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

고민이 고민입니다

by 김민식pd 2019. 3. 25.

믿고 읽는 저자가 몇 분 있습니다. 책벌레의 행복은, 부지런한 저자들이 새 책을 낼 때 오지요. 그런 저자 중 한 분이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선생님입니다. 이분을 직접 만난 건 2012년 MBC 아카데미에서 교육발령 받았을 때입니다. '신천교육대'라 하여,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와 피디, 아나운서들을 신천에 있는 MBC 아카데미로 보내어 격리했던 시간이지요. 파업 패배와 2012 대선 이후, 멘붕에 빠져있던 조합원들 앞에 대학 교수나 인문학 강사들이 왔다가 탈탈 털린 적도 있어요. 어설픈 훈계나 위로는 먹히지 않던 시절이지요. 그때 하지현 선생님은 조합원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인기도 많았어요. 그날 이후, 선생님이 내시는 책마다 찾아 읽으며 가르침을 얻고 있습니다. 

<고민이 고민입니다> (하지현 / 인플루엔셜)


선생님은 우리의 뇌와 마음에 대해 꼭 알아야 할 원칙 5가지를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1. 뇌는 가치 판단에 앞서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관이다.

2. 인간은 손실과 고통, 배고픔을 싫어한다. 이를 피하려는 노력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한다.

3. 인간의 마음과 뇌의 총량은 한계가 있다.

4. 인간은 집단 안의 개인인 동시에 타인의 영향을 받는다.

5. 노력과 재능과는 별도로 행운의 영역이 존재한다.'

(위의 책 80쪽)


뇌는 아주 연비가 낮은 비효율적 기관이면서 아주 예민한 시스템이래요. 큰일을 고민해야 할 때는 자아가 고갈되지 않도록 상태를 점검하는 게 필요합니다. 기본적인 체크리스트 역시 5가지인데요. 

1. 배고픔

2. 통증

3. 수면 부족

4. 촉박한 시간

5. 금전적 압박

(위의 책 257쪽)


고민을 해야 할 때, 위의 다섯가지 상황은 피해야 합니다. 저는 드라마 촬영 할 때, 밤샘 촬영 탓에 잠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드라마 촬영 중에는 평소에 하지 않는 야식을 즐기고, 달고단 커피도 마십니다. 수면부족에 배고픔이 겹치면, 더 까칠해져서 "NG!"를 외치는 비율이 높아지더군요. 시간이 촉박한 상황도 피해야 합니다. 가급적 여유있게 일정을 잡습니다. 마감에 촉박한 상태로 일하면 스트레스가 늘어요. 금전적 압박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평소 돈을 쓰지 않는 취미를 즐깁니다. 도서관 가기나, 서울 둘레길 산책이요. 돈을 쓰지 않아도 즐겁다면, 금전적 압박은 피할 수 있거든요.


'그동안 정기예금이나 적금으로 차곡차곡 목돈을 모으던 사람이 있다. 그런데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타면서 동료가 반년 만에 투자한 원금의 두 배를 벌었다고 자랑하고, 언론에서는 주식 장세가 앞으로 1년은 상승 기조일 것이라는 낙관적인 뉴스를 쏟아내면 '나만 뒤처진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 그리고 '주식에 투자하면 적금보다 더 많은 이익이 날 텐데, 나도 수익이 더 생기면 가족들과 해외여행이라도 갈 텐데' 하는 욕망이 생긴다. 그리고 작은 이득이라도 보고 나면 욕망이 점점 커지면서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공격적 투자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가족과 더 좋은 시간을 보내려던 원래의 의도를 잊고 더 큰 수익을 내는데만 몰두하게 된다.

(위의 책 116쪽)

고민을 할 때, 피해야 할 건 주객의 전도입니다. 원래 돈을 버는 건,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인데, 돈에 집착하다보면, 가족의 행복이 뒷전이 되는 경우도 있지요. 돈이 없어도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면, 고민은 줍니다.

저는 고민을 하는 대신 습관을 만듭니다. 대학 졸업 후, 진로가 고민일 때, '나처럼 수학 못하는 공돌이를 어느 공장에서 받아줄까?' 고민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영어로 취업하면 되지!'하고 마음 먹습니다. 고민할 시간에 영어 공부하는 습관을 만듭니다. '드라마 피디로 경력이 끝장난 것 같은데, 그럼 내 노후는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들 때, '작가라는 직업에 도전하면 되지.' 하고 결정하고 바로 글쓰는 습관을 만드는 것처럼요. 수십년 후에 찾아올 어려운 노후에 대해 고민하는 것보다, 당장 내일 블로그에 어떤 글을 올리지? 하는 고민을 하는 게 낫습니다. 후자는 해결가능하고, 또 완수 가능한 미션이라, 성취감을 주고 자기 효용감을 키워주거든요. 

하지현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어느 강연에 갔더니 청중이 "선생님은 요새 어떤 고민을 하세요?" 라고 묻기에, "저는 요새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셨대요.

'눈앞에 다가온 어떤 큰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적 조바심이 '치열한 고민'으로 합리화되고 있다면, 나는 차라리 '고민 없는 나날'에 서 있다고 선언하고 싶다.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하느라 막상 아무것도 못하면서 현재에 머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다가온 작고 구체적인 일들, 고민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일들을 하나씩 클리어해나가면서 뚜벅뚜벅 내 길을 만들어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서 말할 것이다. '전 별 고민이 없습니다'라고.'

(위의 책 267쪽)


'신천교육대'에 처음 발령이 나고, 처음엔 괴로워 죽을 것 같았어요. 저는 노조 집행부였고, 그곳으로 쫓겨난 동료들은 조합원이거든요. 파업에서 패배한 집행부인 제가, 나로 인해 고통받는 다른 분들을 볼 면목이 없는 거죠. 뉴스 앵커하다 내려오신 선배님들이 그곳에 계시는 걸 보고 정말 죄송했어요. 그 힘든 시간, 어떻게 버텼을 까요? 매일 아침 중국어 회화 학원을 다녔습니다. 드라마 연출을 할 때는 바빠서 학원 갈 시간이 없는데요. 교육발령이 나니, 오전에 규칙적으로 시간이 나더군요. 그래서 삼성역에 있는 중국어 학원에 갔고요. 인근 무역회사 다니는 직원들 사이에 앉아 새벽반 수업을 들었어요. 일과 중에도 틈만 나면 중국어 교재의 문장을 외웠고요.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회사일로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며 나의 성장을 도모했어요. 

요즘 저는 강연을 즐겨하는데요. 강사로서의 훈련을 그 시절에 받았어요. 매일 좋은 강사들을 만나 수업을 들으며, 동기부여를 받았거든요. '지금은 이렇게 강연을 듣는 입장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강연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듣기 싫은 인문학 강연을 억지로 끌려 와서 듣는다고 생각하면, 나는 저들이 준 벌을 달게 받는 거고요. 역으로, 돈 주고 듣기도 힘든 명강사의 강연을, 회사 돈으로, 근무 시간에, 듣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그렇게 큰 상도 없어요. 물론 당시 주위 분들에게 이런 생각을 얘기하지는 않았어요. 상처받은 이에게는 그런 과도한 낙천론 역시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저도 오죽 힘들면 그렇게 관점을 바꾸려 들었겠어요. 당시 저는 하지현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마음을 챙길 수 있었어요.

이제 제게는 독서가 큰 상입니다. 세상에 가득한 고수와 큰 스승님들에게 직접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니까요. 심지어 독서는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어요. 강제로 끌려가서 할 필요도 없고. 

'일상의 고민을 절반으로 줄이는 뇌과학과 심리학의 힘'

<고민이 고민입니다> 여러분께도 이 좋은 마음공부를 권합니다. 


   


반응형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웃음'이 필요한 시대  (10) 2019.04.01
걷기 예찬, 하정우 예찬  (20) 2019.03.27
책 읽기의 효용을 높이려면  (15) 2019.03.21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  (11) 2019.03.18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11) 2019.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