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블로그에 '슬기로운 클럽 생활'을 올리면서 제가 어쩌다 12만원대 저가형 태블릿을 사게 되었는지 글을 올렸지요. 그때 댓글이 올라왔어요.
'아이에게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라는 글을 보고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피디님은 방송사 직원이고, 부인도 커리어우먼이고, 베스트셀러 저자라, 경제적으로 여유로우실 것 같은데 형편이 안 된다고 쓰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음.... 좋은 질문이군요.
회사에서 후배랑 점심을 먹으면 밥은 제가 삽니다. 후배가 커피를 산다고 하면 그러죠. '괜찮으면 회사 휴게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 그러고는 회사로 돌아와 전용 머그컵에 사무실에 비치된 녹차를 타서 마십니다.
"형, 제가 살 테니까 그냥 커피숍으로 가시죠?"
"정 사고 싶으면 나중에 내가 퇴직하고 찾아오면 그때 밥을 사주면 된다. 밥을 굶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하면 커피값은 아낄 수 있잖아?"
후배는 속으로 궁시렁거리겠지요. '저 형은 왜 저렇게 궁상맞게 살까?'
짠돌이로 사는 덕에 즐겁게 삽니다. 돈을 쓰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불행을 감내할 이유가 없어요. 그러니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 둘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사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수도 있는 거지요.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 란 결국, 아낌없이 돈을 쓸 형편은 안 된다는 뜻입니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저는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기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삽니다. 내일 죽을 수도 있다고 믿기에, 오늘 제 삶이 행복합니다.
저는 내일 당장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직업, 가족, 지위, 재산,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제 가장 큰 취미 중 하나가 주말 자전거 여행인데요. 20년 넘은 낡은 자전거를 끌고 춘천이며, 양평을 다니고 있어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생각지도 못한 목돈이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새 자전거를 사고 싶은 유혹이 찾아왔어요. 꾹 참고 견뎌냈지요. 지금도 저는 20년된 자전거를 탑니다. 여행을 즐기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돈을 벌고 싶을 때 버는 건 실력이 아니라 운입니다. 운이 좋아야 돈이 벌립니다.
돈을 쓰고 싶을 때 참는 게 진짜 실력입니다. 운이 좋아 들어온 돈도 안 쓰고 모아야 늘어납니다. 운 좋게 큰 돈이 들어왔을 때, 소비 수준을 그에 맞춰 올려버리면, 나중에 고생하기도 합니다. 돈을 버는 게 실력이 아니라, 아끼는 게 실력입니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
제 인생의 모토입니다. 궁상맞은 이야기지만, 나름의 개똥철학이라고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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