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 작가님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신기합니다. '이 분은 어떻게 이렇게 남다른 시선을 갖게 된 걸까?' <아만자>라는 만화도 그렇고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같은 에세이도 그렇고, <살아, 눈부시게>같은 고민상담 웹툰도 그렇지만, 늘 기대이상입니다.

<DP : 개의 날>이라는 만화를 읽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김보통의 남다른 시선은 약자들의 삶을 바로 곁에서 지켜본 경험에서 오는구나.'

군생활을 하다 영창에 잡혀가는 사람이 가끔 있어요. 저는 방위병으로 지역에서 근무했는데요. 가끔 사회에서 사고치고 들어오는 방위병들이 있었지요. 술 먹다가 옆자리에서 누가 똥방위 어쩌고 하면 바로 시비가 붙어 폭행죄로 잡혀오는 이도 있지요. 

김보통 작가는 체격이 좋아 헌병으로 차출됩니다. 군탈체포조라 하여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데요. 그 탈영병들의 사연이 기구합니다. 군대에서 온갖 폭행을 견디다 못해 달아나는 이들이 많더군요. 즉, 더 큰 죄를 지은 사람은 (후임 폭행하고 성추행한 고참) 그냥 군대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견디다못해 휴가 후 미복귀라는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은 탈영병이 되어 영창에 갑니다. 가해자가 2차 가해를 날리지요. '아우, 저 찌질한 새*. 그 정도도 못 참고 무슨 탈영이야.'  


나는 운이 좋아 군탈체포조가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누군가를 때리거나 내가 맞은 일은 별로 없었다. 상당수의 시간을 군대가 아닌 밖에서 생활하기 때문일까, 이른바 개념 없는 짓을 하더라도 내게 손을 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겁이 많고 마음이 여렸기 때문에 누가 때리기라도 하면 탈영을 했을 것이 분명하니까. 탈영병을 쫓는 군탈체포조였기 때문에 탈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셈이다. 우습지만.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사리판 같은 소속 헌병대를 뒤로 하고, 나는 육체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다 탈영을 한 다른 부대의 누군가를 찾으러 다녔다. 기묘한 경험이었다. 지긋지긋한 폭력을 견디다 못해 차라리 범죄자가 된 탈영병을 가까스로 찾아 영창에 넘기고 내무실로 들어서면, 침상 위를 비호처럼 날아다니며 후임병에게 이단 옆차기를 날리는 선임의 모습을 보곤 했다. (중략)

이따금 그때 내가 보았던 그 기묘한 풍경을 떠올린다. 그 풍경에는 그저 구경밖에 할 수 없었던 나도 담겨 있다.

이 만화는, 그래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경계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 시절을 차마 잊을 수가 없어, 어렵게 꺼내놓는 고백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드라마 피디인 제가 강연을 시작한 이유가 있어요. 고교 시절, 따돌림의 피해자로서, 저같은 처지에서 괴로워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 힘든 시절, 조금만 버티면 지나간다고.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로 특강에 녹여 넣습니다. 

학교나 군대에서 폭력이 만연한 이유는, 힘든 환경 탓도 있어요. (물론 환경탓이라고 개인의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입시 스트레스를, 복무 스트레스를, 약자에게 푸는 거지요.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할 엄두가 안 나니, 그냥 내가 풀 수 있는 상대에게 화를 푸는 걸로 버팁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칫하면 가해자가 될 수 있어요.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는 나약한 마음에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나보다 더 약한 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너무 아등바등 살 필요 없어요. '찐따'로 살아도 됩니다. 환자로 살 수도 있어요. 탈영병이 될 수도 있고요. 중요한 건 그런 힘든 시간에서도 나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겁이 많고 마음이 여리다는 김보통 작가. 그의 힘은, 약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서 옵니다. 그는 고통을 지그시 응시하면서도, 고통이 내 삶을 잡아먹지 않도록 합니다. 오히려 고통에서 깨달음을 찾습니다. 암투병하는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 <아만자>를 낳았고,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며 느낀 그들의 애환이 <DP 개의 날>에 담겼어요. 고난에서 배우는 작가에게, 오늘도 배웁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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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아 2019.03.14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덕분에 하루의 시작이 행복해요.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갑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거 같아요.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고 쓴 글이 한 편 있는데 부족하지만 나누고 싶습니다. 저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데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미흡한 점미 많아요.


    누군가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행위는 그 누구도 해서는 안됩니다. 인류역사는 문명과 교육과 제도와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그 속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갈등이 생겼을 때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포함됩니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상대방을 생각한다면 마음 아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진 않을텐데요. 내가 힘들게 하는 사람이 누군가의 배우자, 아버지, 자녀 등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상식 밖의 말과 행동은 하지 말아야합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되진 못하더라도 사는 동안 다른 사람 마음에 마구 생채기를 내지는말아야겠지요.

  2. 보리랑 2019.03.14 0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해를 당한 사람는 가해자가 되거나 또다른 피해자가 되거나 한다네요. 가해자도 피해자였으니, 가해자에 대해서도 따뜻한 자비심으로 바라볼수 있다면 한결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가해자를 욕하며 계속 가해자가 되도록 만드나 싶네요

  3. 꿈트리숲 2019.03.14 0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부터 홀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외 여러 집단에서 폭력을 경험하고 학습한
    사람들이 또 다른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같아요.
    그 대물림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교육이
    제 역할을 다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리적인 폭력 뿐만아니라 언어와 기타 다른
    수단을 동원하는 모든 것들이요.
    요즘 여러 뉴스들에서 좀 많이 씁쓸합니다.

  4. 오달자 2019.03.14 0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누구라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무심코 상대에게 던진 한 마디가 상대에게 비수가 되어 평생 잊지못할 순간으로 기억 된다하더라도 가해자는 피해자의 상처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뉴스에 떠도는 사건들을 보면 도대체 양심은 있는건지...사람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만큼 비현실적인 가해자들이 넘쳐납니다. 씁쓸한 현실이죠.

  5. 지나가는 2019.03.14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김보통 작가님 에세이 보고 다른 작품들도 궁금했는데 피디님 글에서 보니 반갑네요

  6. 아리아리짱 2019.03.14 0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우리는 자칫하면 가해자가 될수 있어요.
    나보다 더 약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필요 합니다.'
    네! 더 약한자의 입장에서 바라볼수 있는 넉넉함을 키우는 것이 교육의 목표 일텐데...
    인문학의 진리는 "역지사지"임을 나날이 느낍니다.

  7. 남궁은 2019.03.14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오빠의 글은 언제 읽어도 항상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건 대부분의 부모들이 본인의 아이가 피해자가 되진 않을까? 나쁜 친구들을 사귀진않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하더라구요. 저 역시도 그렇지만,...ㅠㅠ 무엇보다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가정에서 보살피고, 조금 더 크면 학교에서 그 보살핌을 받는게 필요한 것 같더라구요.
    누구나 공격성은 갖고있는 건데, 그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발산되면 좋은뉴스가 가득한 사회가 될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요즘이네요.

    오늘 날씨가 무지하게 좋습니당.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8. 은하수 2019.03.14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혹시 갑질을 하며 사는건 아닌지...약한자에게 상처주는건 아닌지 가만가만 되돌아보게 되구요, 지난 일을 반성하게 됩니다.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눈치 보며 아무도 말 못할 때 용기내서 차근차근 말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조금씩, 잠깐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살아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PD님의 글과 추천해주신 책을 통해 영어 뿐만 아니라 가치관, 인성, 여행, 재미와 감동을 종합선물세트로 이리 얻으니...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9. 샘이깊은물 2019.03.14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통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아픔의 시간도 성장의 동력으로 만들어내는 태도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깨달은 것을 다른 이와 나누려는 마음에도 감탄합니다.

  10. 섭섭이짱 2019.03.15 0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타 인의 고통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인 간 김보통의 이런 모습이 따뜻한 글로 이어진거 같네요.
    의 식하려 하지만 쉽지 않은게 타인의
    입 장에서 생각하기인거 같아요.
    장 시간 알고 지낸 관계
    에 서도 사소한 이유로 헤어지는걸 보면 말이죠.
    서 론에 있는 작가의 말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바 라보기만 하며 경계에 서있던 그 모습...
    라 에게는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되네요.
    보 통 작가의 다음 책은 어떤 책이 나올지 기다려지네요.
    기 해년에도 좋은 일만 있길 바랄께요.

    김보통 작가 아자아자 파이팅~~~

  1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03.15 0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다보니 먹먹해집니다.

    저는 어릴적 군 부대 근처에서 살았는데,
    탈영병이 생기면 곳곳에 군인들이 검문하던 모습이 기억에 있어요
    탈영병들의 속내를 오늘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럴수도 있군요...
    견디다못해 그런것일수도 있었군요..

    먹먹해졌습니다..

  12.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03.15 0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생 배울 천지인 이 세상에 감사하네요.

  13. 섭섭이짱 2020.06.30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기쁜일이~~~
    경사났네 경사났어~~~~
    기사보다 피디님 예전 리뷰글이 떠올라 댓글 남겨봅니다.
    보통 보통 김보통 작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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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김보통 작가 인기 웹툰 'D.P.'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 확정!>

    넷플릭스(Netflix)가 김보통 작가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새 오리지널 시리즈 'D.P.'의 제작을 확정 지었다.

    넷플릭스가 영화 '차이나타운', '뺑반'의 한준희 감독과 손잡고 오리지널 시리즈 'D.P.'의 제작을 확정 지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는 어느날 ‘군무이탈 체포조’가 된 이등병 준호가 탈영병을 쫓으며 마주하게 되는 혼란스러운 청춘에 관한 이야기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는 '아만자'로 문체부 주관 한국 최고의 만화상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하며 데뷔와 동시 크게 주목받은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개의 날]이 원작이며, 레진 코믹스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화제작이다. 육군 헌병대 군무이탈 체포조 D.P.(Deserter Pursuit)라는 신선한 소재로 군내 가혹행위와 인권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누적 조회 수 약 1,000만 뷰를 넘긴 히트작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의 연출은 장편영화 데뷔작 '차이나타운'으로 제68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받으며 충무로에 파란을 일으켰던 한준희 감독이 맡고, 각본은 한준희 감독과 원작자 김보통 작가가 공동작업했다. ‘군인 잡는 군인’의 시선에서 탈영병을 추적해가는 과정의 장르적 재미와 탈영을 선택한 이들의 고뇌와 상처까지 균형 있게 그려낼 'D.P.'의 제작은 드라마 '방법'을 제작하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을 제작중인 레진스튜디오가 맡는다.

    참신한 소재, 묵직한 메시지로 큰 사랑을 받은 원작의 시리즈 화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으는 'D.P.'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 시청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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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인용 :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08&aid=0000096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