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독서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by 김민식pd 2019. 11. 13.

어제 저녁 새로 올라온 <꼬꼬독> 영상을 보다,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아무리 바쁘셔도 이번 영상 도입부 30초는 꼭 봐주세요. 50대 아재의 발연기를 커버하기 위해 총동원된 CG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열일하는 꼬꼬독 피디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기는 다양할수록 좋습니다. 전쟁에 가려고 검술을 열심히 연마했는데, 갑자기 적이 창을 가지고 나타나 던지면 망합니다. 불화살을 준비했는데, 폭우가 쏟아진다면 또 망하지요. 무기는 다양해야 합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을 읽고 나면요. 50명의 철학자가 우리 손에 무기를 들려주는 기분입니다. 철학자가 평생을 통해 연구한 콘셉트를 핵심만 추려서 정리한 책입니다. 50개의 서로 다른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갈 수 있어요.

피디로 살면서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할까 고민합니다. 저는 피디에게 제작 자율성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동료들 중에는 보상과 징계를 통해 성과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이들과 논쟁을 할 때 도움이 되는 무기 하나를 책에서 찾았어요. 사회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의 창의성 연구의 결과입니다.

‘사람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리스크를 무릅쓰고 나아가는 데는 당근도 채찍도 효과가 없다. 다만 자유로운 도전이 허용되는 풍토가 필요하다. 그러한 풍토 속에서 사람이 주저 없이 리스크를 무릅쓰는 것은 당근을 원해서도 채찍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그저 단순히 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59쪽)

그래요,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만큼 창의성을 키우는 환경도 없지요. 살면서 우리는 악당을 만나기도 합니다. 아니 때로는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하지요. 그럴 때 ‘이 사람이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하고 고민을 하면 상처만 깊어집니다. 이럴 땐 악을 연구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찾아봅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도 악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요.

‘(유대인 학살이라는) 인류 역사상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행은 그 잔인함에 어울릴 만한 괴물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저 시스템에 올라타 그것을 햄스터처럼 뱅글뱅글 돌리는 데만 열심이었던 하급 관리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은 당시 큰 충격을 주었다.
평범한 인간이야말로 극도의 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고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고 아렌트는 호소했다. 우리는 인간도 악마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101쪽)

타인을 보고, ‘아, 한나 아렌트 말대로 저런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절반의 공부입니다. 공부는 타인을 향하는 게 아니라, 나를 향하는 겁니다. 아, 나도 악인이 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철학의 시작은 윤리와 도덕입니다. 철학을 왜 공부하는가, 그래야 우리 자신이 악인이 되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니체, 사르트르, 헤겔처럼 친숙한 철학자의 이름이 연이어 나옵니다. 그들의 생각을 핵심 개념만 뽑아 쉽게 설명해줍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생각 도구를 50개나 안겨줍니다. 이름만 아는 철학자도 열 명이 안되는데 말이지요.  그러다보니 낯선 이름도 등장하는데요. <자살론>을 쓴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그랬어요. 저자는 뒤르켐의 자살론을 가져와 현재 일본의 위기를 진단합니다. 뒤르켐은 자살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이타적 자살 (집단본위적 자살) 이기적 자살 (자기본위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욕망을 추구하다 허무감에 빠져 일으키는 자살)
아노미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3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가족의 회복. 둘째, 소셜미디어를 통한 공동체 결성. 셋째, 회사라는 종적 커뮤니티를 대체할 횡적 커뮤니티, 즉 길드의 부활.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공동체 는 회사였어요. 입사하면 종신고용을 통해 수직적 커뮤니티에 들어가게 되죠. 이제 사람의 수명은 늘고, 회사의 수명은 짧아집니다. 기업 중심의 종적 구조 사회는 지속되기 어려워요. 이럴 때는 직장보다 직업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저자는 권합니다. 

‘회사라는 종적 구조의 커뮤니티가 자신에게 더 이상 안전한 커뮤니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자신이 소속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가족도 소셜네트워크도 직업별 길드도, 그것을 만들어 내거나 혹은 참가해서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성립한다. 지금은 바야흐로 그렇게 해야만 스스로 아노미 상태에 빠질 위험을 막을 수 있다.’

(226쪽)

혈연, 지연, 학연이 무너지는 시대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고요. 저는 <꼬꼬독>을 구독하고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여러분들이 취향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책 읽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면 허무주의의 아노미 상태가 오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올해 초, 저는 세대 갈등 문제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제게 답을 보여준 책이 <쇠퇴하는 아저씨 세대의 처방전>이었어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고 야마구치 슈라는 저자에게 신뢰가 생겼거든요.

드라마 감독으로 일할 때 가끔 배우들이 그래요. “감독님은 어쩜 그렇게 말을 잘 하세요?” 어려서부터 꾸준히 책을 읽었고요. 책에서 만난 숱한 저자들이 저의 스승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는 든든한 자산을 주었어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이 책 한 권을 읽는다면, 50명의 철학자가 여러분의 친구가 되어드릴 겁니다. 이 책 속에 탐나는 무기들, 든든한 스승님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책 한 권을 장착하시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