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

노력만이 정답은 아니다

by 김민식pd 2020. 3. 5.

인천에서 상고를 나와 전문대를 다니다 비서로 취직한 분이 있어요. 일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사장님에게 너는 회사일이 맞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대요. 이런 말을 듣고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하지는 않아요. 본인도 사장님 생각에 동의하거든요. 좋아하는 것은 죽어라 파지만, 싫어하는 것은 죽어도 못하는 성격. 결국 취직하고 일주일도 안 되어 그만둡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어른들의 일갈이 들려오지요. “네가 성공하지 못한 건 노오력이 부족한 탓이야!” , 이제부터 스무 살의 반전이 시작됩니다.

이 분이 좋아하는 건 뭐냐, 어려서부터 용돈 받으면 동대문 가서 옷 고르는 거였대요. 입고 다니는 옷을 보고 친구들이 “예쁘다! 네가 입은 옷 중고로라도 사고 싶다!”하는 걸 보고 인터넷 쇼핑몰에 올려 7만원 받고 팝니다. ‘어라? 이게 팔리네?’ 그 다음부터 동대문 가서 직접 고른 옷을 하나씩 인터넷에 올립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팔아 한 달에 매출 천 만원을 올립니다. 아침에 동대문에 가서 옷을 사고 옥션에 올리고, 포장하고 배송하며 혼자서 하루 3시간 자면서 일합니다.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재미있어요. 결국 쇼핑몰 사이트를 오픈 하는데요. 이게 대박이 납니다. 아시는 분은 눈치챘을 것 같은데, 바로 ‘스타일 난다’의 김소희 대표 얘기입니다. 2018년 로레알이 6천억원에 인수한 그 ‘스타일 난다’.

<멀티팩터> (김영준 / 스마트북스)

월급쟁이로 사는 이들에게 꿈이 있지요. 창업입니다. 사장이 되는 것! 그런데요, 월급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훨씬 더 행복합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직장인으로 살 때는 월급날이 너무 느리게 왔는데, 자영업자가 되고 나니 월급날이 너무 빨리 온다고요.

<골목의 전쟁>이란 베스트셀러로 자영업자들의 성공 스토리를 파헤친 저자가 새 책을 냈습니다. 월향, 공차, 마켓컬리, 무신사, 그리고 스타일난다 등 요즘 잘 나가는 사장님들의 성공 비결을 파헤친 책인데요. 틀에 박힌 성공법칙 대신, 다른 방식으로 성공의 이유를 짚어줍니다. ‘잘 나가는 비즈니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딱 한 마디로 알려주마! 노력을 하면 된다!’ 네, 이런 주장이 다 뻥이랍니다. 노오력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스타일난다의 김소희 대표는 사업 성공 비결을 묻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힘이나 전략 때문에 거둔 성과가 아니니, 성공이란 말과 목표란 말을 자제해달라. 사업계획서도 없고, 매출 목표도 없으며, 노하우에 관해서는 ‘정말로 없다’, ‘항상 즐겁게 하고 있다’라고 답하는 것이 전부이다. 심지어 성장의 비결에 대해서는 “(협력사에) 줄 것을 주고, (고객에) 받을 거 받고, (국가에) 낼 거 내면 성장하던데요?”라고 답할 정도이다.

(154쪽)

이 정도 노하우라면 누구나 사업해서 대박 날 것 같지요? 그게 절대 쉽지 않습니다. 김소희 대표는 재능이 시대를 잘 만나 성공한 사례입니다. 1998년 외환위기가 와서 도매시장으로 쓰려던 신축건물을 의류 소매를 위한 패션몰로 오픈합니다. 이게 동대문 밀리오레고요. 동대문이 일반 소비자에게 문을 연 1998년에 김소희 대표는 열다섯 살이었어요. 옷에 대한 감각이 한창일 나이에 딱 좋은 환경을 만났고요. 2000년 이후 벤처 붐이 일고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된 덕분에 스타일 난다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2010년 이후 경제성장 대열에 합류한 중국에서 한류 열풍에 힘입어 K-뷰티라고 한국 화장품 열풍이 이는데요. 이 시기에 스타일난다는 색조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어 또 대박을 냅니다. 스타일난다의 색조 화장품은 중국에서 인기 브랜드가 되고요. 로레알이 6천억원을 지불하고 스타일난다를 인수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재능과 실력이 시대를 만나 성공을 거둔 사례입니다. 노력한다고 누구나 다 되는 건 아닙니다. 물론 김소희 대표의 성공은 나이와 성별이 기업가의 능력과 무관하다는 것도 보여줬지요.

2019년 기준으로 인터넷에서 아재를 판별하는 기준은 여럿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무신사를 아느냐?’일 것 같아요. 저 솔직하게 고백할게요. 저는 무신사가 무슨 일본 브랜드인줄 알았어요. 무신사가 ‘무지하게 신발 사진 많은 곳’의 준말인줄 전혀 몰랐고요. 대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프리챌에 만든 신발 커뮤니티가 사업의 시작이라는 얘기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네, 저는 패션에 무지하거든요. 책벌레에게 있어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 아니라 손에 들린 책입니다. 저처럼 생긴 사람이 좋은 신발 신어봤자 무슨 효과가 있겠어요. 제게 최고의 패션 아이템은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책 한 권 들고 다니는 겁니다. 저처럼 생긴 남자는 그나마 책을 읽어야 좀 봐줄만 합니다. 이걸 스무 살에 깨달았어요. 고교 시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신발 사진 올리던 이가 무신사 대박 신화의 주인공입니다.

책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5장의 제목은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성공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저는 책에서 이 페이지를 한참 들여다봤어요. 나라면 <불확실한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이라고 쓸 것 같았거든요. ‘성공 비결, 더 쉽게 설명해줄게, 이것만 하면 확실하게 성공할 수 있어!’ 이렇게 쓰고 싶었을 텐데 왜 이렇게 길게 썼을까요? 저자는 그런 유혹을 견디는 사람입니다. ‘불확실한 세상’ 대신 ‘불확실성의 세상’이라 말하고요, ‘성공하는 방법’이라고 단정 짓는 대신 ‘성공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쓰는 게 더 정확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마태 효과’라고 아세요? 잘되는 곳이 더욱 잘되는 이유입니다. 횟집의 승부처는 재료입니다. 신선한 재료를 쓰는 집이 잘 되지요. 근데요, 신선하고 질 좋은 횟감을 내놓는다고 잘 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많이 와야해요. 아무리 신선하고 질 좋은 횟감도 손님이 없어 수조에 오래 머물면 선도가 떨어집니다. 사람들이 자주 오는 횟집은 회전이 빠르기에 생선의 신선도가 좋은 겁니다. 신선한 재료를 쓸수록 장사가 잘 되는 게 아니라, 장사가 잘 되는 집이라야 재료가 신선한 거죠. 이렇게 인과관계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로버트 머튼은 저명한 학자일수록 더 많은 지원을 받아 더 좋은 연구결과를 내고, 그렇지 못한 학자는 지원이 적어서 연구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머튼은 이런 현상에 대해 신약성서에 나오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구절을 빌어 ’마태효과‘라고 이름을 붙였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익과 우위의 누적 메커니즘‘이다. 우위는 이익을 불러오고, 그 이익은 다시 우위가 되어 더 큰 이익을 부르는 것이다.’

(287쪽)

성공은 더 큰 성공을 위한 우위의 획득을 뜻합니다. 노력이나 재능은 한계가 있어요. 오히려 성공의 규모가 커질수록 계속 증가하는 요소는 브랜드파워, 팬, 자금, 경험, 정보, 인적 네트워크지요. 성공이 지속될수록 더 많이 획득할 수 있어 경쟁 우위로 작용합니다. 

자, 여기까지만 보면 잘 되는 집만 잘 되고 새로 여는 가게는 다 어려울 것 같지요? 여기에 세상의 변화가 개입합니다. 우위는 영원불멸한 것이 아니에요. 기술과 환경이 변화하고 트렌드가 바뀌면 기존에 확보했던 우위가 과거만큼 영향력을 갖지 못하게 되거든요. 새로운 도전자에게 기회는 바로 여기서 생깁니다. 불확실성의 세상이 주는 매력이 여기에 있어요.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소비자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기에 기회는 다시 공평해지는 거지요. 

‘경쟁자원을 확보하고 운으로 결과를 만든다.’ 책의 결론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해도 되는 실패 vs. 해서는 안 되는 실패’라는 대목에 나오는 조언이 인상적입니다.

‘해도 되는 실패란 결과 자체가 실패일 뿐, 그 과정에서 전보다 더 많은 경쟁자원을 획득하거나 경쟁자원의 상실이 없는 실패를 말한다.

실패를 하더라도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자본 손실을 최소화하며 경험을 통해 실력과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실패는 경쟁자원을 상실하는 실패이다. 회복이 힘들 정도로 자본을 깎아먹거나 인적 네트워크가 축소되거나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 등이다. 경쟁자원의 상실은 그만큼 성공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319쪽)

드라마가 망할 때 감독은 유혹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 탓을 하고 싶다는. ‘작가가 대본을 잘 못 썼어.’ ‘배우가 연기를 잘 못 했어.’ ‘카메라맨이 촬영을 이상하게 했어.’ 문제는 그렇게 남탓을 하는 감독은 작가, 배우, 스태프 사이에서 평판이 나빠지고요. 다음 작품을 할 때, 좋은 인적 자원이나 좋은 기회를 얻기가 힘들어요. 평판도 아주 중요한 자원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무엇일까? 운인가, 실력인가, 재능인가?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하는 여러분께 한 가지 답이 되는 책입니다. 시장의 승자가 되는 단 한 가지 비결은 없습니다. <멀티팩터> 운, 실력, 재능, 인맥 등 다양한 자원을 하나하나 모아가는 자세, 그 속에 성공 비결이 숨어있습니다.

 

반응형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유와 욕망의 행복 방정식  (15) 2020.03.11
신간 5권 간단한 리뷰  (15) 2020.03.10
대기만성형 낙관주의자  (20) 2020.03.05
365일 교양수업  (20) 2020.03.03
신동진 아나운서의 사모곡  (19) 202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