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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좋은 웃음'이 필요한 시대

by 김민식pd 2019. 4. 1.
코미디와 드라마, 둘 중 코미디는 부정적인 의미로, 드라마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 사람은 인생이 코미디야." 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 평가 같고,
"그 사람 인생은 드라마야." 라고 하면 왠지 칭찬 같잖아요?
"웃기고 있네." 라고 하면 욕이 되고, "아, 눈물 나네요." 라고 하면 긍정적 평가고요. 

웃음을 주는 코미디 피디로 늘 억울했어요. 왜 우리는 웃음을 이렇게 평가절하하는 걸까? 웃음의 가치는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유머니즘> (김찬호 / 문학과 지성사)의 저자, 김찬호 선생님이 예전에 MBC에 오셔서 사원 대상 특강을 하셨는데요. 그때 뵙고, '아, 배울 점이 많은 분이로구나.' 하고 느꼈어요. 선생님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서점에 달려갔지요.

코미디 피디인 제게 유머는 하나의 전략입니다. 영어 학습서를 쓸 때도 유머가 중요하고요, 싸울 때는 웃음이 저의 무기가 됩니다.


'유머가 하나의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유머러스한 발상과 표현은 사물을 참신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열어준다. 에고의 집착을 풀고 상생의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무한성장에 대한 환상과 강박을 내려놓고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하는 지금, 유머는 삶의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탐색하는 정신의 놀이다. 격조 있는 농담 한마디를 주고받으며 존재가 고양되는 경험을 여러 만남에서 나누자. 그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밑그림을 그려보자. 유머는 심오한 미덕이요 경쾌한 시대정신이다.'
 
(유머니즘 22쪽)

책에는 웃음을 부르는 다양한 상황이 나오는데요, 그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이정모 박사님의 에피소드도 나옵니다.

'서울시림과학관 이정모 관장은 대학에서 생화학生化學을 전공했는데, 그 학과를 선택하게 된 경위가 한 편의 코미디다. 대학에서 농학 農學 관련 학문을 전공하고 싶었던 그는 입시를 앞두고 담임교사의 제안에 따라 '생화학과'를 지망했다. 생화학이 '생화 生花'를 재배하고 연구하는 분야라고 오해한 것이다. 입학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나서야 그는 생화학과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당시엔 생화학이란 학문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이정모 관장처럼 잘못 알고 입학한 학생들이 매년 한 명씩은 있었다고 한다.'

(위의 책 75쪽)

저도 가끔 사람들에게 농삼아 그러지요. 87년 대학 입시에서 1지망 탈락한 게 내 인생의 첫번째 행운이라고. 지망했던 산업공학과에 갔다면, 영어를 공부하거나 방송사 피디가 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이정모 관장님이 이제와서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생활을 잘 보내고, 과학저술가로 행복한 삶을 꾸렸기 때문 아닐까요? 만약 대학 4년 내내, 전공 선택의 실수에 대해 우울해하며 비참하게 느꼈다면, 이 이야기의 결말은 비극이었을 테니까요. 살다가 황당한 실수를 하는 때가 많죠.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위기를 잘만 극복하면, 언젠가 이것도 웃음의 소재가 될 것이다." 저의 부족한 외모가 자학 개그의 인기 소재가 된 것 처럼요. ^^

제가 웃음에 집착하게 된 건 오래된 일입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제 못생긴 외모를 가지고 놀리고 막 웃더군요. 그들의 웃음이 제게는 상처였어요.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건강한 웃음이 무얼까? 고민을 많이 했지요. 요즘도 농담을 하며 자주 고민합니다. 선을 넘지 않는 웃음은 어디까지일까, 하고요. 

''우월'의 코드로 작동하는 유머는 늘 위험 요소를 내포한다. 자칫하면 상대방을 모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의가 없었다고 해도 말이다. 놀이가 놀이일 수 있으려면, 상대방도 그것이 놀이임을 인식하면서 규칙에 동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심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신체적인 장난이 지나치면 중대한 사고로 이어지는 것처럼, 농담도 어느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우스개의 대상이 된 사람이 모멸감을 느끼거나, 그것을 바라보는 제삼자가 민망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기준이 될 듯하다.'

(위의 책 93쪽)


요즘 시대, 유머의 달인은 인공지능인가봐요. 예전에는 저만 보면 재미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던 민서가 요즘은 휴대폰에게 조릅니다. "시리야, 웃기는 이야기 하나 해 줘." "오케이 구글, 재미난 이야기 해줘." 저는 영어 공부 삼아 가끔 영어 조크 앱을 깔고 이것저것 뒤져보기도 합니다. 가볍게 머리를 식히는 데는 역시 우스개가 최고지요.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인기라고 하는데요. 어떤 사람이 웃음을 주는 사람일까요?

'어느 직장인의 경험담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상사가 하는 농담이 재미있어서 들을 때마다 크게 웃었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시큰둥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게 되었고, 오히려 그의 농담에 짜증이 나더라. 겪어보니, 그 상사의 인격에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내가 나름 괜찮은 유머를 구사하는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썰렁하지? 말솜씨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웃기려고 하면, 오히려 반감만 사게 된다. 마음속 깊이 그 사람에 대한 불편함이 깔려 있는데 자꾸만 웃음을 강요하면 관계가 더욱 거북해진다. 유머 감각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호감과 매력을 주는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유머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품성이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되는 사회적 지혜이기 때문이다.'

(189쪽)

건강한 웃음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머니즘 : 유머 + 휴머니즘. 인간의 존엄을 세우면서 더 나은 삶을 빚어내는 유머'를 여러분께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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