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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거룩하고도 통쾌한 일

by 김민식pd 2020. 2. 12.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숨도 아카데미' 특강 때였어요. "존재감이란 몸과 마음의 교집합이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온전히 함께 한다면 존재감은 100이고,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면 그 사람의 존재감은 미미해진다. 존재감을 키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붙들어 매거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몸을 보내야 한다."

당시 저는 MBC에서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회사에서는 다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지요. 저 역시 회사에서 마음이 떠나 많이 힘들었어요. 회사에서 일을 주지 않으니 공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찾아간 곳이 고미숙 선생님이 계시는 감이당이었고요. 선생님과 함께 북학파 고전을 읽으며 독서와 글쓰기를 공부했습니다. 스승님이 이번에 책을 내셨어요.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고미숙 / 북드라망)

처음 제목을 읽고는 '너무 길지 않나?' 했어요. 그냥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이라고 하면 깔끔할텐데, 하고요. 책을 다 읽은 후, 덮으면서 다시 표지를 보니 '아, 정말 제목 잘 지었구나!'싶어요. 독서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행위가 책읽기거든요. 글쓰기는 통쾌해요. 내 속에 맺혀 있는 응어리를 풀어내고, 나란 사람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일이니까요.

책의 첫 머리에는 선생님이 책을 쓴 사연이 소개됩니다. 

'나는 30대 후반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 진입에 실패하여 (이 말은 강의 때마다 늘 하는 거라 내가 물릴 지경이다. 그래도 또 한다. 왜?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혼자 공부하는 게 너무 심심하여 지식인공동체를 꾸렸는데, 그게 <수요연구실>에서 시작하여, <수유+너머>를 거쳐 현재 <감이당>으로 진화했다. 그 사이에 걸린 시간이 대략 20년이다. 적지 않은 세월이다. 그 사이에 공부와 일상, 존재와 세계, 앎과 삶 등에 대한 나름의 비전과 노하우가 쌓였고, 그걸 세상에 전파할 때도 된 듯하다. 헌데, 그 비전고 노하우의 중심에 바로 글쓰기가 있다. 글쓰기야말로 출발이자 귀결점이며, 알파요 오메가다. 양생술이자 구도이며 또 밥벌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5쪽)

스승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고미숙 선생님이 교수가 되지 못한 게 저의 천운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교수가 되어 학계에 남았다면,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만 가르치셨겠지요. 논문을 심사하고, 성적을 매기느라, 대중을 위한 저술이나 강연 활동은 못하셨을 겁니다. 스승님이 대학 강단 진입에 실패한 덕에 감이당을 만들고 책을 쓰신 겁니다. 그 덕분에 제가 독서와 글쓰기의 즐거움에 눈을 떴고요. 인생은 이렇게 길게 보면, 아주 나쁜 일도 없어요. 

'나처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도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이생에도 좋고 다음 생에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결정적으로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진짜! 이유다. 이 간절함이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7쪽)

캬아아! 몇번을 곱씹어 읽어도 정말 명문입니다. 스승님의 글은 이렇게 탁!하고 깨우쳐주는 맛이 있어요. 2016년 회사 생활이 힘들 때, 마음을 다잡느라 영어 공부 비결을 블로그에 썼어요. 글을 쓸 때 수행이 되어 좋았고요. 나중에 저자가 되는 길을 열어 주어 좋았지요. 글을 쓴 내게도 좋고, 읽은 독자에게도 좋은 일!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써야 합니다. 네, 써야하지요. 그 전에 먼저 읽어야 합니다. 독서는 수행입니다. 책을 읽으면 물욕이 사라집니다. 모든 책은 욕망을 절제하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그렇게 읽으면 써야 합니다. 

'읽기와 쓰기는 동시적이다. 읽은 다음에 쓰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읽는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쓰기가 전제되지 않고 읽기만 한다면, 그것은 읽기조차 소외시키는 행위다. 그런 읽기는 반쪽이다. 책을 덮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64쪽)

언젠가부터 독서가 더 즐거워졌어요. 블로그에 리뷰를 올릴 생각으로 책을 읽어서 그렇습니다. 쓰기를 염두에 두면 읽는 과정이 더 절실해집니다. 쓰기를 작정하고 읽으니 책의 구절 하나하나가 다 글의 영감이 되고 바탕이 됩니다. 

감이당에 처음 갔을 때, 그 모토를 보고 무릎을 탁! 쳤어요. 옳거니, 저것이 내 삶의 사명이로구나!

'도심에서 유목하기 / 세속에서 출가하기 / 일상에서 혁명하기 / 글쓰기로 수련하기

'도심에서 유목하기'는 자본의 한가운데서 자본에 포획되지 않는 길을 열어 가겠다는 것이고, '세속에서 출가하기'는 출가의 핵심이 노동, 화폐, 가족이라는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세속적 삶 속에서도 욕망의 변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일상에서 혁명하기'는 다들 깊이 공감할 것이다. (...) 이제 혁명의 전장은 일상이다. (...)

유목, 출가, 혁명이라는 비전은 일상과 욕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 글쓰기만이 유목, 출가, 혁명을 위한 최고의 실천적 전략이다.'

(104쪽)

아, 정말 명쾌하지 않나요? (저만 계속 감탄하고 있나요?^^) 고미숙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말씀을 들으면 삶을 바꾸고 싶다는 결심이 생깁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도 거룩하고도 통쾌한 공부를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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