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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걷기 예찬, 하정우 예찬

by 김민식pd 2019. 3. 27.

저는 지금 여행 책을 쓰고 있습니다. 여행으로 삶의 활력을 찾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지요. 책의 원고를 고민하다, 책 한 권을 찾아 읽었어요.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글 사진 / 문학동네) 저도 책의 한 꼭지로 걷기 여행 예찬을 쓰고 있었거든요. 배우 하정우씨가 쓴 책을 읽으며 여러차례 감탄했어요. '아, 이분, 제대로 걷는 사람이구나.' 

'걷기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나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는 것' 

뒷표지의 띠지에 실린 글인데요. 확 와닿습니다. 제게, 쓰기가 그렇고, 읽기가 그렇고, 걷기가 그렇거든요. 아무것도 없어도,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 하면서 점점 늘고, 하면서 성장하고, 고민이 사라지는 일. 인생이란 이런 루틴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술이나 약물에 흠뻑 중독돼 흐트러진 자세, 충동적인 일탈과 자유분방함, 무절제와 탕진하는 습관, 감정 기복, 우울증과 예민함, 그리고 그 불행과 절망을 딛고 태어나는 훌륭한 예술작품들.....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예술가의 이미지는 대체로 이런 쪽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성실하고 규칙적으로, 평범한 직장인처럼 살아가는 예술가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어한다. 내가 배우이자 감독이면서 동시에 그림까지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 가끔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충만한 하정우를 상상했다가 나에게 몹시 실망(?)하는 듯한 사람들도 만난다. 

"하정우씨는 의외로 바른 생활을 하는 분 같네요?"

(중략)

"좋은 작품은 예술가가 안정적이고 반듯한 길에서 벗어나서 일탈하거나 방황할 때 나오지 않나요?"

사람들이 던지는 이런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좋은 예술과 안정적인 삶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좋은 작품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

(위의 책 117쪽)

책을 읽으며 연신 "하정우, 멋지다!"를 연발했어요. 저는 한때 춤에 빠져 산 적도 있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클럽 나들이도 끊었고요. 골프를 즐겨 친 적도 있었지만, 작가의 삶을 꿈꾼 후 주말엔 책읽고 글쓰는 걸로 루틴을 바꿨습니다. 술 약속을 피하고 저녁에는 일찍 들어가는 저를 보고 '드라마 피디가 너무 반듯하게 살면 재미없는데?'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어요. 연예계 언저리에서 피디로 20여년을 살며 내린 결론, 쾌락의 끝에는 중독이 있고, 중독의 끝은 아름답지 않아요. 이 재미난 직업, 오래오래 하려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배우는 기다리는 직업입니다. 캐스팅 제의를 기다리고, 대본을 기다리고, 촬영장 세팅을 기다리고, 감독의 큐사인을 기다립니다. 기다릴 때 잘 기다려야 해요. 기다리다 제 풀에 지치면, 불안해지고요. 그럼 무언가에 의존하게 됩니다. 인기나 약물에 잘못 의존하면 망가지고요. 저자인 하정우씨는 동료 배우들과 함께 걷기 모임도 하고 독서 모임도 한대요. 걷기와 독서를 통해 기다림의 시간을 견딥니다.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이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에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 삼십 분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206쪽) 

매일 만보 이상 걷고, 비행기타러 강남에서 김포공항까지 걷고, 내치면 하루에 10만보를 걷는다는 하정우의 걷기 예찬... 책을 읽으며 반성했어요. 이렇게 멋진 배우도, 그림을 그리고, 운동하고, 시나리오도 쓰고, 책도 쓰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따위가 뭐라고 엄살을 부렸을까...

책을 읽고 바로 휴대폰 첫 화면에 만보계 어플을 띄웠습니다. 요즘 매일 꼬박꼬박 만보 이상을 걷습니다. 혹 걸음수가 부족한 날은 저녁 9시에 안방과 거실을 오가며 걸음수를 채워요. 큰 딸이 한밤중에 집안에서 '하나둘, 하나둘' 팔을 흔들며 걷는 저를 보며 웃더군요. 네, 팔을 흔들어야 휴대폰 앱의 걸음수가 올라가거든요. 

이런 책이 좋은 책이지요. 읽고 나면 동기부여가 되고, 삶을 바꾸는 책. 영화로 만나는 하정우도 좋지만, 책을 통해 만나는 저자 하정우도 참 좋네요. 다음 영화와 함께, 다음 책도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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