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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시의 위로가 필요한 시간

by 김민식pd 2020. 5. 1.

한때는 문학청년을 꿈꾸던 제가 요즘은 문학중년의 꿈을 꿉니다. 인생에서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다면, 그 답을 문학에서 찾고 싶어요. 문학의 세계로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될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 인플루엔셜)

전작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 이어 이번에도 열 네 번의 시 강의를 모았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한 교수님답게 시, 시조, 소설, 에세이, 일기, 심지어 유행가 가사까지 가져와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마음, 공부, 교육, 생업, 몸, 노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요. 평소 방송 강연을 통해 입담이 좋으신 건 알고 있지만, 문학 강의가 이렇게 유쾌하고 재밌어도 되는가 싶을 정도입니다. 연구 논문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재미난 대중서로 학문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것도 교수님들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인생에 해답을 던져주거나 성공을 기약하는 따위와는 거리가 멉니다. 나무라거나 명령하지도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그저 다 옳고 괜찮다는 식의 값싼 동정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시로 듣는 인생론은, 그래서 꽤 좋을 것입니다.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미소 짓다가 혹은 눈물도 훔쳐보며, 때론 마음을 스스로 다지고 때론 평화롭게 마음을 내려놓으면 그만입니다. 자기계발은 그렇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6쪽)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글귀는 요즘 많이 회자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나오는 글입니다.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목숨을 걸고 페스트와 싸우는 의사 리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그 성실성이 대체 뭐냐고 묻자 이렇게 답합니다.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29쪽)

고난의 시대, 역경의 시대가 왔을 때는 각자 자신이 맡은 바 업에 충실한 것이 성실함입니다. 때로는 바깥에 나가지 않고, 물리적 거리두기를 통해, 칩거하는 생활도 성실한 자세라 하겠지요. 요즘처럼 개학도 미루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온 가족이 집에서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면 힘들 때도 있습니다. 

‘미래의 교사가 되길 꿈꾸는 제자들에게 제가 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육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신념이 뭔지 아느냐고.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이다. 그걸 믿지 못하면서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위선이거나 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동시에 교육자가 꼭 갖고 있어야 할 지혜가 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교육은 훈육이 되기 일쑤다.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교육은 힘들고 위대한 것이다.’
(78쪽)

자녀에 대한 사랑과 돌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잔소리해도 아이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사춘기란 그런 시기입니다. 자신을 억압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기존의 질서와 명령을 거부합니다. 

‘사춘기 자녀와 부모 사이의 갈등은 대개들 너무 가까이서만 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부모님은 다른 집 자녀들은 그저 멀리서 보고 부러워하며 왜 우리 애만 저런지 속상해합니다. 그럴 때 자녀들이 늘 하는 말이 뭡니까. “딴 애들도 다 그런단 말이야. 왜 나만 갖고 그래!” 반면에 또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이 당최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집안에서 바라보면 도대체 존경할 구석이라곤 하나도 안 보이는데 사회에서는 그런 부모님이 칭송을 받는다니 이걸 어찌 받아들여야 한단 말입니까. 그래서 자녀는 이렇게 그 격차를 단숨에 해소해버립니다. 우리 부모님은 위선자야!
요컨대 대상에 대한 적당한 거리와 시간의 간격이 필요합니다.’

(153쪽)

같이 집안에 함께 격리된 탓에 아이와 관계가 힘들다고 느끼신다면,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와 시간의 간격을 허락해주면 어떨까요? 물론 서로에게 너그러워지자는 결심은 실천이 쉽지 않습니다. 결심이 힘든 이유를 저자는 한 편의 시에서 찾습니다. 

‘패랭이꽃 
류시화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 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이 시에 대한 정재찬 교수님의 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결심이란, 살아온 나에 대한 부정이었고, 살아갈 나에 관한 긍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살아온 날들을 반성하며 비장하게 결심할 때면, 살아갈 날들은 늘 밝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좀 더 지나며 우리는 또 실망하고 반성하고 아마 또 똑같은 결심을 새로운 각오로 하곤 하겠지요. 자주 결심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 결심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일 텐데, 한사코 나를 부정하느라 나를 힘들게 하고 타인들마저 힘들게 한 것이지요. 눈에 밟히고 애잔하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처럼, 그러다 또 이내 잊히는 길가의 패랭이꽃처럼, 우리 삶이란 무언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길 바라면서 또 한편으로는 잊히지 않는 게 두려운 것. 그렇게 자신을 키우고, 무너뜨리고, 우쭐해하다가 우울해하며 이어가는 것.’

(134쪽)

문학이 필요한 순간은 사랑할 때입니다. 5장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소제목을 읽어볼게요.

열애_사랑 때문에 살고 사랑 때문에 죽을 듯한
다시 듣는 사랑 노래
발견하고, 길들이고, 어둠이 되다
뜨거울수록 필요한 침묵과 인내
당신을 생각하는 분량만큼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 중인 청춘들에게 도움이 될 글이 많습니다. 제가 옛날에 연애할 때, 여자 친구에게 빈 노트를 선물했습니다. 일하다 짬날 때마다 그 노트에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시를 한 편씩 썼습니다. 만날 때마다 가져가서 보여주고요. 노트 한 권을 사랑시로 가득 채우는 게 목표였는데, 실패했어요. 다 채우기도 전에 아내가 청혼을 받아들였거든요. 문학을 공부하는 건, 연애에 큰 도움이 됩니다.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를 만드신 교수님답게, 교재에 소개되는 다양한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짚어주십니다. 국어 수업, 문학 공부의 즐거움을 깨우치게 해줍니다. 책에 나오는 시나 소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CNQDVByhh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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