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영어 스쿨177 이러다 변태라고 소문나는 거 아냐? 경상도에서 자라며 남중에 남고를 다닌 저는 남학생 위주의 문화에 익숙해있었어요. 심지어 대학까지 공대를 나와서 여학생과 일상적인 접촉을 가져본 적이 없지요. 이성과의 교류에 있어 쑥맥인 제가 외대 통역대학원에 갔더니 사방이 다 여자더군요. 한영과 신입생 40명 중 남자는 겨우 다섯 명, 절대 다수가 여학생이었어요. 게다가 통대 여자들은 어쩜 그리 하나같이 예쁘고 똑똑하던지... 여자아이들이 빛이 나는 것 같았어요. 자습실에 앉아 공부하다보면 옆자리에 여학생이 앉는데요. 어쩌다 팔꿈치라도 스치면 한동안 가슴이 쿵쾅거려 숨도 못 쉴 지경이었어요. 예쁜 친구가 보이면 자꾸만 눈길이 가고, 몰래 훔쳐보다 눈이 마주치면 얼굴이 빨개지고. 겁이 덜컥 났어요. '이러다 나, 변태라고 소문나는 거 아냐?' 어제 글에서.. 2017. 1. 11. 진짜 딴따라, '무한도전' 김태호 PD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자신이 잘 하는 일과 못 하는 일을 구분하는 것도 행복의 중요한 척도 중 하나지요. 다만, 어떤 일을 직접 해보기 전에는 잘 하는 지 못 하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예능 PD로 일했지만 정작 버라이어티 쇼 연출은 잘 못하는 편이었어요. 입사하고 늘 시트콤 연출만 했더니 선배들이 걱정하더군요. 버라이어티 쇼가 예능국의 본령인데, 너무 변방 프로그램만 하는 것 아니냐고. '논스톱' 시리즈를 2년 반 동안 연출하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발령이 났습니다. 본격 예능, 그것도 주말 메인 프로그램에 들어갔는데, 조연출 때 버라이어티 쇼 편집을 많이 해보지 않아 한참 헤맸습니다. '박수홍의 러브하우스'라는 코너를 연출했는데, 웃기고 싶은.. 2017. 1. 9. 나는 무엇을 하고 살까? ('거리의 악사처럼...'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고교 진로 특강에 가면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대입 실패입니다." 문과를 가고싶었던 저는, 이과 중에서 문과에 가까운 산업공학과, 일명 공업 경영학과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내신이 낮아 (15등급 중 7등급) 1지망 낙방했어요. 그래서 자원공학과 (구 광산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내내 고민했어요. '난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까?' 만약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면, 전공 공부 열심히 하고 공장에서 관리직을 하며 살았을 겁니다. 대입에 실패했기에 자신의 적성을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우리는 실패를 겪고 좌절을 맛 볼 때 다른 길을 고민합니다. 어쩌면 실패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일지도 몰.. 2017. 1. 8. 거리의 악사처럼... 저의 고향은 울산입니다. 1980년대 공업 도시 울산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낸 저는, 한양대 공대로 진학했어요. 어른이 되면 당연히 엔지니어가 되어야하는 줄 알았거든요. 공대를 나와 공장에서 일하는 게 유일한 진로라고 믿었던 제가 딴따라의 삶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어요. 바로 1992년 대학 4학년 때 유럽으로 떠난 배낭여행입니다. 유럽의 관광명소는 가는 곳마다 거리의 악사로 넘쳐났어요. 런던 피카디리 서커스의 기타 치는 남자, 프라하 카를 교의 바이올리니스트, 파리 퐁피두 센터 앞의 마임 연기자. 세상에 예술가라면 TV에 나오는 사람이 다인줄 알았는데, 아마추어 예술가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한국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신인류였지요. 직업은 재미가 없어도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었는데... 2017. 1. 6.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