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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겨울 섭지코지 걷기 여행

by 김민식pd 2022. 1. 12.

2021년 1월 7일의 제주 여행기입니다.

한라산에 오른 다음날 아침 5시에 눈을 떴어요. 다행히 몸의 상태는 괜찮네요. 예전에는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높은 산을 오른 다음날 허벅지나 다리가 아팠어요. 달려서 내려오느라 관절에 무리가 온 거죠. 나이 들어 조심조심 스틱에 무게를 실으며 내려온 덕에 덜 아픈가 봐요. 

아침을 어디에서 먹을까, 성산포 맛집 검색하다 발견했어요. 착한 마녀 김밥.

혼자 여행 다닐 때 가장 만만한 건 김밥입니다. 김밥에 돈까스가 들어가 푸짐하고 맛있네요. 가게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빛의 벙커>를 간다니까 근처에 있는 대수산봉 오름을 추천해주셨어요. 

제주올레길 2코스가 지나가는 대수산봉입니다. 오름 정상에 서면 일출봉과 한라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데요. 이날은 안개가 자욱해서 사진은 생략합니다. 저는 여행지에서 현지 분들과 고시랑고시랑 수다를 떠는 걸 좋아합니다. 제주도를 좋아한다고 칭찬을 늘어놓으면, 그 분들은 더 좋은 곳을 추천해주시거든요. 오름을 걸은 후, <빛의 벙커>를 찾아갑니다.


제주 성산포에 오랜 시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벙커가 있었어요. 해저 광케이블 통신망을 운영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인데요. 축구장 절반 정도 크기인 900평 정도로 넓은 지하 공간이었지요.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공간을 찾던 이들에게 폐기된 벙커가 눈에 띄었어요.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어 방음효과가 완벽하고, 미로와 같은 진입은 관람객들에게 적절히 몰입을 높여가는 과정을 제공하거든요.

퇴직 후, 저는 '숭례문학당'에서 하는 독서모임을 신청했어요. 마침 그주에 읽을 책이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였기에, 고흐의 그림이 보고 싶었어요.  

사방에 고흐의 그림으로 가득한 미디어 아트 전시관인데요. 벙커를 가득 채운 노래는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But sometimes I find myself alone regretting  하지만 때론 혼자서 후회를 하죠

Some foolish thing, some foolish thing I've done  바보같은 짓을 내가 했구나 하고

But I'm just a soul who's intentions are good  난 단지 선한 의도를 가진 영혼일 뿐인데요.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오, 제발 저를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이 노래를 선곡한 사람은 고흐의 삶을 공부하고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어요. 문득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올라요.


'그림 몇 점을 보낸다. 네가 그걸 보면 하이케〔브라반트 북부에 있는 에텐 근방의 마을〕의 풍경을 떠올릴 거다. 그런데 이제는 제발 솔직하게 말해 다오. 왜 내 그림은 팔리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그림을 팔 수 있을까? 돈을 좀 벌었으면 좋겠다. “절대 안 된다”는 대답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갈 경비가 필요하다.'

 

왜 자신의 그림이 팔리지 않는지, 화상인 동생 테오에게 찾아가서 묻고 싶어도, 기차삯이 없다는 고흐의 말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반 고흐의 영혼이 있다면 이리로 데려오고 싶어요. 보라고. 당신이 한 획 한 획 그린 그림이 빛이 되어 사방을 가득 채운 이 공간을... 아, 고흐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외로운 영혼이었구나. 2021년 1월 퇴사와 고독을 선택한 저를 이곳으로 이끈 건 어쩜 고흐의 넋이었을까요? 당시 바보 같은 짓을 하고, 고독을 선택한 저는 어두운 벙커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눈물을 흘렸어요. 고흐를 위로하고 싶은데, 결국 고흐의 그림에 제가 위로받고 갑니다. 


이곳은 성산포 근처에 있는 섭지 코지입니다. 올레길 코스는 아니지만, 제가 즐겨 찾는 곳입니다. 육지에서 바다로 툭 튀어나온 지형을 제주도 방언으로 코지라고 부르는데요. 바다를 낀 산책로를 따라 1시간 정도 걸을 수 있어 참 좋아요.   

그날 아침에 휴대폰에 문자가 떴어요.

[제주도] 현재 많은 눈과 한파로 도로가 결빙이 되었으니 대중교통 이용 및 불가피하게 차량 운행 시 체인 등 월동장구 장착바랍니다. 

(2021년 1월 7일 상황입니다.)

아, 전날 한라산에 다녀오길 정말 잘했구나 싶었어요. 하루만 늦었다면, 렌트카 예약도 날리고 낭패 볼 뻔했어요. 성판악 코스까지 가는 도로는 겨울에 눈이 내리면 차량 운행이 제한될 수 있거든요. 저는 중요한 일정은 여행 초반에 미리 해결합니다. 한라산은 날씨와 교통이 받쳐줘야 할 수 있고요. 숙소 근처 걷기 여행은 언제든 할 수 있거든요. 힘든 한라산 산행을 여행 초반에 하고요. 남은 일정 동안에는 여유롭게 보냅니다. 혹 기상악화나 교통 통제로 첫날 못하면 다음날 하면 되니까요. 

눈으로 뒤덮인 섭지코지. 저 멀리 일출봉도 보입니다. 걷기 여행을 하지만 춥지는 않아요. 그날 서울은 영하 13도였는데, 제주는 영하 1도였어요. 겨울에도 제주의 기온은 서울에 비해 10도 정도 높네요. 추운 거 싫어하시는 분은 겨울을 제주에서 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오늘의 질문 : 제주도는 언제 가는 게 제일 좋을까요?

착한마녀김밥 사장님께 그랬어요. "제가요. 제주도를 참 좋아해서 매년 4,5월이나 9,10월에 왔거든요. 그런데 1월에 와도 참 좋네요?" 그때 사장님이 그러셨어요. "제가 제주도에서 산지 몇년 되었는데요. 제주도는 1년 열두 달 다 좋아요." 그 말씀에 문득 꿈이 생겼어요. 기왕에 퇴직을 했으니, 앞으로 매달 한번씩 제주도 여행을 오면 어떨까?

1년 열두달 제주 여행기, 이제 부터 시작입니다! 

1일 경비

아침 김밥 4,000원

점심 몸국 7,000원

저녁 만두 4,000원

빛의 벙커 입장료 13500원 (제주항공 티켓 10퍼센트 할인 적용)

숙박 38,000원

총경비 6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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