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1년 전, 대학에 인문학 특강을 갔다.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졸음을 참지 못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수준 이하의 강의를 하는 바람에 괜히 학생들의 시간만 빼앗은 것 같아 부끄러웠다. 담당 교수가 민망해하는 나를 위로해줬다. 요즘 대학생들이 많이 힘들다고. 스펙도 쌓고 과제도 하고 알바도 해야 해서 잠이 부족하다고. 외부 강사 특강은 성적에 반영되지도 않고, 취업 추천서와도 관계가 없어 그 시간에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이도 있다고. 위로삼아 하신 말씀에 나의 절망은 더욱 깊어졌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로구나.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농땡이를 피우거나 엎드려 자는 아이를 혼내는 방법이 뭘까? 칠판에 문제를 적고 풀이 과정을 알려준 다음, 졸고 있는 학생을 불러내는 거다. 반 아이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겠지. 요즘은 이런 방법 안 통한다. 자던 아이도 칠판 앞에 불러내면 답을 척척 적는다. 선행학습을 통해 이미 다 배웠기 때문이다. 따끔하게 혼내주려던 교사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엎드려 잔 아이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진다. 수업 시간에 자는 건, 이미 아는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밤늦도록 학원에서 공부하고 낮에는 학교에서 자는 거다. 이제 선생님은 함부로 아이를 불러내지도 않고, 잔다고 혼내지도 않는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습관은 어려서부터 기른다.
얼마 전 다시 강의 요청이 왔다. 연기 지망생을 대상으로 한 전공 수업이었다. 드라마 피디가 오디션을 볼 때 무엇을 살피는지, 촬영 현장에서 배우와 감독이 협업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달라기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느라 대여섯 명만 강의실에서 듣고 나머지 학생들은 동시에 온라인 수업을 받았다. 그날 한 학생은 의자 위에 두 다리를 올려 양반다리를 한 채, 등을 뒤로 기대어 노트북 화면만 쳐다봤다. 눈앞에 있는 나와 눈을 마주치는 대신,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강사와 눈을 마주치면, 웃어주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해야 하지만, 영상 시청의 경우, 훨씬 마음이 편하다.
대학 강의실의 경우, 교단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권위가 생긴다. 수십, 수백 명의 학생이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독점에서 권력이 발생한다. 온라인 수업의 경우, 1대1의 대등한 관계다. 가르치는 사람의 아우라가 사라진다. 요즘 대학 신입생들은 오랜 세월 수능 인강을 들었다. 인기 수능 강사의 경우, 수업은 강연이 아니라 공연이다. 재미있고 흥미롭고 유익하다. 대학에 올라와 받는 온라인 수업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교수란 사람이 마이크를 어떻게 켜는지도 몰라 헤맨다. 이제 대학 교수들의 비교 대상은 설민석이다. 이 경쟁은 절대 공정하지 않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사교육으로 인해 서비스 생산자와 소비자로 왜곡되었다.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 입시나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목은 버림받는 신세다. 여기에 코로나가 터졌다. 교수는 서투른 유튜버가 되고, 학생은 재미없는 채널을 강제 구독하는 시청자가 되었다. 그것도 수 백 만원 씩 내면서. 온라인 수업 탓에 학생과 학부모가 겪는 불만에 대해 목소리가 크다. 가르치는 사람도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환경과 기술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이 많은데, 소비자 불만에 대응하느라 정작 자신의 어려움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
교단의 권위에 기대어 가르치는 시대가 끝났다. 유튜버와 경쟁하는 교사는 이제 새로운 문법을 배워야 한다. 잘 나가는 유튜버는 이렇게 말한다. ‘요리/주식/운동/맛집 탐방, 내가 해봤더니 재밌더라. 당신도 하면 된다.’ 대학 교수도 같은 어법을 구사하면 어떨까? ‘전공공부, 내가 수십 년간 해보니까 즐겁더라. 공부를 하면, 여러분도 나처럼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 돈도 벌고 잘난 척도 마음껏 할 수 있다. 이 좋은 걸 안 할 이유가 없다!’ 교육자들에게 시련의 시대가 왔다. 아이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힘들긴 해도 학교에서 불러주시면, 갑니다. 많은 학생들이 강연 도중 잠이 들어도, 어느 한 사람, 내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받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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