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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by 김민식pd 2019. 7. 22.

예전에 도서관 저자 특강을 갔더니,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피디님, 이근후 선생님의 책을 읽어보신 적이 있나요? 피디님하고 비슷한 점이 많아요. 그 분 책 제목이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거든요."

찾아보니 4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고, 심지어 제가 꿈꾸는 삶이에요. 왜 나는 이 책을 읽지 못했을까? 뒤늦게 깨달았어요. 2013년 2월에 나온 책이더라고요. 2012년 연말 대선으로 멘붕을 겪고, 회사에서 정직 6개월을 포함한 징계 3종 셋트를 받던 시절이지요. 그 시절에 저는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감히 못했어요.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요.

이근후 선생님은 어려서 4.19와 5.16 반대 시위를 하다 감옥 생활을 하고요. 훗날 정신과 전문의가 되어 50년 간 환자를 돌보며 사십니다. 30년 넘게 네팔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시고요. 35년간 모두 20여 종의 책을 쓰셨어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2011년 76세의 나이로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하셨다는 거죠. 이런 놀라운 삶을 꾸려온 분이 여든 다섯의 나이에 새 책을 내셨어요.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이근후 / 메이븐)

책을 펼치자 바로 빠져들었습니다. 아래 구절을 만났거든요.


'젊었을 때는 의지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면 웬만한 일은 전부 이뤄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 보니 알겠다.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원래부터 많지 않았고, 흐르는 시간을 당해 내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라는 존재의 미약함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인해 회복된다는 사실이다. 고 신영복 선생은 말했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위의 책 7쪽)


세바시 강연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에서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요. 드라마 연출이라는 강도 높은 즐거움을 빼앗긴 대신, 블로그 글쓰기라는 빈도가 잦은 즐거움을 누렸더니 삶이 행복해졌다고요. 삶에서 괴로움이 크면, 그만큼의 큰 즐거움으로 보상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자칫 술 담배 도박 등의 강한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큰 괴로움이 오면, 소소한 즐거움을 꾸준히 반복하는 게 좋아요. 독서, 글쓰기, 여행이 좋지요. 


'50년 넘게 정신과 의사로 환자들을 진료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가를 탐구했다. 내 경험으로만 보자면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둘 다 안 느낄 수는 없겠지만, 과도해서 좋을 게 없다. 아무리 후회한들 바꿀 수 없는 과거이고, 아무리 걱정한들 피해 갈 수 없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더 나쁜 점은 이 두 가지가 지금, 여기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삶의 기쁨들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위의 책 9쪽)


저를 '긍정의 화신'이라고 부르는 분이 있어요. (반 놀림이지요. ^^) 고교 시절에 겪은 외모 비하나 따돌림 때문에, 어려서 저는 분노와 컴플렉스가 심했어요. 아버지에게 늘 맞고 자랐기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컸어요. 맞고 자란 아이가, 폭력 남편이 된다는 이야기가 너무 무서웠거든요. 지나간 과거도 어쩔 수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현재로선 어쩔 수 없으니, 그냥 현재를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도 추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었어요. 둘 다 성격은 다르지만, 몰입감이 뛰어나 순간에 집중하는 활동이거든요. 춤을 추고, 책을 읽다보니, 후회나 불안 대신 순간의 즐거움이 찾아오더군요. 지금도 힘든 일이 닥치면, 즐거운 일을 찾아봅니다. 기왕이면 그 즐거운 일이 나를 성장시키는 일이면 더 좋겠지요. 지금 내가 힘든 건 뭔가 부족함이 있다는 거잖아요? 책을 읽어 나를 성장시키거나 여행을 떠나 경험을 쌓으며, 희망합니다. 내일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람이기를.


책의 목차를 읽다 문득 나의 다짐으로 옮겨 적어봅니다.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마법의 주문처럼 아래 글을 소리높여 읽으려고요.


나이 들었다고 억울해하지 말자

소중한 사람들과 더 자주 연락하며 지내자

죽도록 일만 하지는 말자

멈춰야 할 때 멈추는 법도 알자

몸의 아픔은 품격 있게 표현하자

아버지 살아 계실 때 더 많은 대화를 나누자

자식에게는 좀 더 무심해도 괜찮다

지난 삶을 후회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어쨌든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자

더 건강해지겠다는 욕심은 버리자

골치 아픈 집안 대소사는 전부 자식에게 넘기자

돈, 까짓것 없어도 괜찮다는 배짱을 키우자 


불행했던 어린 시절보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일을 하며 사는 요즘이 더 행복합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조금씩 더 나아진다고 생각해요. 영화 <칠곡 가시나들>도 그렇고,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도 그렇고,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보며, 나이 60이 넘어서도 즐겁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책의 세 줄 요약, 


나이 들면 건강이나 돈에 미련을 갖는 대신, 좋은 관계에 집중하자.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불안해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하루하루 재미나게 살면, 백살까지 유쾌하게 살 수 있다.


책 표지에 나오는 글이 오늘의 간단한 실천입니다.

'더 이상 불필요한 일과 소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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