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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잘하는 건 없고 하고 싶은 건 많고

by 김민식pd 2020. 10. 26.

나는 이직의 달인이다. 공대를 나왔지만, 엔지니어가 되는 대신 영업사원이 되었고, 영업의 달인 소리를 들었지만, 퇴사를 감행하여 통역대학원에 진학했다. 통대를 졸업한 후에는 엉뚱하게 방송사에 지원해 시트콤 피디가 되었다. 잘 하는 건 없지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몇 년 전,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쓸 때, 아내는 방송사 피디가 쓴 영어 학습서를 누가 읽겠느냐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글을 쓰는 나는 즐거우니까. 매년 200권 이상, 책을 읽지만, 그렇다고 내 책을 쓸 때 위축되지는 않는다. 잘난 사람만 책을 쓰나? 그냥 내가 좋아서 쓰는 책도 필요하지 않을까?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교수가 쓴 <굿 라이프>를 보면,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 세 가지가 나온다. 1,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 2, 되어야 하는 나보다 되고 싶은 나를 본다. 3, 소소한 즐거움을 챙긴다. 

1.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

행복감이 높은 사람은 그 일을 자신이 좋아하면, 잘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반면, 행복감이 낮은 사람은 그 일을 잘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분석 결과, 순간순간의 즐거움과 의미는 그 일을 잘한다고 느끼는 정도보다 그 일을 좋아한다고 느끼는 정도에 의해서 훨씬 크게 좌우된다.

이미 잘하는 일을 공부까지 하는 사람은 없다. 좋아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을 잘하고 싶을 때, 사람은 공부한다. 20대에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 영업은 내가 잘하는 일이었고, 통역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월급을 주는 영업 대신 돈을 내는 영어 공부가 더 좋았다. 그래서 사표를 내고 도서관으로 갔는데, 그게 내 삶이 행복해지는 첫번째 계기였다.

2. 되어야 하는 나보다 되고 싶은 나를 본다.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에 따르면 3개의 자아가 있다. 현실의 나(actual self), 되고자 열망하는 이상적인 나(ideal self), 그리고 되어야만 하는 당위적 나 (ought self). 

"이상적 자기와 현실 자기의 괴리를 좁히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자기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상, 비전, 열정, 도전을 중시한다. 반면 당위적 자기와 현실 자기의 괴리를 좁히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마땅히 되어야만 하는 자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기에 의무, 책임, 예방, 현상 유지를 중시한다.
행복은 역할, 의무, 책임, 조심, 경계, 현상 유지로 대표되는 당위적 자기의 브레이크보다 꿈, 비전, 이상, 열망으로 대표되는 이상적 자기라는 엔진을 달고 전진하는 사람에게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을 통해 지쳐가는 이유는 당위적 자기, 즉 사회 속에서 주어진 나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할도 중요하다. 직장에서의 역할, 가정에서의 역할. 하지만 현실 자아에게 당위적 자아만 강요하면 인생은 질식한다. 이상적 자기를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공부다. 공부를 해야 행복하다.  

3. 소소한 즐거움을 자주 발견한다.

요즘 내가 즐기는 소소한 즐거움은 유튜브로 찾아듣는 강연이다. 최인철 교수의 강의도 유튜브를 보고 책으로 찾아 읽었다. 당시 강의 제목이 무려 <COVID-19의 심리적 충격 : 실체와 전망>이었다.

 

 

이 좋은 강의를 무료로 들었다. 그것도 퇴근하고 내 집 안방에서. 굳이 수능을 다시 봐서 서울대 입학하지 않고도 서울대 교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내키면 저서를 찾아 읽을 수도 있다. 한 학기 수업을 듣는 기분으로 하루 1시간씩 책을 읽어도 좋다. 지금 쓰는 이 글은 나만의 리포트다. '좋은 삶은 무엇일까?'에 대한 리포트.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끊임없이 탐색한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겠지만,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열린 가능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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