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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

by 김민식pd 2019. 3. 18.

책을 내고, 가장 궁금한 것은 제 책을 읽은 사람의 반응입니다. 그때 반가운 게 저자 인터뷰 요청입니다. 인터뷰 기자님은 책을 읽고 질문을 준비해오시니까요. 인터뷰를 하면서 느낍니다. '아, 이 분은 책에서 이런 대목이 좋았구나.' 제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 즐거운 수다를 떨 수 있기에, 저는 저자 인터뷰 요청이 반가워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내고 온라인 서점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너무 좋았죠. 그때 만난 분이 <채널 예스>의 엄지혜 기자인데요. 그분의 인터뷰 기사가 참 좋았어요. 그후 페이스북에서도 그 분의 글은 매번 챙겨 읽고, 잡지 <채널 예스>에서 이름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워요. 저자를 직접 만나는 게 이분의 일인데, 그 분이 책을 내셨다는 소식에 얼른 달려가 샀어요. 

<태도의 말들> (엄지혜 / 유유)

'언제나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감각이 합해져 한 사람의 태도를 만들고 언어를 탄생시키니까. 누군가를 추억할 때 떠오르는 건 실력이 아니고 태도의 말들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체험하고 있다. "말 안 해도 알지?", "내 진심 알잖아"라는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모른다. 태도로 읽을 뿐이다. 존중받고 싶어서 나는 태도를 바꾸고, 존중하고 싶어서 그들의 태도를 읽는다. 문제는 존중이니까.' 

(위의 책 머리말에서)


강의에 가서 자주 하는 말입니다. 사람의 역량은 지식, 기술, 태도의 합인데, 셋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라고요. 책에는 수많은 저자들을 인터뷰하며 길어낸 보석같은 말들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를 꼽는다면,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에게 들은 "성격은 생존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라는 이야기다.

"성격은 대부분 생존에 이점이 있어서 발달된 것입니다. 40~50년을 한 성격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성격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신중하고 말수가 적은 남편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적극적으로 표현도 하고, 이전과 다른 행동을 보여 달라'고 하는 건 당신의 유전자를 바꾸라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사람의 성격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방향으로 형성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생존에 가장 적합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위의 책 17쪽)

얼마 전, 결혼을 앞둔 커플을 만나 점심을 먹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거든요. 다음에 만나면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사람을 만나 성격 차이 때문에 힘들어 하는데요. 저 사람이 바뀌길 바라는데, 안 바뀌는 걸 보고, 나를 향한 사랑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하고 혼자 상처받지요. 사람은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닌데 말이지요.


'자기 인생이 재미있어지면

아이에 대한 고민은 줄어든다.

-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평소 좋아하던 저자의 글을 책에서 만나면 반가워요. 그러면서 저자인 엄지혜 님이 막 부럽지요. 우왕, 이 분도 만나셨구나! 우왕, 이런 저자도 있구나! 저는 낯가림이 심해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부담일 것 같아요. 대신 책을 읽고 프리랜서 기자가 된 심정으로 리뷰를 씁니다. 돈 안 받고 해도 즐거워요. 화가 윤석남 님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십니다.

"예술이란 99퍼센트가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거라 하는 건데 재능이 있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야?"

(181쪽)

그렇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재능이 무슨 상관인가요, 그냥 즐기면 그만이지. 돈을 안 받아도 즐거워요. 책으로 작가를 만나는 게 지고지순한 낙입니다.그래도 작가님을 직접 만나는 직업이라니 좀 부럽긴 하네요. 작가를 만나고 싶다면, 책을 쓰면 됩니다. 작가가 되면, 또 다른 작가를 만날 수 있어요. 새 책을 낼 때마다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에 달려갑니다. 가면 장강명 작가와 요조 작가를 만날 수 있거든요. 책에서 만난 요조님의 말도 반가웠어요.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고군분투와 삽질에 대해 최대한 적극적으로 말하는 편인데, 이것이 타인에게 적잖은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가수 요조

(112쪽)


일을 하다 종종 후배들 중에서 좌절과 굴욕을 유독 못 견디는 친구를 봅니다. 중고교 시절 수재 소리 듣고, 명문대 나와 방송사 피디로 입사했는데, 막상 철없는 연예인이나 막무가내 매니저를 만나는 상황이 힘든 거죠. 삶은 삽질의 연속입니다.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에요. 이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종기 시인은 연세대 의대에서 예비 의사들에게 문학을 가르쳤대요.

"의학, 과학을 지상 최고의 학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삶의 의지가 단번에 꺾입니다. 다른 취미 없이 외골수로 살아가면 인생에 있어서 큰일이 닥칠 때 쉽게 이겨 내기 어려워요. 내 삶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취미를 갖고 그것을 즐기면, 의사로서 좌절하고 봉변을 겪게 될 때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할 때, 어떤 예술이 주는 힘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 줘요."

(115쪽)

직업도 중요하지만, 위기의 순간, 나를 살린 건 사소한 취미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취미가 아니었으면, 힘든 시간 버티기 어려웠을 거예요.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봤어요. 요즘 나의 '태도의 말들'은 어떤가? 오늘도 책에서 배웁니다. 

수많은 저자들과의 만남에서 보석같은 말들을 모아 들려주신 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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