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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힘들 땐, 맛있는 힐링!

by 김민식pd 2019. 11. 1.

(오늘은 <꼬꼬독>에 올라온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소개입니다. 영상으로 보실 분은 유튜브에서 <꼬꼬독>을 찾아주세요~ 영상 첨부가 안 되네요... 이런 날도 있는 거지요. ^^)

 

1970년대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교문 앞에 못 보던 행상이 나타났어요. 당시로서는 처음 보는 식빵 튀김을 파는 곳이었어요. 하나에 50원인데요. 하루 용돈이 10원이던 시절이라, 돈이 없어 처음 봤을 땐 못 사먹었어요. 매일 용돈을 모았어요. 10원짜리 라면땅을 사는 게 낙이었어요.
드디어 금요일에 50원을 모아 수업이 끝나자 교문 앞으로 달려갔어요. 그런데 그 행상은 보이지 않았어요. 이후 매일 학교 앞을 헤맸지만 그 아저씨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아마 장사가 되지 않아 접었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나 봐요. 그 다음에 제 삶에 목표가 생겨요. 먹고 싶은 간식이 있을 때, 그걸 사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요즘도 드라마 야외 촬영을 하다, 노점에서 계란 옷을 입힌 식빵 튀김을 보면 바로 사먹습니다. 조연출이 그러지요. “감독님, 출출하세요? 먹을 것 좀 사올까요?” 씩 웃습니다. “아니야. 이건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한 선물이야.”

2017년, 제가 회사에서 힘든 시절을 보낼 때, 퇴사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중에는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라는 김보통 작가의 에세이도 있었어요. 대기업에 다니다 사표를 낸 김보통 작가에게 다들 그러지요. 넌 직장을 그만두면 불행해질 것이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먼저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합니다. 
IMF로 망해버린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이었던 김보통 작가에게 아버지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당부했대요. 고생 끝에 아들이 아버지의 소원을 이뤘는데요, 아버지가 암에 걸려요. 병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보러 가야하는데, 퇴근 후 회식에 불려가서 억지로 술시중을 들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김보통 작가는 회사를 그만둡니다.
그런 다음 집에서 식빵을 뜯어 먹으며 하루하루 버팁니다. 트위터에 올라온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립니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이유도 없이 그림을 그립니다. 그걸 보고 만화 연재가 들어오고요. 암환자의 삶을 그린 만화, <아만자>로 온갖 만화 대상을 휩쓸지요.
그 다음에 나온 에세이,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을 보면 참 산다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을 겪으면서도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요. 올해 나온 에세이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를 읽으며 답을 찾은 기분이에요. 살다가 힘이 들 때, 대단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는 맛을 찾아가면 됩니다.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거지요. 작가님의 직장생활 중 하루가 이렇게 묘사됩니다.

'“이번 달 얼마 그릴 거냐?”
이 차장이 물었다. 내가 속한 영업부서는 실적을 자신의 돈으로 채우는 ‘그리기’라는 것이 횡행했다. 우리 회사만 그랬던 건 아니다. 은행, 카드, 증권이나 보험 같은 이른바 금융권에 다니는 친구들은 적게나마 그리고들 있었다. 일가친척에게 카드를 만들어달라 요구하고, 부모님 돈으로 펀드를 넣고, 여자 친구의 보험을 자신의 돈으로 낸다. (...)

“안 그릴 건데요.”
“집에 돈 없냐?”
“없는데요?”
“아버지 뭐하시는데?”
“암 때문에 요양 중이신데요.”
“어머니는?”
“병간호하시는데요.”
“거지 새끼냐?”
이 말엔 대답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드릴 말씀이 없는 게 아니라, 더는 이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가 않았다. 자리를 뜨지는 못했다. 그가 내 머리채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머리를 흔들며 “어휴. 이 거지 새끼. 목표 달성도 못하는 게 돈도 없고”라고 말하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이런 사람이 회사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한다. 심지어 일 잘 하는 직원으로 평가받고, 인정받았다. 나는 무능한 직원이었다. 누가 이상한 걸까. 무엇이 정상일까.'  

이런 일을 겪은 김보통 작가는 회사 건너편 카페에 앉아 팥빙수를 먹으며 ‘회사가 망하면 좋을 텐데’하고 소심하게 웅얼거리죠. 네, 직장 생활 참 어려워요. 그렇다고 프리랜서 생활이 편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상황에 따라 각자의 어려움이 있지요.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든지 작은 즐거움을 찾아내는 겁니다.

제가 투뿔 등심이라는 메뉴를 처음 접했을 때, 두 번 충격을 받았어요. 일단 그 어마어마한 가격에 놀랐어요. 그리고 고기에도 등급이 매겨진다는 것. 저는 고등학교 내신등급이 15등급에 7등급입니다. 그런데 고기 주제에 1등급에 심지어 플러스가 두 개나 붙네요. 저는 학점도 C 마이너스 D 마이너스 였는데 말이지요. 투뿔 등심은 제게 고기보다 못한 놈이라는 박탈감을 안겨줍니다. 괜찮아요. 투뿔 등심은 못 먹어도, 적당히 싸고 맛있는 디저트만 먹어도 삶에 후회는 없습니다. 한강 시민 공원 핫도그도 좋고, 고속도로 휴게소의 고구마 맛탕도 좋고, 동네 아이스크림 할인판매점에서 파는 팥빙수도 좋아요. 하루하루를 소소하고 달콤한 행복으로 채워가며 살고 싶습니다. 

큰 불행을 상쇄하는 건 커다란 즐거움이 아닙니다. 너무 큰 자극을 좇다보면 중독에 빠질 수 있지요. 기분이 꿀꿀할 땐, 맛있는 디저트를 먹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맛있는 간식으로 가득한 종합선물세트같은 책이에요. 마음이 답답한 분들에게 권해드립니다. 힘들 땐 일단 디저트를 드세요. 자, 한 입, 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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