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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덕후를 위한 종합선물세트

by 김민식pd 2020. 2. 5.

1990년대 초반, 저의 영어 선생님은 아이작 아시모프였어요. '신동아'라는 잡지에서 아시모프의 과학 칼럼을 영한대역으로 연재했는데요. 아시모프 글의 특징은 쉽게 술술 읽힌다는 것이었어요. 아시모프의 팬이 되었지요. 어느 날 용산 미군 부대 앞 헌책방에 갔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SF'라는 잡지를 봤어요. 당시 미국에서 2달러하던 잡지가 헌책방에서는 권당 500원에 팔렸어요. 아시모프가 엮은 잡지를 만난 게 반가워서 몇 권씩 사들고 와서 영어 독해 공부삼아 읽었는데, 그러다 SF에 중독이 되었어요. 그게 나중에 제가 SF 번역가가 된 계기고요.  

SF의 세계에 입문한 덕분에 제 삶의 즐거움이 늘었어요.

최근 한국 SF계가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데요. 과학소설 전문 잡지 <오늘의 SF> 창간호를 받아들고, 감회에 젖었습니다. '오래도록 덕질을 하며 산 보람이 있구나!' 드디어 한국에도 SF 전문 잡지가 나왔군요. 한국의 독자들에게 SF의 즐거움을 소개할 창구가 생겨 정말 반갑습니다.

책에는 한국 SF 단편소설 6편, 중편소설 1편이 실려있고요. SF 작가론, SF 인터뷰, SF 서평, SF 칼럼, 심지어 한국 SF가 다룬 공간에 대한 기행문까지 실려있으니 SF 독자를 위한 최고의 종합선물셋트입니다. 

<지치지 않는 창작자, 연상호>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한국의 SF 대중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지요. <부산행>으로 한국판 좀비물을 흥행시켰고, <염력>으로 초능력 영화를 만들고, 지금도 다양한 SF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니까요.

"최근 일을 왜 그렇게 많이 하냐는 말을 듣는데, 일을 많이 하는 이유는 단순하거든요. 영화를 하다 보니 스토리텔링 부분에서 지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2시간, 3시간 안에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웹툰을 하기도 하고 드라마 대본을 쓰기도 하고. 영화 외의 작업을 하며 재미있었어요. 힐링이 된다고 해야 하나."

굉장히 많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데 이야깃감을 어떻게 찾고, 모아 두시나요.

"집에 만화책이 굉장히 많아요. 재밌게 본 책을 다시 봅니다. 재밌게 읽은 소설을 다시 읽는다든가. 예전에 좋았는데 다시 꽂히면, 이런 걸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거든요. 최근 다시 재밌게 본 소설은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아르테, 2018)입니다."

결국 창작자로 가는 길은 팬이 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만화든, 영화든, 소설이든, 스토리텔링을 즐기는 거죠. '지금 하는 일이 힘들 때는 다른 일을 또 한다.' ^^ 1990년대 영어 공부를 하던 제가 이랬어요. 영어 문장을 외우다 지치면, 원서를 읽고, 원서를 읽다 지치면, AFKN으로 시트콤 시청을 하고. 일이 힘들다고 아예 그만두지는 않아요. 어떻게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합니다.

SF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이 한 권의 잡지에 총망라되었어요. <오늘의 SF>, 상상력의 신세계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입니다.

덕후의 세계는 이렇게 또 풍성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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