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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나는 무엇을 하고 살까?

by 김민식pd 2017. 1. 8.

('거리의 악사처럼...'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고교 진로 특강에 가면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대입 실패입니다."

문과를 가고싶었던 저는, 이과 중에서 문과에 가까운 산업공학과, 일명 공업 경영학과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내신이 낮아 (15등급 중 7등급) 1지망 낙방했어요. 그래서 자원공학과 (구 광산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내내 고민했어요. '난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까?'

만약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면, 전공 공부 열심히 하고 공장에서 관리직을 하며 살았을 겁니다. 대입에 실패했기에 자신의 적성을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우리는 실패를 겪고 좌절을 맛 볼 때 다른 길을 고민합니다. 어쩌면 실패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일지도 몰라요. 

유럽에서 거리의 악사를 만나고, 그들의 삶이 부러웠어요.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좋으니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어릴 적부터 저는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아하고.

스토리텔러로 살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감히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를 꿈꾼 건 아니고요. 그냥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지요. 첫 직장에서는 세일즈를 했습니다. 치과 영업을 뛰면서 나 자신을 스토리텔러라고 상상했어요. 제품의 특성을 그냥 설명만 하면 재미가 없어요. 개발 상황이나 탄생 비화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른 치과 선생님의 사용 후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각색해서 들려드려요.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를 만들어도 영업사원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어주는 의사 선생님은 별로 없더군요. 그래서 통역사로 직업을 바꿨습니다. 이야기를 만들 재능은 없어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옮기는 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외대 통역대학원 수업에서 통역 발표를 하면 이런 평가를 받았습니다. "민식씨가 한 통역이 연설 원문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이건 사실 칭찬이 아니에요. 연사의 본래 의도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뜻이거든요. 연사의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나도 모르게 윤문을 하고 각색을 했어요. '이렇게 하면 이야기가 더 재미날텐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래서 통역사를 그만두고 PD가 되었습니다. PD 면접에서 묻더군요.

"김민식씨는 공대를 나와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는데, 전혀 관련없는 피디라는 직종을 선택한 이유가 뭡니까?"

"저는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합니다. 한 사람을 만나면 한 사람을 웃기고, 열 사람이 모이면 열 사람을 웃깁니다. 제게 기회를 주시면 4천만 시청자를 한번 웃겨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김민식씨 안 뽑을 건데?"

"그럼 그냥 지금처럼 가족이나 친구들을 웃겨주며 살겠습니다."

예능 PD로 입사해 10년을 일했습니다. 시트콤을 만드는 순간 순간이 다 즐거웠어요. 월급날마다 그랬어요. '나는 취미 생활을 즐길 뿐인데, 돈도 주네?' 어느 순간, 관찰 예능이 뜨더군요. 버라이어티 쇼보다 스토리텔링의 색깔이 강한 드라마타이즈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예능에서 시트콤의 영역은 점점 줄었어요. 결국 나이 마흔에 드라마 PD로 전직했습니다.

드라마국으로 옮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10년 전 MBC 드라마는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조직이었어요. 그만큼 기존 구성원의 자부심이 강했지요. 예능 출신 딴따라를 별로 반기지 않더군요. 어느 드라마 선배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니?"  

같이 일하는 후배에게는 이런 말도 들었어요.

"선배가 드라마를 알아요?"

 

드라마 연출이 만만하다고 느낀 적도 없고, 드라마를 감히 안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다만 어떤 선택을 할 때, 나의 기준은 하나입니다. '재미있을까?' 답이 Yes라면 그냥 한번 해봅니다. Why not? 짧은 인생,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기에도 빠듯한데 굳이 남 눈치까지 살필 이유는 없잖아요? 그게 유럽에서 만난 가인들에게 배운 삶의 자세이자 딴따라의 자세입니다.

 

진로 특강에 가서 했던 얘기로 마무리할게요.

"여러분, 직업은 꿈이 아니에요.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피디가 되는 건 꿈이 아니에요. 그 직업을 통해 무엇을 하느냐가 진짜 꿈이에요.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변호사가 되어 정의를 실천하고, 피디가 되어 재미난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게 진짜 꿈이에요. 의사가 아니라도 아픈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길은 있어요. 변호사만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건 아니에요. 피디가 아니라도 이야기를 만들고 나눌 수 있어요. 블로그도 있고 팟캐스트도 있고 유튜브도 있어요. 개인이 미디어를 만들기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방송사 PD라는 직업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록 연출은 못하고 있지만,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건, 매일 거리 공연을 나가는 거예요. 책을 내는 건, 베스트 앨범을 내는 것이고요. 이제 여러분을 모시고 라이브 공연도 하고 싶네요. ^^

 

1월 21일 토요일 오후 1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베스트앨범 발매 기념 단독 라이브 콘서트~^^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홀(경복궁역 2번출구)에서 열립니다.

(네이버나 다음 지도에서 '참여연대'를 검색하세요.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9길 16)

신청해주신 분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70명 인원이 다 차서 선착순 접수 마감했어요.

신청하신 분들은 1월 21일 토요일, 광화문 참여연대에서 뵐게요!

 

1월 21일에 만나요!

 

(다음 이야기, '진짜 딴따라 김태호PD'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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