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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대구 청라언덕 근대 여행

by 김민식pd 2019. 12. 26.

(어제 성탄 특집 독서일기를 올렸습니다. 

2019/12/25 - [공짜 PD 스쿨/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독] - 100세 인생이라는 선물

오늘은 여행 일기입니다.)

지난 가을, 주말에 강연이 있어 대구에 갔습니다. 저녁 강연이라, 여유롭게 한나절 여행을 즐겼어요. 동대구역에 내려 처음 찾아간 곳은 대구 지하철 반월당역입니다.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어요. 후백제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왕건이 몸을 피해 이곳에 당(當)도 했을 때 반(半)달[月]이 떠 있었다는데서 유래했다고... 일제강점기때는 반월당이라는 유명한 백화점이 있었대요. 지금도 근처에는 백화점이 많습니다.

반월당역 출구는 무려 23개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도시철도 중 가장 출구가 많다는군요.

청라언덕을 찾아갑니다. 반월당역에서 환승해서 1정거장을 더 가야하는데요. 갈아타는 대신 걷습니다. 운동삼아, 여행삼아. 청라 언덕은 대구 근대 여행을 떠나는 길목입니다.


도로 표지판을 따라 찾아가니 골목이 나타납니다.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 골목투어>

이곳은 100년전에 지어진 선교사 블레어 주택입니다. 100년 전 미국 주택 형태에 따라 그대로 지어졌대요. 선교사라... 사명감 없이는 못 할 일이지요. 100년 전 한국과 미국의 환경의 격차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지 않나요?

110년 전 당시 조선은 초가집이나 기와집 등의 흙집을 지었어요. 선교사들은 미국식 벽돌집을 짓기 위해 청나라 건축기술자를 부릅니다. 청나라 기술자가 조선에 와서 미국 건축물을 짓다니, 100년전에도 이런 국제적 협업이 가능했군요. <북학의>를 보면, 박제가가 청나라 벽돌을 보고 놀라는 장면이 있어요. 벽돌은 조선인의 시각에서는 진귀한 건축 소재였지요.

그 시절에 어떻게 이런 집을 지었을까? 주위를 서성이다 문화해설사 선생님을 만났어요. 어느 단체의 해설 투어에 꼽사리 끼어 이야기를 듣습니다.



블레어 주택은 벽돌집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래 부분은 커다란 돌이에요. 1906년에 헐린 대구읍성에서 가져온 돌이랍니다. '대구에도 성이 있었나?' 싶은데요. 젊음의 거리인 동성로가 원래 성의 동쪽 구역이라는 뜻이에요. 서울을 한강 이남 이북으로 나눈 것처럼, 대구는 읍성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나눕니다.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의 기준이 대구 읍성이었고요. 일제 시대 사라진 조선 시대 성곽의 자취는 선교사 저택 주춧돌로 남아 있네요.    

당일치기 대구 여행의 목적지로 청라언덕을 골랐어요. 대구 여행 검색을 하다 만난 지명인데, 이름이 왠지 귀에 익었거든요. 알 듯 모를 듯 한 공간이 있으면, 찾아가 봅니다. 와서 깨달았어요. 어린 시절, 즐거부르던 노래 가사에 나오는 공간이네요.


<동무생각>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한동안 부른 적이 없는데도, 시비 앞에 서서 가만히 소리 내어 읽다보니 내 속 어딘가에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동무생각>은 1922년에 만들어진 노래로 우리나라 가곡 제 1호랍니다. (무려 100년 된 노래!) 작곡자 박태준 님이 만든 노래에는 <오빠 생각>도 있지요.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현제명의 <고향 생각>도 그렇고 그 시절 노래에는 '생각'이라는 제목이 많군요. 박태준 작곡가는 고향이 대구고요. 여기 나오는 동무는 작사가 이은상님이 청라언덕에서 만난 하얀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랍니다.

청라 언덕을 오르자, 대구 제일교회가 나옵니다. 이제 계산성당을 찾아갈 시간입니다.

청라언덕에서 성당 가는 길에, 만세운동길 90계단이 있습니다. 옛날 골목길 계단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요. 길을 따라 대구 만세 운동의 역사가 설명되어 있어요.


시멘트 계단인데 특이하게 3등분이 되어 있지요? 자전거를 끌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사람을 위해 계단 가운데에 자전거 길이 있고요. 연탄을 실어나르는 리어카를 위해 양옆에는 리어카 폭에 맞춰 리어카 길이 있어요. 
그 옛날 연탄 리어카가 생각납니다. 겨우 50년 살았는데, 그 사이에도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앞으로는 얼마나 또 바뀔까요?

대구 계산성당입니다. 서울 명동 성당, 전주 전동 성당, 대구 계산 성당, 우리나라의 3대 성당 건축물이랍니다.

1902년 완공된 곳인데요. 한국 근대사, 역사의 현장이네요. 1951년 김수환 추기경이 신부 서원을 한 곳이고요. 195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열렸지요. 신랑 신부의 이름을 보고,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이라고 읽었다는 농담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국 전쟁 중에는 영국 수상 처칠의 아들인 랜돌프 처칠이 종군기자로 오기도 했다고요. 오래된 공간이라 이야기도 많네요.

계산 성당 내부입니다. 100년 전, 이 곳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아요. 

유럽의 성당에 가면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든 성서 인물화가 있지요. 이곳의 성인화는 조금 색다릅니다. 

한복을 입은 성인의 모습. 한국 천주교회는 1784년 창설 이후, 200여 년의 역사 안에서 크고 작은 박해가 끊이지 않았지요. 1984년 순교한 선인들 가운데 103분을 성인의 반열로 모십니다.

대구 근대 여행을 하면서 선교사와 순교자의 삶을 생각합니다. 

<100세 인생>이라는 책을 보니, 앞으로는 인생을 살면서 목표를 갖고 사는 게 중요하답니다. 어떤 신념을 지켜내며 사는 삶은 아름답지요. 내게는 어떤 소명이 있는가? 그걸 생각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도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서 매일 새로운 즐거움을 만나길 소망합니다. 

즐거운 연말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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