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

이 재미난 걸 왜 포기해요

by 김민식pd 2019. 10. 28.
읽을 책을 어디에서 찾을까요? 저는 신문에서 찾습니다. 신문 서평란을 읽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보면, 찾아서 읽습니다. 지난주에 <아무튼, 스릴러>를 소개했는데요. 독특한 스릴러 한 편을 만났어요. 

<목격자는 피곤해> (샬레인 해리스 / 고정아 / 바다출판사)

경향신문에서 즐겨읽는 서평 칼럼 중, '이종산의 장르를 읽다'가 있어요. 

'재미있으면서 아름답고, 예술적이면서 잘 팔리는 걸…왜 포기해요'

'한때는 장르소설과 순수소설 간의 경계가 선명해 보였다. 한동안 나는 내가 사랑하는 두 세계 중 한쪽을 선택해서 뛰어들어야 한다는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내 안에 있던 벽을 깨준 책이 샬레인 해리스의 <어두워지면 일어나라>와 <목격자는 피곤해>였다.

두 작품은 추리, 로맨스, SF, 판타지, 스릴러가 모두 뒤섞여 장르성이 매우 강한 동시에 매우 문학적이기도 하다. <어두워지면 일어나라>의 주인공 수키 스택하우스는 다른 사람의 마음(생각)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두 개의 말(입이 하는 말과 진짜 마음의 말)이 동시에 들린다. 원한 적 없는 이 능력 때문에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던 수키는 어느 날 뱀파이어를 만나고, 자신의 능력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수키는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진다. 나에게 이것은 매우 강렬하고 문학적인 이야기로 다가왔다.

청소년기에 번개에 맞은 후 시체 근처에 있으면 그의 마지막 순간을 보는 능력이 생긴 하퍼의 이야기도 문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이야기는 아름다운 동시에 재밌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8232035015

<목격자는 피곤해>의 원제는 <Grave Sight>입니다. 여기서 grave는 중의적 표현이에요. 무덤이 되기도 하고, '아주 나쁜'이 될 수도 있어요. 'a grave situation' 아주 나쁜 상황이지요. 무덤 풍경이 아주 나쁜 풍경이에요. 왜냐, 주인공에게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보이거든요. 주인공은 어려서 번개에 맞고 죽을뻔했어요. 그런 후, 시체 근처에 가면, 특이한 신호가 들리고, 시체의 마지막 기억이 떠오릅니다. 시체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때로는 이 능력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라진 가족의 행방을 찾는 이들이지요.

'저 남자는 적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저기 덤불 속 나무 밑에 누웠다. 손님을 잘못 만난 웨이트리스의 뼈는 저기 낡은 오두막의 무너진 지붕 밑에 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퍼마신 10대 소년의 종착지는 솔숲의 얕은 무덤이다. 때로 그들의 영혼은 육신을 떠나지 못하고 그 곁을 배회한다. (...) 
그들의 영혼은 아직 남은 몸에 매달려서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침묵의 목격자들이 원하는 것은 아마도 그게 전부일 것이다.'

(12쪽)

남들이 갖지 않는 특이한 능력은 때로 저주가 됩니다. 시체를 찾아내는 능력은, 살인자의 누명을 쓰기 딱 좋고요. 마귀에 씌었다는 소리를 듣기도 좋지요. 

"당신은 사람들의 비탄을 이용해서 돈을 우려내요."
"어떻게요?"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비탄 속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은 사람들 앞에 당신과 당신 오빠는 시체를 본 까마귀처럼 날아오죠."
"아뇨." 내가 잘라 말했다. 나는 내 일에 대해 확실하게 말했다. "저는 시신을 찾아 줍니다. 그러면 사건이 마무리되고, 사람들은 마음의 짐을 덜죠."

(129쪽)

주인공 하퍼 코넬리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알콜 중독에 빠져 스스로를 파멸하고 동생들을 망치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봤어요. 10대 시절 번개에 맞고 이상한 능력이 생깁니다. 시체 근처에 가면 환영이 보여요. 그 능력을 활용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경제적 독립을 위해 현대판 마녀가 되지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지만, 아이의 생사를 몰라 애태우는 부모에게는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무덤에 가면 그 주인의 마지막 기억이 떠오릅니다. 
100년된 묘지에서는 이런 생각을 해요.

'아이 낳다 죽은 여자, 소아마비 걸린 여자, Rh 인자를 보유한 아기, 톱질하다 손에 입은 상처가 썩은 남자...... 묘지에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모두 보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를 상상할 때 이런 면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때는 자신들이 현대의 병폐라고 여기는 것들-낙태, 동성애, 텔레비전, 이혼-이 없었다고만 보았다. 그들은 과거에서 이웃과 어울리는 금요일 저녁, 푸짐한 파이, 찬송가, 길고 행복한 결혼만을 보았다.'

(171쪽)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힘들다고 하지만, 100년전보다 분명 살만해졌어요. 아니 10년전과 비교해도 책벌레에게는 놀라운 세상이에요. 전자책 북클럽에 가입하면 어디에서나 수만 권의 책을 무제한으로 읽고, 도서관 상호대차를 이용하면 못 읽을 책이 없어요. 활자중독자에게 이렇게 행복한 세상도 없어요. 이 좋은 세상을 살면서 고민은..... 재미난 책은 너무 많은데,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거죠... ^^
무덤을 걷다 문득 혼잣말을 합니다. "살해당했네? 가엾어라." 그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의 표정이 하얗게 질리지요. "우리 모두 사고로 죽은 줄 알았는데요?" 하퍼가 가는 곳에 비밀은 없어요.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다시 새로운 죽음의 행렬이 시작됩니다. 그 마지막 표적은 하퍼에요. 초능력과 저주 사이, 하퍼의 운명이 다시 한번 요동칩니다. 

주인공은 시체를 찾는 사람인데요. 저는 재미난 책을 찾는 사람이에요. 세상에는 아직도 많은 책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재미있으면서 예술적인 글을 왜 포기하냐는 이종산 작가의 글을 흉내내봅니다. 

'독서, 이 재미난 걸 왜 포기해요.'




반응형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만해도 괜찮아  (20) 2019.11.08
단골손님 독서모임 후기  (31) 2019.11.07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18) 2019.10.24
이 정도 열정은 있어야 한다  (17) 2019.10.22
우리 모두 다크호스가 되자  (23) 2019.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