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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한라산 겨울 산행

by 김민식pd 2022. 1. 6.

20210106 한라산

1년전 이맘때 다녀온 한라산 산행기입니다.

은퇴하면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가고 싶었어요. 눈 쌓인 히말라야를 걷고 싶었는데요. 하필 퇴사하는 시점에 코로나가 터졌네요. 괜찮아요. 히말라야를 가지 못해도, 설경은 즐길 수 있어요. 겨울에 한라산을 오르면 되거든요. 입산 예약을 사전에 하고요. 오전 8시 성판악 안내소를 거쳐 등산을 시작합니다. 

 
이곳은 눈의 세상입니다. 아이젠이 없으면 아예 올라갈 수 없습니다. 가벼운 운동화로 오면 신발이 눈에 젖어 발가락 동상의 위험이 있습니다. 스틱과 아이젠, 등산화, 파카 등을 준비해서 오르는 편이 좋습니다. 

1시간을 부지런히 걸어 9시에 솔밭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전날 마트에서 산 만쥬를 먹으며 잠깐 쉽니다. 추운 겨울 산행할 때는 달달한 간식을 틈틈이 챙겨 먹습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저 파란 배낭입니다. 2009년에 PD 연합회에서 받은 선물인데요. 저 배낭을 메고 네팔 안나푸르나도 가고 남미 파타고니아도 갔어요. 10년을 잘 다녔으니 앞으로도 10년 이상 함께 여행 다니고 싶은 동반자입니다.   

2011 안나푸르나

2015 파타고니아

2021 한라산

'우리, 오래오래 함께 하자.'

오전 10시,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어요. 성판악 코스에는 1시간 간격으로 쉴 곳이 마련되어 있어요. 역시 국립 공원은 참 시설이 잘 되어 있네요. 

정상으로 가는 길. 나무마다 눈꽃이 피었어요.

꽁꽁 얼어붙은 나뭇가지도 봄이 오면 다시 새싹을 피우겠지요. 이 추운 겨울을 버티는 나무를 보며, 저도 각오를 다집니다. 살다보면 다시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겨울 댓바람을 견디는 때도 있는 거죠.  

제주도는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여행지인데, 한겨울의 한라산은 또 다른 세상이군요. 2016년 MBC 해고자들의 산행 모임이 있었어요. 최승호, 박성제, 이용마 등이 토요일 아침 7시마다 청계산 입구에서 만나 비봉까지 산행을 했지요. 저도 가끔 합류했는데요. 그때마다 용마에게 구박을 받았어요.

"어디 감히 정직 6개월짜리가 해고자들 모임에 끼려고 해?"

교도소에 가면 장기수들 모인 방에 경범죄자는 감히 끼지도 못한다고요. 해고자가 범털이라는 농담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때 누군가, 겨울에는 한라산 설경이 참 좋으니 같이 가자고 했어요. 날짜를 잡아 같이 1월에 2박3일 제주도에 가자고 했는데, 이용마 기자가 몹쓸 병에 걸리면서 한라산 산행은 유야무야되었어요. 

친구와 함께 오르려 했던 산을 이렇게 퇴직 후, 혼자 찾아왔네요. 언젠가 용마의 쌍둥이 아들들과 한라산 설산 등정을 하고 싶습니다. 


오전 11시 20분. 백록담에 도착했어요. 해발 1947미터입니다.

오늘의 질문 : 겨울에도 제주도는 따듯한데, 한라산은 왜 눈으로 가득한가요?

고도가 100미터 오를 때마다 온도는 0.6도 떨어지고요. 바람이 초속 1미터로 분다면 기온은 1도씩 떨어집니다. 해발 1000미터에 초속 10미터의 바람이 분다면 지상보다 온도는 15도 정도 낮아지지요. 한라산은 해발 2000미터의 높이를 자랑하기에, 마치 히말라야의 만년설처럼 겨울 내내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는 겁니다.  한라산이 있어 제주 겨울 여행은 다채로와집니다. 

이날 정상에 올랐지만 백록담은 보이지 않았어요. 눈보라가 몰아쳐서 시계가 흐려진 탓인가 했는데요. 생각해보니 구름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거죠. 주위에 자욱한 안개는 산 아래서 보면 구름인거죠.

산을 오를 때, 올라갈 땐 최대한 빠르게 가고요. 내려올 땐 느릿느릿 천천히 내려옵니다. 보통은 반대로 하죠. 오를 땐 힘드니까 천천히, 내려갈 땐 편하니까 성큼성큼. 내리막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오면 무릎에 무리가 가서 나이 들어 등산을 즐기기 힘들 수도 있어요.  

오르막 경사는 대퇴근 근력 운동이라 생각하고 성큼성큼 오릅니다. 내리막 돌계단은 명상 수련이라 여기고 조심조심 내려가요. 특히 눈길이나 빙판 내리막은 천천히 가야 낙상 사고를 방지할 수 있어요. 겨울철 산행에서는 미끄러져 다치는 일을 조심해야 해요. 하산길에 저는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지 않습니다. 온 정신을 발가락, 정강이, 손바닥에 집중합니다. 발바닥에 닿는 땅의 미끄러운 감촉을 예민하게 짚어보고, 양손에 쥔 스틱을 이용해 팔다리로 기어서 내려가듯 하산합니다.

1년 전, 회사를 그만둔 후 마음이 심란했어요.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저는 서울둘레길을 걷고 북한산을 탑니다. 산을 타는 과정은 명상과 비슷해요. 어떻게 살 것인가? 깊은 고민을 이어갑니다. 산을 내려오는 과정은 은퇴 후의 삶과 닮았네요. 인생 전반부에서 오르막을 전속력으로 질주했다면, 후반부는 느릿느릿 한 걸음 한 걸음 음미하듯 살아야하지 않을까요?  

 

저녁은 플레이스캠프 제주에 있는 바 '스피닝 울프'에서 백록담 등반 기념 자축연을 엽니다. 혼자서 치맥을 즐기는 거죠. 이제 남은 인생, 직장 동료나 가족 친지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연습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이른 아침에 산을 오르느라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과 라면으로 아침 점심을 해결했어요. 7000원
저녁 치맥 12000원
숙박 38000원
쏘카 100000원 (성산 일출봉에서 성판악까지 가는 버스가 오전 7시 30분 이후에 운행 시작인데요. 저는 8시 입산 예약을 했기에, 버스로 가면 늦을 것 같아 12시간 쏘카 렌트를 했습니다. 플레이스캠프 주차장에 쏘카존이 있어 편하게 다녀왔어요.)

2일차 총경비 = 15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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