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즐겁게 사는 비결'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더니, MBC 시사교양 피디로 일하시는 박건식 선배가 댓글을 다셨어요. '이 글을 그대로 한겨레 칼럼에 기고해보세요.' 짠돌이로 사는 찌질한 이야기라 감히 신문에 쓸 생각은 없었는데요. 평소 존경하는 선배님의 조언이니, 용기를 내어 원고를 보냈습니다. 오늘자 한겨레 신문을 보는 전국의 독자들은 '방송사 피디라는 사람이 참 궁상맞게 사는구나...' 하실 거예요. 이 글에 대한 다른 반응도 있는데요. 그건 글의 끝에 붙여둡니다.)

 

둘째 딸이 중학교에 올라가자 코로나가 터져 온라인 개학을 했다. 스마트폰도 없는 아이인데, 원격 수업은 어떻게 듣지?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 태블릿 피씨라도 구하려고 보니 유명 브랜드 제품은 가격이 상당했다. 나중에 등교 개학하면 안 쓸 물건인데 굳이 비싼 걸 사야하나? 한참 고민하다 12만 원대 저가형 태블릿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온라인 개학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그래서 당신이 주문한 태블릿 피씨는 언제 와?” 갑자기 난감하다. “음....... 그게 실은 워낙 저렴한 제품이라, 해외배송인데, 확인해보니 오는데 2주가 넘게 걸린다고.” “뭐? 당장 내일 모레 개학인데 어떻게 할 거야?” 눈물을 머금고 내 노트북을 아이에게 빌려줬다. 태블릿이 오면 아이가 “우와! 이거 내 꺼야? 고마워, 아빠!”하며 돌려줄 줄 알았다.

택배로 도착한 태블릿을 본 아내와 딸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거 얼마짜리라고?” “12만원.” “응, 딱 그만한 가격일 것 같아.” “아니 뭐 아이패드나 갤럭시 탭을 기대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이건 너무한데? 이건 그냥 당신 써. 아이는 당신 노트북으로 계속 수업 듣고.” 딸도 옆에서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엉엉,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태블릿.

이러한 사연을 인터넷에 올렸더니 댓글이 달렸다. ‘아이에게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 라는 글을 보고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피디님은 방송사 직원이고, 부인도 커리어 우먼이고, 베스트셀러 저자라, 경제적으로 여유로우실 것 같은데 형편이 안 된다고 쓰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후배랑 점심을 먹으면 밥은 내가 산다. 후배가 커피를 산다고 하면 그런다. “괜찮으면 회사 휴게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 그러고는 회사로 돌아와 전용 머그컵에 사무실에 비치된 녹차를 타서 마신다. “형, 제가 살 테니까 그냥 커피숍으로 가시죠?” “정 사고 싶으면 나중에 내가 퇴직하고 찾아오면 그때 밥을 사주면 된다. 밥을 굶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하면 커피 값은 아낄 수 있잖아?” 후배는 속으로 구시렁거릴 거다. ‘저 형은 왜 저렇게 궁상맞게 살까?’

짠돌이로 사는 덕에 즐겁게 산다. 돈을 쓰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불행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 20대에 첫 직장을 그만 둘 때나, 40대에 낙하산 사장 퇴진 운동을 할 때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한다. 돈 때문에 괴로움을 참고 살지는 않는다.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 란 결국, 아낌없이 돈을 쓸 형편은 안 된다는 뜻이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기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산다. 내일 당장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 가족, 지위, 재산,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을 수도 있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세로 살기에 무언가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없다. 최악을 각오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면 최선의 삶을 살게 된다.

나의 가장 큰 취미 중 하나가 자전거 여행이다. 나는 24년 된 자전거를 탄다. 낡은 자전거를 끌고 주말마다 춘천, 양평, 강화도 등 서울 근교 여행을 다닌다. 몇 년 전 추석에는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국토종주를 한 적도 있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생각지도 못한 목돈이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자전거를 바꾸자는 유혹이었다. 꾹 참고 견뎌낸 덕에 지금도 24년 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돈을 벌고 싶을 때 버는 건 실력이 아니라 운이다. 운이 좋아야 돈이 벌린다. 돈을 쓰고 싶을 때 참는 게 진짜 실력이다. 운이 좋아 들어온 돈도 안 쓰고 모아야 늘어난다. 운 좋게 큰돈이 들어왔을 때, 소비 수준을 그에 맞춰 올려버리면, 나중에 고생한다. 돈을 버는 게 실력이 아니라, 아끼는 게 실력이다.

 

(글을 본 여동생이 메시지를 보냈어요.

'오늘 오빠 글을 읽으며 순간 아빠가 보여서 흠칫했어.

같이 사는 여자는 참 싫어할 모습이야.

열심히 사는 나를, 아내가, 딸들이 왜 싫어하나 궁금해지면 참고해...'

 

아버지 흉을 보면서,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간 아들의 이야기... 네, 사는 건 이래서 참 어렵군요. ^^)


24년된 저의 애마랍니다. 전국일주를 위해 뒤에 짐받이를 달고 배낭을 맸어요. 한때는 날아다니는 스포츠카였는데, 이제는 늙은 주인을 태우고 다니는 트럭이 된 느낌? 잔 고장이 없어 열흘을 전국을 뛰어도 단 한번도 속 썩인 적이 없어요. 이런 친구 버리면, 저 벌 받습니다. 올 가을에도 또 자전거 전국일주를 떠나려고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끼리 다정한 동행이 되기를~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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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대문의 2020.07.07 0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ow can people ride a bike so long?
    When I ride a bicycle, my ass is really painful.
    I bought a coution so it lowers pain a bit.
    The shop owner said that you will get used to it.

    Nevertheless, I like my bicycle.
    I think it's my friend already.
    I hope I use it for a long time like you.

    If I were you, I wouldn't want to change the bicycle regardless of money.
    It's not just a bicycle.
    It has a lot of memories I guess.
    I hope it doesn't break down forever.

    Have a good day my mentor!
    Thank you for reading my comment~!

  3. 보리랑 2020.07.07 0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동생분 덕에 오늘에야 궁금증이 풀렸네요. 세모녀의 타박 받는 이유 ㅎㅎ. 요즘은 구두쇠 좀 덜 하려 합니다. 어마한 충격으로 남아 돈이 들어오는걸 막고 돈이 새게 한대서요.

    그러나... 이런 경제교육은 학생때 정규교과에서 배워야 한대요. 그런데 국민이 똑똑해지면 돈을 못버니 경제관념 없이 우매하도록 경제 교육 절대 안넣는다네요ㅜㅜ

  4. minhang 2020.07.07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비가 미덕인 세상에서
    근검절약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이 글을 읽고
    제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5. 올리비아 2020.07.07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한겨레 신문을 보며 피디님 글을 꼭 읽는 사람 중 한명이에요. 간혹 왜 안나오지하며 기다리기도 하구요^^
    오늘자 신문을 보니
    어. 이건 블로그에서 읽은건데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새글을 읽어보고싶은 맘이 있어 잠깐 그랬지만 좋은 글은 나눠서 읽어야하니 한번 더 읽으며 신문을 덮었네요.
    자기반성도 하면서 그래도 바뀌긴 쉽지않아서 걱정이지만
    점점 나아지겠죠.

  6. 오달자 2020.07.07 0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에 본 글을 또 다른 지면으로 보면 무척이나 반갑지요~ ㅎㅎ

    '돈을 버는 것은 운이고, 돈을 아끼는 것은 실력이다.'

    어린 시절 부족함 없이 자란 제가 짠돌이 남편과 20 년 가까이 살면서 그져 힘들다고만 생각했었는데요~
    지나고보니 어느새 저도 알게모르게 닮아져 가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피디님 마님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구요.ㅎㅎ

    겉으로는 지지리 궁상떠는 제 남편이 못마땅하기 그지 없지만 속으로는 그런 남편이기에 지금까지 무탈하게 우리 가정 잘~지키고 살고 있다고 고맙게 생각됩니다.

    피디님 댁 세 모녀분들도 짠돌이 아빠를 존경하고 계실거에요.

    돈을 많이 벌 생각을 하지 말고, 돈을 안쓸 궁리를 하자!
    오늘도 한 수 배워갑니다~~

  7. GOODPOST 2020.07.07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을 버는 건 실력이 아니라 운이다.
    진정한 실력은 아끼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운을 찾아 살고 있으면서 운 없는 자신에게 절망합니다.
    진정한 실력은 운이 아니라 아끼는 것이다
    명심하며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8. 김주이 2020.07.07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는데 남편 생각이 났습니다.
    남편도 돈을 진짜 안쓰거든요.

    The having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남편의 삶이 having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있음에 집중하고 상생하라는 교훈이 있었는데, 남편의 삶이 그렇거든요.
    본인은 돈을 많이 쓰지않지만 자신의 가진것에 집중하고 나누며 즐거워하는 삶

    PD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금 이 부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PD님은 진정 Having의 삶을 살고 계시다는 생각을요.

    PD님의 나눔으로 많은 이들이 영어 공부를 하고 블로그를하고 여행을 떠나고...삶이 즐거워 졌습니다.


    많은 것을 소비하고 풍족한 재물이 있어도 늘 부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가진것에 집중하면서 즐기는 삶에서 행복을 느끼시는 PD님을 보면서
    PD님의 삶이 진정한 부자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9. 슬아맘 2020.07.07 1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쓰는게 이기는 거다 ^^
    피디님 덕분에 세상에 공짜로 즐기게 많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커피 값 아끼는 피디님 좋아요 ^^

  10. 코코 2020.07.07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피디님 아버님께서도 굉장히 근검절약 하셨나봐요

  11. Laurier 2020.07.07 1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단점을 알기에, 나는 그것보다는 조금은 나아지려 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PD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12. 꿈트리숲 2020.07.07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치재를 소비하는데는 돈을 아끼지만
    배움과 나눔을 위해서는 또 돈을 아낌없이 쓰는
    피디님인 것 같은데요.

    아내분의 유학자금으로 퇴직금 중간 정산해서
    내 놓으시고 친구분의 영화 잘 되라고
    영화관 한 관을 통째로 빌려서 많은 분들에게
    영화를 선물하기도 하셨잖아요.

    전 그런 일련의 모습을 보면서 피디님은
    짠돌이가 아니라고 생각들어요.
    쓸때 쓸려면 안쓸 때는 아껴야 되는 세상 이치를
    너무 잘 알고계셔서 때로는 가족들의 오해도
    받으시는 거 아닐까 싶어요 ㅎㅎ

  13. 아빠관장님 2020.07.07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와! 피디님의 짠돌이 수똬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습니다. ^^ 그런데, 24년된 애마는... 정말 대박인데요. 그 년수도 놀랍지만, 그렇게 전국을 다니는데, 잔고장 하나 없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네요. 말씀처럼 그런 자전거 버리면 벌 받습니다~.

    저도 20년 전에 군대 가기전, 대학 동기들과 서울 상계동서 목포까지 10을을 거쳐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수고를 이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자전거를 엄청 봐왔거든요.

    옛 추억 돋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4. 춈덕 2020.07.07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 뭔가 읽고 있는데, 굉장히 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코로나로 직장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일까지 하기 싫어지고 있는데 거기에 돈에 대한 생각마저 들던 요즘인데, 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갈 기회가 되었습니다.ㅎㅎ

  15. 귀차니st 2020.07.07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피디님 덕분에 절약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예전엔 사고 싶으면 바로 구매했었는데
    요즘은 두세번씩 고민하고 시기를 조절하며 사요.
    감사합니다 ^^

  16. 하루하루 2020.07.08 0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중에 후배에게 밥을 살땐 내가 사고, 후배가 커피를 산다면 회사 휴게실에서 머그잔으로 녹차를 마신다는 내용을 보고...남의 돈도 내돈처럼 아끼는 피디님 그 어떤 부자보다 더 마음이 따뜻하시며 존경스럽습니다. 늘 귀감이 되는 멋진글 감사합니다♥

  17. 헤니짱 2020.07.09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을 존경합니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 영원하리~~~

  18. 저녁노을함께 2020.07.09 2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을 쓰고 싶을 때 참는 게 진짜 실력이다.' ㅡ명문이시네요.

  19. 자바 2020.07.12 0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봤습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평소 독서를 많이 하셔서 그런지 글을 술술 읽히도록 참 잘 쓰시는 것 같아요. 부럽습니다.)

    올 가을에 계획하고 계시는 자전거 전국일주는 혼자하실 건가요? 댓글부대처럼 마음에 맞는 사람들 모아 같이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저도 평소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다니는 겅 좋아해 흥미로운 생각에 한번 남겨봅니다.

  20. 허캐슬 2020.07.19 1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끼는게 실력이다. 저도 중상급은 되는거 같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