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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부모 공부의 3가지 순서

by 김민식pd 2019. 7. 26.

큰 딸 민지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같이 네팔 여행을 갔어요. 네팔은 사람도 좋고, 자연 경관도 좋고, 역사 유적도 좋아요. 배낭여행을 갔다가 푹 빠져서 이 멋진 곳을 민지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민지와 조카를 데리고 다시 안나푸르나에 올랐지요.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입니다. 


2019/07/22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월요일에 소개한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을 쓴 이근후 선생님의 아들은 유명한 천문학자 겸 저자이신 이명현 선생님입니다. 이명현 선생님과 저는 <10월의 하늘>에서 함께 강연한 적이 있어요. 네팔 여행 중이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더니, 연락이 왔어요. 가족이 함께 네팔 포카라에 와 있다고. 이명현 선생님을 만나러 갔더니 아버님인 이근후 선생님도 계셨어요. 당시 일흔이 넘은 나이에 네팔에 아들과 함께 여행을 온 모습을 보고 많이 부러웠어요. 그게 훗날 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여행을 다니게 된 동기인지도 몰라요. 

이근후 선생님의 새 책을 읽다 느낀 부러운 점. 3대가 한 집에서 오손도손 산다는 거죠. 이게 참 쉽지 않거든요. 어느날 선생님의 지인이 조심스레 말을 건네요. "자네 아들이 자네 죽으면 제사 안 지낸다던데..." 이명현 박사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셨나봐요. 선생님은 전혀 섭섭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나는 의학자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만을 믿고 사는 처지다. 그래서 증명되지 않은 사후 세계나 조상신의 존재를 말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제사란 망자를 위한 의례가 아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슬픔을 달래고, 떠나간 사람들을 기리는 자리가 바로 제사다. 그러므로 제사는 무엇보다 산 자에게 즐겁고 의미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154쪽)

매년 추석, 아버지는 큰집에 제사를 드리러 가십니다. 가서는 늘 싸우십니다. "제사를 왜 이렇게 지내나?" "선산에 묘는 왜 저렇게 냈나?" "아버지 재산을 누가 가져갔나?" 그래서 제가 아버지께 말씀드렸지요. "아버지, 큰집 가서 싸우지 말고, 저랑 추석에 여행 다녀요." 아버지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게 불효라고 하셨어요. "아버지, 돌아가신 부모님께 하는 최고의 효도는요. 자식이 잘 사는 거예요.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지, 후손들이 차례상에 모여 싸우기나 한다고 좋아하시겠어요?"  

이근후 선생님은 3대가 한 집에 모여사는데도 갈등이 적어요. 비결이 무엇일까요? 자식의 삶에 참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어른으로 대접하기 때문이에요.

'자식이 장성하면 자연히 집안의 리더를 도맡아야 한다. 오히려 자식이 미래 세대의 주인으로서 집안을 어떻게 끌고 나가겠다는 의지와 방향이 없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부모는 제 한 몸 잘 건사하며 인생의 의미를 곱씹어야 하는 황금 같은 노년기를 집안의 대소사를 해결하느라 소진한다. 반대로 자식은 매사 부모의 결정을 기다리며 눈치를 보느라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다 보면 늙은 부모가 장성한 자식에게 일일이 간섭하려 들고, 자식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해 의기소침해진다. 나이가 들면 안 그래도 가깝게 지내기 어려운 부모 자식 사이가 이렇게 더 멀어지고 만다.'

(155쪽)

늙어서 아이들의 삶에 참견하고 싶을 때, 이 글을 지표로 삼고 싶습니다. 부모 공부에 있어 선생님은 3가지를 강조하십니다.


'내가 정신과 의사로 만난 환자들도 결정적으로 부모와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해서 일상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고통을 겪었다. 그만큼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은 깊고도 끈질기다. 그러므로 부모가 되었다면 부모 노릇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

첫째, 자녀의 속성을 관찰하라. 

둘째,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면 나머지는 아이의 자생력을 믿으라. 

세번째, 아이에게서 차근차근 독립하는 연습을 하라.'

(위의 책 246쪽)


환자들에게 발견하는 부모와의 갈등은 두 가지래요. 부모가 너무 억압했거나, 너무 방임했거나. 자기주장이 강한 자녀에게는 사랑이 억압이 되고, 순응적인 자녀에게 자유는 '부모가 나를 버렸구나'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답니다. 부모의 같은 사랑도 받는 자녀에 따라 억압이 되기도 하고, 방임이 되기도 하는 거죠. 아이의 속성을 관찰하는 게 우선이고요. 다음은 아이의 자생력을 믿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저의 속성을 전혀 관찰하지 않으셨어요. 아니 드러난 속성도 무시했지요. 그 결과 10대 시절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품을 벗어난 20대부터 제 진로를 찾아갈 수 있었어요. 자녀의 성장이 부모의 노력 여하에만 달렸다는 건 오만한 착각입니다. 세상과 만나며 (저의 경우, 책과 저자들) 자기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어요. 끝으로, 나이가 들면 자식과 부모가 서로에게 독립하는 게 중요하답니다. 부모가 자녀를 차근차근 놓아줘야 홀로 설 수 있어요. 부모 공부의 궁극적 목표는 자녀로부터의 독립입니다. 


'나는 진정한 묘비명은 비석에 새겨지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 죽음을 앞둔 어떤 사람들은 훗날 자신의 존재가 잊힐까봐 두려워 묘비명에 생전의 직함이나 시구, 명문장을 새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남기고 싶다고 하여 남겨지겠는가. 돌에 굳건히 새긴들 영원히 기억되겠는가. 우리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진정한 흔적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가슴에 남기는 좋은 기억뿐이다. 내가 죽은 후에 누군가가 나로 인해 사는 게 조금은 행복했었다고 말해 준다면, 그보다 값진 인생이 또 있겠는가.'

 (위의 책, 129쪽)


제게는 블로그가 묘비명이에요. 평생 블로그에 남긴 글이 저의 묘비명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어 그 속에서 찾은 보석같은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는 삶, 이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습니다. 매일 찾아와주시는 여러분이 제 은인이십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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