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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신동진 아나운서의 사모곡

by 김민식pd 2020. 3. 2.

입사동기인 신동진 아나운서가 책을 냈습니다. 

<그토록 오래고 그토록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 (신동진 / 문학의 문학)

제가 아는 신동진은 효성이 지극한 아들입니다. 막내인데 어머니를 그렇게 챙겼어요. 어머니에게 휴대전화를 사드린 후, 10년 동안 매일 통화를 했답니다. 평일엔 퇴근하며 전화하고, 주말엔 6시 30분까지 전화를 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고요. 어느 날 퇴근길에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가 식사 중 사레가 들었다고 하셨어요. 저녁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누나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어요. 어머니가 응급실에 계시는데 마지막으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고요.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후였어요. 황망하게 어머니를 보낸 후, 신동진은 매일 페이스북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편지를 썼어요.

아버지의 사업실패 후, 어머니는 하숙집을 시작하고, 열 명의 하숙생과 여섯 명의 식구, 즉 16인분의 식사를 매일 새벽에 차리셨어요. 하숙을 하며 집 근처에 작은 식당을 차리셨다니 참 강한 분이셨나봐요. 사랑하는 아들이 MBC 아나운서가 된 게 어머니의 큰 자랑이었어요. 신동진 아나운서는 일을 하며 박사 논문을 쓰는데요.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당시 회사에서 제가 있던 부서는 방송 송출을 담당하는 주조정실이었는데 밤샘과 교대근무를 하는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논문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막내가 2012년 파업 이후 타 부서를 전전하며 5년간 방송하지 못했던 걸 그저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 당신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 힘겨움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너희 회사 사장도 너 박사 학위 받은 거 아니?” 하며 처음으로 그 심정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학위도 받았으니 다시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해서 예전처럼 방송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셨던 겁니다.

“네, 아마 아시지 않을까요?” 그저 웃으며 대답해드렸습니다.‘

 

(149쪽)

 

저같은 피디는 현업에서 배제되어도 별 티가 나지 않습니다. “다음 드라마 기획중이에요, 아버지.”하고 넘어가면 되거든요. 하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면 그 부재에 대해 부모님께 설명할 길이 없지요. 그 시절 조합원들도 힘들었지만, 부모님들도 함께 마음고생을 하셨다 생각하니, 새삼 죄스럽네요.

어머니를 향한 한없는 사랑을 담은 이 책에는 신동진 아나운서가 애정하는 또 하나의 대상이 나옵니다. 

'나의 MBC

나의 MBC는 훌륭했습니다.

빽도 없고 평범한 29살 늙은 총각을, 오직 한 명 뽑을 때 받아준 회사, 그건 가히 기적처럼 여겨졌습니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회사.

그때라고 왜 청탁이 없었을까요. 당연히 있었겠지만 그런 부탁이 들어오면 그 사람은 바로 아웃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 있게 자랑스레 말했습니다.

"나같이 아무 빽도 없는 사람을 가능성만 보고 뽑아준 MBC같은 회사가 또 있을까."

어떤 외압도 통하지 않는 청정지역, 적어도 나에게 MBC는 그런 회사였습니다.'

(183쪽)

문득 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른 남자가 쓴 연애편지를 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신동진 아나운서와 친해진 계기 중 하나가 입사 동기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동갑내기였다는 거죠. 우리 둘 다 입사한 후, 뽑아준 회사에 대한 고마움이 컸습니다. 제 결혼식에서 사회를 봐준 인연으로 아버지는 지금도 TV에 신동진이 나오면 그렇게 반가워하십니다.

"야, 니 친구, 이제는 테레비에 자주 나오더라. 한동안 안 보여서 걱정했는데..."

지극한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이 고난일 때도 있는 거지요.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시련이 컸던 시기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아픈가 봐요. 1996년에 신동진 아나운서가 입사면접 보러 갔더니 손석희 아나운서가 심사위원이었대요. 그 손석희 아나운서가 쓰신 추천사로 책 소개를 마무리하렵니다.

 

‘그는 씩씩하면서도 다정다감하다.

그 두 가지가 함께하기란 쉽지 않은 것인데 그는 그렇다.

선배들에게도 후배들에게도 공히 그렇다.

그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품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보니 답이 나와 있다.

그는 어머니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아들로서 쓸 수 있는 당연한 사모곡이 아니라,

어머니와의 시간 여행 기록이자 어머니를 통한

자신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손석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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