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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로보파이낸스의 시대 몇 년 전, 이화여대에 출강한 적이 있어요. 방송 PD 지망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였는데요, 처음엔 조금 민망하더군요. '신문방송학 전공자 앞에서 공대를 나온 내가 과연 미디어 연출론을 강의할 수 있을까?' 그때 저의 절친이신 이강환 박사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님)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박사님은 제게 과천과학관에서 과학 강연을 한번 해보라고 하셨거든요. "엑? 저같은 딴따라가 천문학 박사님들 앞에서 강연을 하라고요? 쫄려서 어떻게 해요...ㅠㅠ" 그때 박사님의 말씀. "과학자들 앞에서 과학자가 강연하면 잘 안 듣습니다. '나도 다 아는 얘기인데 뭘...' 하면서요. 하지만 드라마 PD가 와서 '한국 드라마 속 SF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 다들 들을 겁니다. 그건 피디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2017. 2. 22.
아르바이트의 시대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살림) 소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은 어려서 늘 엉뚱한 말만 합니다. 공원 놀이터에서 놀다가 죽은 새를 발견한 아이들이 울기 시작합니다. 그때 왈, "집에 가져가서 구워먹자." 다들 기겁을 합니다. "죽은 새는 먹으면 안돼?" 이상해요. 치킨은 다들 잘만 먹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말하면 안 되는구나... 그래서 조용히 입을 닫고 삽니다. 사람들을 피하고 집안에서만 지내요. 히키고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가는데, 어느날 새로 오픈하는 편의점을 봅니다. 깨끗한 편의점의 공간에 매료되어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편의점 사원 교육을 받으며, 정해진 표정을 지으며, 정해진 인사를 하고, 정해진 말만 하며 난생 처음 사람들 속에서 편안.. 2017. 2. 21.
주식회사 대한민국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 한겨레 출판) 최순실 정국을 통해 드러난 한국의 현실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주식회사 대한민국', 아닐까요? 박노자는 한국의 정치 현실을 조폭 정치라 비유합니다. 대기업이 주문한 정책을 정치권이 힘으로 실행에 옮긴다고요. 조폭의 특징은 삥뜯기지요. 최순실이 삼성의 삥을 뜯은건지, 삼성이 국민연금의 삥을 뜯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주식회사는 주주들만 챙기지, 임금노예를 돌보지 않아요. '(주) 대한민국의 주된 특징이라면, (정말 악질기업답게!) 오로지 주주들의 배당금 극대화만을 위해 분투한다는 것이다. 피고용자, 즉 (주) 대한민국의 주주가 될 가능성이 없는 임금노예들은 그저 주주 배당금 극대화의 '재료'쯤으로 여긴다. 예컨대 청해진해운의 대주주나 임원이야말로 (.. 2017. 2. 20.
가슴 설렐 땐, Say Yes! 94년 가을, 첫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 도서관에 다니며 통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할 때 일입니다. 도서관 앞 게시판에 호주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PSAT 경시대회 공고가 붙어있었어요. 당시는 토플과 토익이 유명하지 PSAT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어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시험이었지만 끌렸어요. 경시대회 1등 상품이 호주 왕복 항공권에 3주간 체제비 지원이었거든요. 11월에 통역대학원 입시 시험(당시는 외대 통역대학원 한 곳 뿐이었어요.)을 봐서 떨어지면 해외로 떠야지 하고 있었어요. 그렇잖아요. 대학원 진학하겠다고 회사까지 때려치우고 나왔는데 입시에 떨어지면 창피하니까 얼른 국외 도피를 해야겠다... 그런데 12월은 겨울이라 유럽이나 미국은 추울테고 남반구로 가야지 했는데 어라? 호주 여행이 상품? 가슴이 .. 2017.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