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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글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by 김민식pd 2019. 3. 7.

<<< 글 하단에 어제 올린 영화 초청 이벤트 신청자 명단 있습니다. 어제 오후에 신청하신 분도 다 넣었구요. 오이코스맘님도 포함했습니다. 확인해주시고요. 오전에 추가 신청해주신 5분 포함하여 이제 마감합니다. 고맙습니다!>>>   


가끔 여행을 갔다가 읽을 책이 떨어지면, 난감한 지경이 됩니다. 터키를 여행할 때, 기차에서 누가 놓고 내린 신문이 있는데, 알 수 없는 문자로 가득한 신문을 보며 문맹이 된 기분이었어요.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쓴 자전적 이야기 <문맹>이라는 책이 있어요. 헝가리 출신의 난민인데요. 스위스에서 거주하며 프랑스어로 글을 썼어요. 네 살에 모국어로 이미 글을 읽기 시작했답니다.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신문, 교재, 벽보, 길에서 주운 종이 쪼가리, 요리 조리법, 어린이책. 인쇄된 모든 것을. 

나는 네 살이다. 전쟁이 막 시작됐다.

(책 9쪽)


헝가리에 소련군이 진주한 후,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흥미를 잃지요. 훗날 어린 아기를 안고 야반도주합니다. 난민으로 스위스에 정착해 프랑스어를 배웁니다.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글을 씁니다. 


시를 쓰는 데는 공장이 아주 좋다. 작업이 단조롭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며, 기계는 시의 운율에 맞춰 규칙적인 리듬으로 반복된다. 내 서랍에는 종이와 연필이 있다. 시가 형태를 갖추면, 나는 쓴다. 저녁마다 나는 이것들을 노트에 깨끗이 정리한다.

(88쪽)


그렇죠. 글은 언제 어디서라도 쓸 수 있습니다. 제가 블로그 글의 초안을 쓰는 주된 공간은 출퇴근하는 전철 안입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글귀를 만나면 휴대폰 메모장에 쪽수를 적어둡니다. 떠오르는 생각도 간단히 메모를 해두죠. 퇴근하고 책상 앞에 앉아 메모를 노트북으로 옮깁니다. 여러 글 중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글을 추립니다. 그 글이 특히 마음을 움직인 이유가 무엇일까? 나의 이야기를 더합니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스위스에 도착하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희망은 거의 불가능한 꿈이 되었다. 

(97쪽)


평생을 배우고 단련해온 모국어를 버리고 정치적 망명을 선택한다는 건 작가로서의 삶에 가장 큰 위기가 아닐까요? 스위스에 도착하고 5년 후, 프랑스어로 말은 하지만 읽지는 못해요. 다시 문맹이 된 거죠. 아이를 키우며 학교를 다니며 프랑스어를 배웁니다. 프랑스어로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작가는 희열을 느낍니다. 저 역시 그랬어요. 영어 회화 책을 외운 후, 어느 순간 머릿속에 영어 문장의 구조가 들어섰어요. 사전을 보지 않고도 영어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 모르는 단어를 만나도 이야기를 통해 추리할 수 있었고요. 스티븐 킹, 시드니 셀던, 프레드릭 포사이스 같은 영어권 작가를 만난 게 큰 즐거움이었지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112쪽)


저 역시 알아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해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만큼 제가 영어를 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도전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글을 쓰는 재능 역시 타고 나지 못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즐거움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지요. 우리의 환경은 선택한 것이 아니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도전할 수 있어요. 

아고타의 글은 쉽고 단순하지만 힘이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말만을 골라 써서 그래요.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는데도 도전하는 것, 거기에 하루하루 사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맹을 벗어나려는 유쾌한 칠곡 할머니들의 모험담! <칠곡 가시나들> 블로그 독자 초청 이벤트 명단 발표합니다. 


최수정 - 1

꿈트리숲 -2 

온남매 - 2

루치 신 - 1

제경어뭉 - 2

새벽부터 횡설수설 - 2

다다내추럴 - 2

디노 - 1

섭섭이짱 - 2

째희 - 3

세너지 - 1

엘레나 - 1

겨자봉봉 - 2 

초현 - 2

조명희 - 2

제이 - 1

양누리 - 2

마이신 - 1

샘이 깊은 물 - 1

오이코스맘 - 3

박재인 - 1

오달자 - 1

주필 - 3

웃자 -1

박정민 -1


모두 고맙습니다! 금요일 저녁 7시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뵐게요!

(7시 30분 영화 시작이지만, 정시 상영하는 곳이라 가급적 일찍 오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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