으론 그 친구를 멧돼지라고 불렀어요. ^^ 그 친구에게 복수하고 싶었지만, 복수라는 건 양날의 칼이에요. 자칫 복수의 칼을 갈고 사는 사람은 그 칼에 자신의 마음이 상하고 말아요. 저는요, 최고의 복수는 나 자신의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난 네가 말하는 그런 찌질한 녀석이 아니다. 라고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 그래서 전국 대학생 영어 토론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죠. 나가서 수상을  하면, 그 결과가 경희대 학보에 실리고, 그 친구가 내 이름을 볼 수도 있잖아요?  생각만으로도 너무 통쾌한 거예요. 이 악물고 준비했어요. 영어 토론 대회 원고를  쓰고, 토론 대회에 써먹을 좋은 표현도 싹 다 암기했지요. 그 대회에서 2등 했어요.  전국대회 2등!"

"아니, 진짜로 2등을 했다고요?"

"사실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때가 1991년도잖아요. 조기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은 어차피 아무도 없던 시절이에요. 대부분의 참가자는 영문과 학생이거나, 영어 동아리, AFKN 청취회, 혹은 TIME지 동아리 회원이었거든요. 저는 그들보다 확실한 경쟁력이 하나 있었어요. 영어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면서 메모리 스팬이 늘어난 거예요. 그래서 토론대회에 나가 쓸 표현들을 미리 영작을 하고 모조리 외워버렸어요. 다른 사람들이 떠듬떠듬 영어로 토론을 할 때, 저는 유창하게 할 수 있었죠. 왜? 다 미리 외워둔 표현이니까." 

청년이 눈을 빛내며 묻습니다.

"그럼 전국 대학생 영어 토론 대회에서 2등을 하고 인생이  확 달라졌겠네요?"


싱긋 웃습니다.

"영어를 잘한다고 인생이 술술 풀리는 건 아니에요. 1992년, 대학 졸업할 때 취업을 못 해서 고생했어요. 8군데 입사 원서를 냈는데, 7곳에서 1차 서류전형 탈락했어요. 딱 한 군데, 영업사원을 뽑는 회사에서 1차 통과했고요. 2차 필기 시험에서 지원자 중 수석을 한 덕에 무사히 취업했죠."

"수석이요?"

"음, 부끄러운 얘긴데요. 그 회사가 미국계 기업이라 토익으로 필기 시험을 봤는데요. 제가 930점인가 나왔어요. 요즘은 900점 넘는 사람이 많다지만, 92년도에는 드물었거든요. 결국 영어의 도움을 받은 거죠. 외판사원으로 겨우 일을 시작했죠. 직장생활하면서 밤마다 학원 에 가서 영어 공부를 했어요. 유비처럼 강을 또 건넌 거죠. 누구도 시키지 않은 공부를 스스로 한 겁니다. 그러고 나서는……"


청년이 급하게 말을 끊습니다.

"잠깐만요!"
"네?"
"제가 살아갈 인생…… 아니, 작가님이 살아온 인생을 한 번에 다 알고 싶지는 않아요. 어쨌든 작가님 말씀은, 일단 영어 공부를 하라는 거죠?"
"아뇨, 꼭 영어 공부를 하라는 건 아니에요. 사람마다 방법은 다르니까요. 강조하고  싶은 건, 무엇을 선택하든 정량적인 목표를 세우는 게 효과적이라는 거예요. 지금  나를 증명할 게 없다거나 실력이 부족해서 고민이라면, 믿어도 돼요. 시간이 해결 해주지 않는 시련은 없거든요."

사실 이 대목에서 고민이 됩니다. 저는 20대에 영어 공부로 자존감을 세웠어요. 하지만 그건 1990년대를 살아가던 나의 20대에 국한된 얘기가 아닐까요? 자동번역기가 활약할 세상을 살아갈 지금의 20대에게는 다른 목표가 필요할 수도 있죠.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꼭 영어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정량적 목표를 세워 하루하루 실천해나가는 거죠.

청년이 씩 웃습니다.
“네, 일단 저도 영어 공부를 한 번 해보려고요. 영어책 한 권 외워봐야겠어요.”
“아, 내 책을 봤군요. 요즘 20대에게도 그 방법이 효율적일까 모르겠네요?”
“작가님 덕분에 개울을 몇 번 건너더라도 끝까지 해보자는 의지가 생겨요.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돌아서는 청년의 뒷모습이 왠지 눈에 익습니다. 그의 현재가 나의 과거고, 우리 아이의 미래가 아닐까요? 그는 어떤 삶을 살고, 나는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20대에 얻은 깨달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자는 깨달음이 50대의 중년 백수에게도 답을 찾아줄까요?

제가요. 작년 한 해 많이 외로웠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웠고요. 외롭고 힘들 땐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까? 10대의 나, 20대의 나. 80 노인이 된 나를 상상 속에서 소환해냈어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고민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낯선 형식의 에세이라 어설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1990년 스물 한 살에 민식이는 깨달았어요. 내 번역이 어설픈가, 아닌가,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글을 써서 잡지에 응모하는 방법 밖에 없구나.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1년 동안 머릿속에서 굴렸던 글감이 이야기가 될까 말까는 세상에 내놓고 평가를 받는 길 밖에 없지요.

글을 쓰는 건 늘 두렵지만, 댓글로 응원해주시는 여러분이 제 은인입니다. 고맙습니다!  

'3화 쌍절곤의 고수를 찾아서' 편으로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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