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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천리포 수목원 여행

by 김민식pd 2019. 11. 15.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천리포 수목원,  충남 도서관 강연 온 김에 찾아갑니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홍성에서 태안 가는 길에 서산만을 지나갑니다. 무리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이 하늘에 가득합니다. 가을이라 철새들이 이동하는 계절이군요. 

수목원에 도착하니 오전 8시 30분. 9시 개장이라 근처를 산책하며 기다립니다. 이름난 여행지에 갈 때는 개장 시간에 맞춰서 갑니다. 토요일이라 단체 관광객들이 많을 테니 일찍 가서 호젓하게 걷습니다.

천리포 수목원은 태안반도 한쪽 끝에 있어 서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어요. 바다 옆 숲길을 걷는 여행, 작은 올레길 같아요.  

명상하는 마음으로 걷습니다. 한번에 휙 둘러보고 나오는 게 아니라, 나무와 꽃사이를 누비며 다양한 코스를 조합해서 걸어봅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벤치가 있어 쉬었다 갑니다.  

'사철나무집' 옥상입니다. 메인 산책로로부터 떨어져 있어 혼자 조용히 책도 읽고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어요. 날아가는 철새를 봅니다.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수만리를 날아갑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Winter is coming!

 

해변 산책길에 찍은 스마트폰 사진. 최대한 가까이, 최대한 줌을 당겨서 찍은 사진. 일단 최선을 다하고 봅니다. 

천리포 수목원, 이렇게 멋진 공간은 누가 만들 걸까, 궁금해집니다. 탑 뒤로 보이는 2층 건물에서 이곳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어요. 꼭 들러보세요. 창립자 민병갈 박사는 1945년 해방과 함께 들어온 UN군 중 한 명인데, 한국에 정이 들어 제대 후 한국에 돌아와 이곳에서 평생을 살다 갑니다. 

한국으로 귀화한 민병갈 박사는 1962년 어느 노인에게 바닷가 땅 2천평을 샀어요. 갯뻘 바로 옆 염분이 가득한 땅이라 농사도 어려운 땅인데, 이곳에서 나무를 심고 꽃을 가꿉니다. 기념관에서 상영중인 다큐를 보니, 수목원을 가꾸기 시작한 게 민병갈 박사 나이 50의 일이랍니다.

30센티만 파도 염분이 섞인 박토가 나오는데요. 식물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는 분이었대요. 나무와 꽃을 더 잘 보살피려고 공부를 시작합니다.  

민병갈 박사가 공부한 한국식물도감입니다. 여백마다 빼곡이 메모를 적어넣고요. 책장이 너덜너덜 할 정도로 공부를 했어요. 


땅을 사고 나무를 모으고 수목원을 가꾸는데 노후를 바칩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산 민병갈 박사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마 결혼했으면 천리포수목원은 못했을 거예요."

맞아요. 자식은 놔두고 왜 나무만 돌보느냐는 원성을 들었겠지요.   

'내가 죽은 후에도

자식처럼 키운 천리포 수목들은

몇 백 년 더 살며

내가 제2조국으로 삼은 한국에 바친

마지막 선물로 남기를 바랍니다.'

-민병갈- 


식물원 안에 게스트하우스도 있는데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사전예약을 하고 오고 싶어요.

이제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향합니다. 차로 3분,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만리포 해수욕장 오른쪽 끝에 데크길이 있어요.

저는 바닷가 옆 산책로를 혼자 걷는 걸 좋아합니다.

파도 치는 소리를 들으며 출렁다리를 건너갑니다.

만리포 해변 옆에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가 있어요. 모래사장이 만리라는 뜻일까요?

'만리포는 옛날 명나라의 사신을 환송할 때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전별식을 했던 곳이다. 이 전별식을 가졌던 해변을 수중만리의 만리란 말을 따 '만리장벌'이라 하다가 현재는 <만리포>라 부르게 되었다.'


예전에는 바다 건너 제주도에 가는 것도 목숨을 걸어야하는 모험이었지요. 요즘처럼 여행하기 좋은 시절도 없어요.

점심은 뭘 먹을까, 다이닝코드에서 만리포 맛집을 찾아보니 검색 2위에 '별빛수산'이라고 나오네요. 1위는 수제버거인데요. 바닷가에 왔으니 혼밥으로 회덮밥을 먹습니다.


가을이라 자연산 전어가 들어간 회덮밥이 나왔는데요. 고소하고 맛있어요. 기다리면서 박정민 배우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을 읽었어요. 아름다운 경치와 재미난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여행, '이것이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창밖으로 서핑 보드를 든 젊은이들이 지나갑니다. 여기서도 서핑을 하는군요. 서해바다는 얕아서 안될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가만히 눈을 감고 민병갈 박사의 생애를 돌아봅니다. 이역만리에 혼자 와 수목원을 가꾸다 떠난 사람. 나이 50에 시작한 수목원이 이제는 이름난 여행지가 되었어요. 노후도 열심히 나무를 가꾸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게는 이곳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 그런 공간이 아닐까요? 하루하루 묘목 한 그루를 심는 마음으로 글 한 편을 남깁니다. 언젠가 내가 떠난 후에도, 이곳에 남겨둔 글과 사진이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기를...

이 공간이 무엇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 공간을 가꾸는 과정에서 제가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찾아와주시는 여행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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