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by 김민식pd 2019. 3. 14.

김보통 작가님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신기합니다. '이 분은 어떻게 이렇게 남다른 시선을 갖게 된 걸까?' <아만자>라는 만화도 그렇고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같은 에세이도 그렇고, <살아, 눈부시게>같은 고민상담 웹툰도 그렇지만, 늘 기대이상입니다.

<DP : 개의 날>이라는 만화를 읽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김보통의 남다른 시선은 약자들의 삶을 바로 곁에서 지켜본 경험에서 오는구나.'

군생활을 하다 영창에 잡혀가는 사람이 가끔 있어요. 저는 방위병으로 지역에서 근무했는데요. 가끔 사회에서 사고치고 들어오는 방위병들이 있었지요. 술 먹다가 옆자리에서 누가 똥방위 어쩌고 하면 바로 시비가 붙어 폭행죄로 잡혀오는 이도 있지요. 

김보통 작가는 체격이 좋아 헌병으로 차출됩니다. 군탈체포조라 하여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데요. 그 탈영병들의 사연이 기구합니다. 군대에서 온갖 폭행을 견디다 못해 달아나는 이들이 많더군요. 즉, 더 큰 죄를 지은 사람은 (후임 폭행하고 성추행한 고참) 그냥 군대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견디다못해 휴가 후 미복귀라는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은 탈영병이 되어 영창에 갑니다. 가해자가 2차 가해를 날리지요. '아우, 저 찌질한 새*. 그 정도도 못 참고 무슨 탈영이야.'  


나는 운이 좋아 군탈체포조가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누군가를 때리거나 내가 맞은 일은 별로 없었다. 상당수의 시간을 군대가 아닌 밖에서 생활하기 때문일까, 이른바 개념 없는 짓을 하더라도 내게 손을 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겁이 많고 마음이 여렸기 때문에 누가 때리기라도 하면 탈영을 했을 것이 분명하니까. 탈영병을 쫓는 군탈체포조였기 때문에 탈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셈이다. 우습지만.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사리판 같은 소속 헌병대를 뒤로 하고, 나는 육체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다 탈영을 한 다른 부대의 누군가를 찾으러 다녔다. 기묘한 경험이었다. 지긋지긋한 폭력을 견디다 못해 차라리 범죄자가 된 탈영병을 가까스로 찾아 영창에 넘기고 내무실로 들어서면, 침상 위를 비호처럼 날아다니며 후임병에게 이단 옆차기를 날리는 선임의 모습을 보곤 했다. (중략)

이따금 그때 내가 보았던 그 기묘한 풍경을 떠올린다. 그 풍경에는 그저 구경밖에 할 수 없었던 나도 담겨 있다.

이 만화는, 그래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경계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 시절을 차마 잊을 수가 없어, 어렵게 꺼내놓는 고백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드라마 피디인 제가 강연을 시작한 이유가 있어요. 고교 시절, 따돌림의 피해자로서, 저같은 처지에서 괴로워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 힘든 시절, 조금만 버티면 지나간다고.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로 특강에 녹여 넣습니다. 

학교나 군대에서 폭력이 만연한 이유는, 힘든 환경 탓도 있어요. (물론 환경탓이라고 개인의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입시 스트레스를, 복무 스트레스를, 약자에게 푸는 거지요.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할 엄두가 안 나니, 그냥 내가 풀 수 있는 상대에게 화를 푸는 걸로 버팁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칫하면 가해자가 될 수 있어요.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는 나약한 마음에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나보다 더 약한 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너무 아등바등 살 필요 없어요. '찐따'로 살아도 됩니다. 환자로 살 수도 있어요. 탈영병이 될 수도 있고요. 중요한 건 그런 힘든 시간에서도 나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겁이 많고 마음이 여리다는 김보통 작가. 그의 힘은, 약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서 옵니다. 그는 고통을 지그시 응시하면서도, 고통이 내 삶을 잡아먹지 않도록 합니다. 오히려 고통에서 깨달음을 찾습니다. 암투병하는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 <아만자>를 낳았고,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며 느낀 그들의 애환이 <DP 개의 날>에 담겼어요. 고난에서 배우는 작가에게, 오늘도 배웁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