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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참고 기다리는 것도 실력이다

by 김민식pd 2019. 5. 30.

세렝게티 사파리를 하면 육식동물의 사냥 장면이나 생존 경쟁의 한 장면을 볼 줄 알았는데, 종일 헤매고 다녀도 늘어져 자는 사자들밖에 안 보였어요. 야행성 동물이라 밤에 사냥하기도 하지만, 육식동물 대부분의 일과는 늘어져서 쉬는 거라고 합니다. 
사자들이 온종일 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자에겐 냉장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번 사냥하면 2~3일은 배가 부르기에 그냥 자면서 쉽니다. 배부른데 괜히 사냥해봤자 고기만 상합니다. 야생에서는 하루 잡아 하루 먹고 삽니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이 사는 방식이죠. ‘난 오늘 하루만 보고 산다.’ 

사자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 않아요. 사슴이 풀을 먹는 걸 보고 ‘맛있나 본데? 나도 먹어볼까?’ 하고 풀을 먹는다면, 그야말로 사자 풀 뜯어 먹는 소리인 거죠. 사자가 너무 부지런 떨면 세렝게티는 망합니다. 눈에 띄는 대로 다 잡아먹고 사자의 개체 수마저 늘어나면 결국 그 생태계는 망하고 마는 것이지요. 


지프 그늘에서 늘어져 자는 치타 가족을 보고 있자니 이런 삶의 자세를 배우고 싶어요. 매일 쫓아다니는 지프들이 얼마나 귀찮겠어요. 그런데 치타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어라? 저 부릉부릉 시끄러운 놈들이 또 왔네? 저놈은 덩치가 커서 그늘이 많이 지지. 그래, 오늘은 저기서 볕을 피해보자.” 


치타의 여유에서 배웁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TV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면 세렝게티에서는 늘 목숨 건 혈투가 벌어지잖아요? 실제로 와서 사냥 장면을 보기는 쉽지 않아요. 사냥은 주로 밤이나 새벽녘에 이뤄지거든요. 가이드에게 물었어요. “결국 우리는 사자랑 치타가 자는 모습만 보다 가는 거야?” “사냥은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닌데” 하면서 난감한 표정을 짓던 가이드가 차를 몰아 다시 초원을 헤매고 다닙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태어난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새끼 톰슨가젤이 보여요. 새끼가젤 저 너머에 치타가 있는데, 가젤 눈에는 치타가 안 보여요. 치타가 가젤을 먼저 발견했는데, 바로 달려들지 않고 한참 동안 가만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치타의 끈기가 놀라워요.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경계하던 새끼 가젤이 방심하고 등을 보이는 순간, 치타가 달려듭니다. 사냥은 순식간에 끝나요. 
톰슨가젤 한 마리를 잡으면 치타는 보통 3일을 아무것도 먹지 않는답니다. 욕심을 부려 몸이 무거워지면 안 되니까요. 날렵하고 가벼운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단식한다는 치타, 저보다 낫네요. 

문득 치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랜 기다림을 견디다 기회가 오면 벼락같이 치고 나가는 인생. 그러자면 기다리기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고 기다리는 게 진짜 실력이에요. 
몸을 가볍게 하고, 기회를 기다리는 그런 치타가 되고 싶어요.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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