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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고독한 인생 수업

‘잘’ 놀기 위한 3가지 기준

by 김민식pd 2022. 4. 11.

탁구장에서 만난 노인과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저는 이렇게 물었어요.

"나이 오십이 넘으면 어떻게 일을 해야 할까요?"

"오십이 넘으면, 죽어라 일만 하는 것보다는 쉬엄쉬엄 공부도 해야 해요."
"공부를 하라고요?"
"요즘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자칫 잘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되기 십상이지요. 잘 나가다 나이 오십 넘어 사고치는 사람이 많아요. 세상이 바뀐  걸 모르고, 옛날 방식대로 산 탓이라오. 100세 시대에 20대에 배운 걸로 평생 버티면, 곰탕이 맹탕 됩니다. 같은 솥에다 수십 년째 물만 들이붓고 국물만 우려내면 되나? 건더기도 넣고 양념도 자꾸 더해야지. 40~50대에 공부를 해야 평생 가는 맛 장수가 된다오."


공부를 하지 않으면 곰탕이 맹탕 된다는 말씀이 확 와 닿습니다. 버는 돈 보다 나가는 돈이 많으면 집이든 회사든 어려워지죠.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새로 입력하는 지식 없이, 내내 출력만 하고 평생을 버티기는 힘든 시대입니다. 코로나 이후, 세상은 점점 더 빨리 변합니다. 꾸준히 지식을 업데이트하며 살아야겠지요. 다시 여쭤봅니다.

"공부는 어린 시절에 한 걸로 끝이라 생각했어요. 나이 50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을 배우는 것보다 나 자신을 아는 게 더 중요해요. 자기인식이 공부의 시작이거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가? 내가 평생 해온 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이 중년의 공부이지요."
"그렇군요. 제가 40대 중반에 드라마 연출이라는 본업에서 쫓겨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제가 하는 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드라마 피디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본질은 이야기꾼이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 기회가 되어 드라마를 만들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블로그에 하루 한 편 글을 올리며 이야기를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회가 내게 역할을 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세상에서 나의 소명을 찾아가는 것, 그게 진짜 공부라오."

문득 50대의 삶도 만만치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도 하고 공부도 하려면 50대도 바쁘네요."
"일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려면, 놀기도 잘 놀아야 해요."  
"예? 놀기도 잘 놀아야 하나요? 나이 오십이 넘으니 노는 건 좀 겁이 나는데요? 엉뚱한 놀이에 빠져서 인생 망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잘 놀려면 세 가지 기준을 따져봐야 해요.

첫째, 나의 즐거움이 남의 괴로움이 되지는 않는가. 나의 쾌락이 타인에게 고통이 되는 일은 피해야지. 약자를 괴롭히는 것으로 재미를 삼지는 말아야 해요. 
둘째, 지금의 즐거움이 나중의 괴로움이 되지는 않는가. 지금 내가 좋다고 하는 일이 건강을 해치는 일이라면, 노후의 내게 민폐를 끼치는 거야. 
셋째가 제일 중요한데,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쉬워지는가. 이를테면 탁구처럼 초보 시절에는 어려워도 꾸준히 연습을 해서 쉬워지는 놀이가 좋아요. 영어 회화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처음부터 즐겁지는 않아요. 힘들어도 자꾸 해야 즐거워지지. 젊어서 나는 고생하는데, 늙어서 나는 그 덕을 볼 수 있는 것, 그게 좋은 놀이의 조건이라오."


"아, 그렇군요. '잘' 노는 게 중요하군요."
"흔히 도전은 청춘의 특권이라고 하는데, 나이 들어서도 도전정신은 필요해요. ‘근자감’이란 말 알지? ‘근거 없는 자신감’의 준말이라는데, 젊은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쓰는 것 같더군. 그런데 정말 자신감에 근거가 필요한가?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보다 더 중요한 건 도전하는 자세 아닐까? 근거가 있어야만 자신감이 생긴다고 믿는다면, 이룬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위축되기 쉬워요. 성취란 정해진 끝이 없어요. 그냥 끝없이 성장을 위해 노력할 뿐."

"와, 하시는 말씀이 다 팍팍 와 닿습니다. 혹시 어르신 존함을 알 수 있을까요?"

"굳이 이름까지 알 필요는 없고. 주위에선 나를 ‘탁신’이라 부른다네."  

"탁신요? 태국 총리……! 헐, 혹시 어르신이 그 탁구의 신?"

"사람들이 노인네 놀리느라 하는 소리야."  


노인이 손목에 찬 시계를 흘낏 보십니다. 최신형 스마트워치인 것 같은데, 디자인이 꼭 <스타트렉>에 나오는 전송장치처럼 생겼네요.

  
“에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제 가봐야겠어.”

“벌써 가시게요? 드디어 탁구의 신을 만났는데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노인이 씩 웃습니다.


“우린 언젠가 또 만날 날이 있을 게야.”

총총 사라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니 그 연세에도 몸놀림이 가볍습니다. 그나저나 처음 본 노인이 왜 이렇게 낯이 익을까요? 노인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곱씹고 있는데, 새로 온 젊은 남자 둘이 운동화를 갈아 신으며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습니다.


“아, 진짜라고! 분명 내 두 눈으로 방금 유에프오를 봤다니까!”

“야, 하늘에 번쩍하고 뭐가 지나간다고 그게 비행접시라는 게 말이 돼? 그냥 마른하늘에 벼락이 친 거야.”

“그런 게 아니라 타원형의 커다란 물체가 건물 뒤로 휙 하고 날아갔다니까?” 

“누가 드론을 띄웠나보지. 외계인 우주선이 어디 있냐? 됐고. 운동이나 하자.” 

“아, 진짜 똑똑히 봤는데……”

유에프오를 봤다고? 외계생명체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단 지구를 제외한 태양계 내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은 지극히 낮죠.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프록시마 센타우리인데 4.2광년 떨어져 있어요. 우주선을 타고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4년 넘게 걸리는 거리입니다. 항성 간 여행을 하려면 광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여행해야 하는데,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도 있어요. 어쩌면 방금 저 사람이 본 건 외계에서 온 유에프오가 아니라 미래에서 온 타임머신 아닐까요?

 

그렇다면 방금 만난 그 노인은 설마?

 

(오늘로 <탁구의 신을 만나다> 연재를 마칩니다. 탁구의 신, 정체는 눈치를 채셨지요? ^^

소설 형식으로 써보려고 했는데 쉽지는 않네요. 소설가분들, 존경합니다. ^^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음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그동안 저의 서툴고 새로운 시도를 응원해주신 독자분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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