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성탄 특집 독서일기를 올렸습니다. 

2019/12/25 - [공짜 PD 스쿨/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독] - 100세 인생이라는 선물

오늘은 여행 일기입니다.)

지난 가을, 주말에 강연이 있어 대구에 갔습니다. 저녁 강연이라, 여유롭게 한나절 여행을 즐겼어요. 동대구역에 내려 처음 찾아간 곳은 대구 지하철 반월당역입니다.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어요. 후백제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왕건이 몸을 피해 이곳에 당(當)도 했을 때 반(半)달[月]이 떠 있었다는데서 유래했다고... 일제강점기때는 반월당이라는 유명한 백화점이 있었대요. 지금도 근처에는 백화점이 많습니다.

반월당역 출구는 무려 23개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도시철도 중 가장 출구가 많다는군요.

청라언덕을 찾아갑니다. 반월당역에서 환승해서 1정거장을 더 가야하는데요. 갈아타는 대신 걷습니다. 운동삼아, 여행삼아. 청라 언덕은 대구 근대 여행을 떠나는 길목입니다.


도로 표지판을 따라 찾아가니 골목이 나타납니다.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 골목투어>

이곳은 100년전에 지어진 선교사 블레어 주택입니다. 100년 전 미국 주택 형태에 따라 그대로 지어졌대요. 선교사라... 사명감 없이는 못 할 일이지요. 100년 전 한국과 미국의 환경의 격차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지 않나요?

110년 전 당시 조선은 초가집이나 기와집 등의 흙집을 지었어요. 선교사들은 미국식 벽돌집을 짓기 위해 청나라 건축기술자를 부릅니다. 청나라 기술자가 조선에 와서 미국 건축물을 짓다니, 100년전에도 이런 국제적 협업이 가능했군요. <북학의>를 보면, 박제가가 청나라 벽돌을 보고 놀라는 장면이 있어요. 벽돌은 조선인의 시각에서는 진귀한 건축 소재였지요.

그 시절에 어떻게 이런 집을 지었을까? 주위를 서성이다 문화해설사 선생님을 만났어요. 어느 단체의 해설 투어에 꼽사리 끼어 이야기를 듣습니다.



블레어 주택은 벽돌집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래 부분은 커다란 돌이에요. 1906년에 헐린 대구읍성에서 가져온 돌이랍니다. '대구에도 성이 있었나?' 싶은데요. 젊음의 거리인 동성로가 원래 성의 동쪽 구역이라는 뜻이에요. 서울을 한강 이남 이북으로 나눈 것처럼, 대구는 읍성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나눕니다.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의 기준이 대구 읍성이었고요. 일제 시대 사라진 조선 시대 성곽의 자취는 선교사 저택 주춧돌로 남아 있네요.    

당일치기 대구 여행의 목적지로 청라언덕을 골랐어요. 대구 여행 검색을 하다 만난 지명인데, 이름이 왠지 귀에 익었거든요. 알 듯 모를 듯 한 공간이 있으면, 찾아가 봅니다. 와서 깨달았어요. 어린 시절, 즐거부르던 노래 가사에 나오는 공간이네요.


<동무생각>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한동안 부른 적이 없는데도, 시비 앞에 서서 가만히 소리 내어 읽다보니 내 속 어딘가에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동무생각>은 1922년에 만들어진 노래로 우리나라 가곡 제 1호랍니다. (무려 100년 된 노래!) 작곡자 박태준 님이 만든 노래에는 <오빠 생각>도 있지요.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현제명의 <고향 생각>도 그렇고 그 시절 노래에는 '생각'이라는 제목이 많군요. 박태준 작곡가는 고향이 대구고요. 여기 나오는 동무는 작사가 이은상님이 청라언덕에서 만난 하얀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랍니다.

청라 언덕을 오르자, 대구 제일교회가 나옵니다. 이제 계산성당을 찾아갈 시간입니다.

청라언덕에서 성당 가는 길에, 만세운동길 90계단이 있습니다. 옛날 골목길 계단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요. 길을 따라 대구 만세 운동의 역사가 설명되어 있어요.


시멘트 계단인데 특이하게 3등분이 되어 있지요? 자전거를 끌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사람을 위해 계단 가운데에 자전거 길이 있고요. 연탄을 실어나르는 리어카를 위해 양옆에는 리어카 폭에 맞춰 리어카 길이 있어요. 
그 옛날 연탄 리어카가 생각납니다. 겨우 50년 살았는데, 그 사이에도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앞으로는 얼마나 또 바뀔까요?

대구 계산성당입니다. 서울 명동 성당, 전주 전동 성당, 대구 계산 성당, 우리나라의 3대 성당 건축물이랍니다.

1902년 완공된 곳인데요. 한국 근대사, 역사의 현장이네요. 1951년 김수환 추기경이 신부 서원을 한 곳이고요. 195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열렸지요. 신랑 신부의 이름을 보고,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이라고 읽었다는 농담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국 전쟁 중에는 영국 수상 처칠의 아들인 랜돌프 처칠이 종군기자로 오기도 했다고요. 오래된 공간이라 이야기도 많네요.

계산 성당 내부입니다. 100년 전, 이 곳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아요. 

유럽의 성당에 가면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든 성서 인물화가 있지요. 이곳의 성인화는 조금 색다릅니다. 

한복을 입은 성인의 모습. 한국 천주교회는 1784년 창설 이후, 200여 년의 역사 안에서 크고 작은 박해가 끊이지 않았지요. 1984년 순교한 선인들 가운데 103분을 성인의 반열로 모십니다.

대구 근대 여행을 하면서 선교사와 순교자의 삶을 생각합니다. 

<100세 인생>이라는 책을 보니, 앞으로는 인생을 살면서 목표를 갖고 사는 게 중요하답니다. 어떤 신념을 지켜내며 사는 삶은 아름답지요. 내게는 어떤 소명이 있는가? 그걸 생각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도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서 매일 새로운 즐거움을 만나길 소망합니다. 

즐거운 연말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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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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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랑 2019.12.26 0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이 버틸 만큼의 고통만 주어진다 하니, 하나님이 선교사와 순교자에게는 버틸 힘을 더 주셨을 겁니다. 사명? 때로는 두려운 걸 보면 고통 없이 꽃피는 일이 있을까 싶네요. 그러나 지금 여기를 귀히 여기며 살아가기로

    피디님 도반님들 올한해 욕봤심니더~♡

  2. 최수정 2019.12.26 0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년부터 대구에서 생활하게 될수도 있는데 미리 좋은 곳 소개해주셔서 나중에 가게되면 추천해 주신곳 꼭 들려봐야 겠어요~~^^

  3. 배수의 진 2019.12.26 0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가 많네요 구독할게요
    이번에 티스토리 오픈했는데 가끔 방문 구독 부탁해요~~~
    일상을 간단하고 재밌는 그림(움짤)괴 같이 적으려고 합니다

    https://besoojincarpedeum.tistory.com/m

  4. 아리아리짱 2019.12.26 0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님 아리아리!

    피디님 걸음을 따라나선 대구가 정말 아름 답습니다.
    사실 제가 태어난 곳은 대구이지만, 곧 이사하여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원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대구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태어난 곳이라는
    아련함이 있답니다.
    피디님 소개한 코스로 대구 여행 한 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익숙한 국내의 곳곳을 여행하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으신 진정한 여행자이십니다.
    여행과 함께 살아가면서의 소명 또한 되새겨 보기!
    올 한 해 피디님 과 함께 해서 저희 <공즐세학당> 도반들도 행복했습니다~! ^^
    <공즐세 학당>이여 영원하라~!

  5. 경우 2019.12.26 0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산성당 탐방을 새해 계획에 추가합니다.
    제 삶의 성당 짓기를 꿈꾸며~
    한해 활력의 에너지 듬뿍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즐거운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
    함께요~^^

  6. 김진아카타리나 2019.12.26 0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주 주말에 당일치기여행을 어디로 갈까.. 고심하던차였는데..역쉬 김 pd님이 최고입니다. 동선까지 책임져 주시니. 감사합니다. 올해 제 정신적,육체적 건강증진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건강하시구요.

  7. 더치커피좋아! 2019.12.26 0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달 대구에 가게 되면
    저도 한번 피디님 추천코스로
    다녀보고 싶네요.^^

    '내게는 어떤 소명이 있는가'
    한해를 마무리하며, 또 새해를 맞이하며
    내게 던지는 선물같은 물음이 될것 같네요.

    소중한 오늘.
    피디님 파이팅!

  8. 언제나 봄날 2019.12.26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밀양이 고향이라 대구가 가까운데도
    대구여행을 한번도 못했네요.
    고향가는 길에 꼭 대구에 들러
    피디님이 가신 길목을 걸어보겠습니다.
    피디님 추천한 소무의도도 너무 좋았어요~~

  9. 피오니90 2019.12.26 1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에도 멋진 건물이 많네요^^
    잘 보고 갑니다.

  10. 인대문의 2019.12.26 1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하네요.

    특히 마지막 한복을 입은 성인의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저는 한국사 공부를 하면서 자격증을 얻은 즐거움보다, 조상님들의 희생과 노력에 감사함을 더 느끼게 되더군요.

    이런 우리나라의 문화들이 후세에까지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국내여행도 갈 곳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1. 꿈트리숲 2019.12.26 1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에 야구보러 자주 가고
    영화 배경이 되었던 대학 투어는
    해봤지만 근대여행은 사진으로만
    봐왔어요.
    계산성당과 청라언덕 찜해놓고
    있는 곳인데, 한복입은 성인의 모습
    꼭 봐야할 것만 같아요.

    이번 겨울 춥지 않은 날 대구 근대여행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즐겁게 건강하게 사는 삶, 저의 목표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저도 소망해봅니다.ㅎㅎ

  12. 나겸맘 리하 2019.12.26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래의 제목이 동무생각이라는 걸 잊고 지냈네요.
    청라언덕인 줄 알았어요.^^
    동무가 여학생이었다니 아름다운 노랫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써주신 가사만 읽었을 뿐인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세월만큼 쌓인 계산성당의 이야기들도 재미있고요.
    만세운동길의 자전거와 리어커를 위해 내놓은 길도 자꾸 쳐다보게 되네요.
    남은 인생...목표를 가지고 살면서도
    재미나게 살고, 타인에게 도움도 드리면서 산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내년에는 저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13. 아빠관장님 2019.12.26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

    제가 우리 교회의 영아부 교사로 있습니다^^;;; 지난 봄에교사들 성지 순례로 이곳을 계획하며, 사진 상으로 보았던 그곳들을 피디님께서 또 소개시켜 주시네요!! 아쉽게도 봄에 못 갔지만, 꼭 시간내어 가 봐야 쓰겄네요!^^

  14. 초코라떼 2019.12.26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여행 꼭 해보겠습니다 pd님 덕분에 좋은 곳도 알게되서 정말 감사합니다~!! 명동성당 전동성당은 가봤는데 이번에 계산성당에 가면 3대성당은 다 보게되겠네요 ㅎㅎ

  15. 오달자 2019.12.27 0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마나! 피디님 대구 가셨네요~~ ㅎ ㅎ
    어쩜...제가 작년 여름에 대구 근대여행투어를 피디님처럼 그 코스로 다녀왔었는데요.
    너무 너무 반갑습니다.
    저는 사촌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해질무렵 청라언덕과 계산성당.거기에 이상화 고택까지~~멋진 여행이었어요.
    사실,중.고.대학 시절을 대구에서 보낸 제가 청라언덕도 처음 가보고. 이상화고택도 처음 가봤었어요.
    다음달 모임이 있어 대구 내려 가는 길에 다시 가보고 싶은 청라언덕입니다~

  16. 섭섭이짱 2019.12.27 0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대구는 경북에 있는 대도시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여기도 근대역사 흔적이 많이 남아 있군요
    피디님 알려주신 코스와 김광석 거리 볼겸
    하루 날잡아 걷기 여행 다녀와야겠네요 ^^

    오늘도 좋은 걷기 코스 추천 억수로 고맙습니데이~~~~~

  17.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12.27 0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얼마 전에 동대구 혼자 돌면서 PD님과 같은 코스를 돌았어요.
    그리고 일요일? 마다 대구 서문시장에서는 엄청난 푸드트럭 야시장이 열려서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평생을 서울에만 머물렀던 사람인데 1년 전부터 그 범위를 점차적으로 넓혀가고 있어요. 잘된 일이죠ㅎㅎ

    그리고 오늘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환합니다!! 한국에서 뵈어요!! have a good day!!

  18. 2020.01.02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9. 인문공학 2020.03.13 1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혹여 다음에 대구근대골목에 갈 일이 있으면. 여기도 한번 들러보시길.
    일제강점기 술도가를 하던 곳인데. 아직도 그 원형이 남아있습니다.
    대구 중구 서성로 34-1 태갤러리.(약전골목 서문 바로 앞이에요. 계산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