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에서 자라며 남중에 남고를 다닌 저는 남학생 위주의 문화에 익숙해있었어요. 심지어 대학까지 공대를 나와서 여학생과 일상적인 접촉을 가져본 적이 없지요. 이성과의 교류에 있어 쑥맥인 제가 외대 통역대학원에 갔더니 사방이 다 여자더군요. 한영과 신입생 40명 중 남자는 겨우 다섯 명, 절대 다수가 여학생이었어요. 게다가 통대 여자들은 어쩜 그리 하나같이 예쁘고 똑똑하던지... 여자아이들이 빛이 나는 것 같았어요. 자습실에 앉아 공부하다보면 옆자리에 여학생이 앉는데요. 어쩌다 팔꿈치라도 스치면 한동안 가슴이 쿵쾅거려 숨도 못 쉴 지경이었어요. 예쁜 친구가 보이면 자꾸만 눈길이 가고, 몰래 훔쳐보다 눈이 마주치면 얼굴이 빨개지고. 겁이 덜컥 났어요. '이러다 나, 변태라고 소문나는 거 아냐?'
어제 글에서 무서울수록 웃는다고 했는데요. 여자 앞에서는 부끄러울수록 웃겨야합니다. 부끄럽다고 입 다물고 몰래 훔쳐보면 더 이상해요. 예쁜 여자가 있으면 가서 말을 걸고 웃겨야 합니다. 대화중이라면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게 어색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여자의 가장 예쁜 표정도 볼 수 있어요. 여자가 가장 예쁠 때는 남자의 어설픈 농담에도 웃어줄 때거든요. 가끔 썰렁하긴 해도 나름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었는데요. 변태라고 소문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
동기 중에 김수연 형이 있었는데, 성실한 노력파라 재학 중에 벌써 이익훈 어학원에 출강하고 있었어요. 그 형은 가끔 알바거리를 가져와 반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어요. 학원에서 쓰는 토익 교재 문제 번역이나 해설을 맡겼지요. 토익시험이라면 이제 보기도 싫다고 손사레치는 친구도 많았지만, 저는 '공부도 하면서 돈도 벌고, 이 얼마나 좋은 알바냐'는 생각에 넙죽넙죽 받았습니다. 어느 날 수연형이 제게 묻더군요.
“민식아, 너 혹시 이익훈 어학원에서 강의해볼 생각 없니?”
그때 이익훈 어학원이 강남에도 분점을 내면서 한참 확장하던 시기였거든요. 토익문제 알바가 나름의 테스트였나봐요. 수연형은 제게, ‘너는 말을 재미있게 하니까, 학원 강사를 하면 잘 할 거야' 라고 하시더군요. 전 자신이 없었어요. 제가 믿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자신이 없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어학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반복해서 듣고, 소리내어 읽고, 문장을 암기하는 노력 없이는 늘지 않는다고 믿거든요. 난색을 표하자 형은, ‘학원 강사를 하면 짧은 시간내에 큰 돈을 벌 수도 있어’라고 하셨어요. 저는 당시 인생을 사는 데 많은 돈이 필요치 않다고 느꼈어요. 워낙 짠돌이라 쓰는 돈이 별로 없거든요. 돈은 적게 벌어도 좋으니 재미난 일을 하고 살자는 쪽이었지요. 결국 학원 강사보다 예능PD로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훗날 MBC 입사하고 처음 받은 월급은 영어 동시통역사 이틀치 일당이었어요. 그래도 이쪽이 좋아요. 돈보다 재미니까요.
지난 몇 년, 회사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았어요. 어쩌면 내게 드라마 PD로서의 기회는 끝난 게 아닐까? 드라마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그때 문득 수연형의 얘기가 떠올랐어요.
"너는 자신만의 확고한 영어 학습법을 가지고 있어 학원 강사로 인기가 많을 거야. 외국 연수 한번 가보지 않은 순수 독학파라면 뒤늦게 영어를 공부하려는 늦깎이 학생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거든. 유학파나 교포 출신 영어 강사도 많지만 내가 보기엔 니가 오히려 경쟁력이 있어. 니가 혼자서 영어를 공부한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거야."
수연형의 얘기가 떠올라 감히 영어 학습법에 대한 책도 쓰게 되었네요.
인생에서 인연이 재미있는게요. 하나하나의 점이 다 의미있는 선으로 연결됩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예요. 오늘 외워둔 하나의 문장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 사람과의 만남을 이어줄 지 몰라요. 점과 점을 선으로 연결하는 것은 하나의 계기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위의 온라인 서점 링크를 클릭하는 것도 하나의 점입니다. 클릭 몇 번을 이어 책구매라는 선을 만들어보세요. '과연 내가 영어 책 한 권을 외울 수 있을까?' 미리 걱정하지는 마시고요. 이어그리기를 할 때, 너무 멀리 있는 점까지 한번에 가면 그림에 디테일이 없고 힘이 없어요. 인생의 점을 이을 때, 너무 멀리 잇지 마시고요. 가까이 있는 점까지만 한번 더 연결한다고 생각하세요. 지금 이 순간은 온라인 서점의 링크를 한번 누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
이러다 책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장사꾼이라고 소문 나는 거 아냐?
(그 변명을 가지고도 또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을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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