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

아르바이트의 시대

by 김민식pd 2017. 2. 21.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살림) 

 

소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은 어려서 늘 엉뚱한 말만 합니다. 공원 놀이터에서 놀다가 죽은 새를 발견한 아이들이 울기 시작합니다. 그때 왈, "집에 가져가서 구워먹자." 다들 기겁을 합니다. "죽은 새는 먹으면 안돼?" 이상해요. 치킨은 다들 잘만 먹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말하면 안 되는구나... 그래서 조용히 입을 닫고 삽니다. 사람들을 피하고 집안에서만 지내요. 히키고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가는데, 어느날 새로 오픈하는 편의점을 봅니다. 깨끗한 편의점의 공간에 매료되어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편의점 사원 교육을 받으며, 정해진 표정을 지으며, 정해진 인사를 하고, 정해진 말만 하며 난생 처음 사람들 속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아, 이렇게 편의점 직원으로 살면 나도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있겠구나.'

 

'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부모님은 무척 기뻐해주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그대로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세상과 거의 접점이 없었던 예전의 나에 비하면 대단한 성장이라고 응원해주었다.

(중략)

내가 언제까지나 취직하지 않고, 집요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같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계속하자 부모님은 점점 불안해진 모양이었지만, 그 무렵에는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왜 편의점이 아니면 안 되는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하면 왜 안 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완벽한 매뉴얼이 있어서 '점원'이 될 수는 있어도, 매뉴얼 밖에서는 어떻게 하면 보통 인간이 될 수 있는 지, 여전히 전혀 모르는 채였다.'


(전자책 24퍼센트)

 

인도 배낭 여행 할 때, 현지인의 모습으로 일본 청년들을 많이 봤어요. 6개월 정도 일본에서 알바를 뛰면, 인도에 와서 6개월 정도 놀 수 있답니다. 1년에 반은 일을 하고, 반은 놀면서 산다고요. 바라나시의 카레집에서 만난 일본의 한 중년 아저씨가 '요즘 일본 청년들은 야성이 없어'라며 탄식하기도 했어요. 정규직을 꿈꾸지도, 창업을 꿈꾸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만 하는 세대를 이해하기 힘들다고요. 취업이 힘든 시대, 청년의 좌절은 분노의 형태로 터져나옵니다. 소설에 나오는 한 남자에 대해 주인공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피해자 의식은 강한데 자신이 기해자일지 모른다고는 생각지 않는 사고 회로를 갖고 있구나'

 

저는 이 대목에서 '일베'가 떠올랐어요. 불공정하고 부당한 사회로부터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이 사회적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은 알지 못합니다.

 

소설을 읽고, 우리나라에서도 편의점에서 근무하며 작가로 성공하는 인물이 나올까? 잠시 생각해봤어요. '대한민국 워킹푸어 잔혹사 - 인간의 조건'의 저자 한승태씨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주유소 알바, 편의점 알바, 꽃게잡이 어선, 돼지 농장 관리' 등 작가님이 해오신 숱한 일 들 중 어떤 일이 가장 힘드셨어요?"

"편의점 알바요. 돼지똥을 치우는 건 육체적으로는 힘들어도 감정의 소모는 없습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손님으로부터 받은 모욕은 퇴근하고 고시원에 돌아와 누워도 내내 마음을 괴롭힙니다. 마치 24시간 근무하는 것 같아요. 육체노동은 퇴근이 있는데, 감정노동은 끝이 없더라고요."

"어떤 손님이 특히 힘든가요?"

"저와 똑같은 서비스 노동자요. 식당에서 만원짜리 음식을 시키면, 돈 만원을 낸 만큼 대접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해요. 돈을 낸 대접을 못 받았다고 느끼면 종업원에게 화를 내지요. 그런 손님들에게 시달린 식당 종업원은 편의점에 와서 천원짜리 음료수를 사다 뭐가 잘못되면 바로 소리를 지릅니다. '서비스가 왜 이래?' 갑에게 시달린 을이 또다른 을에게 갑질을 합니다. 그런 일을 몇번 겪고 나면 차라리 산에 들어가 돼지 농장에서 일하는 게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편의점 인간'을 쓴 소설가가 아직도 편의점에서 일을 하며 글을 쓴다는 게 화제였지요. 일본이라는 사회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그런 환경이라 감정적 소모가 덜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창작도 가능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소설 '편의점 인간'은 직업관에 대한 세대차를 드러냅니다. 정규직 취업이 쉬웠던 부모 세대는 아르바이트만 하며 지내는 자식 세대가 이해하기 힘들겠지요. 꿈도, 희망도, 의지도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지금 현재 일본을 강타한 이 문제는 앞으로 한국에서도 일상화될 것 같습니다. '고용없는 성장' 시대니까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시대,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의미를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편의점 인간'도 그렇고 '대리 사회'도 그렇고, 을의 공간에서 주체적인 언어로 사유하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네요. 이런 작품들 속에서 희망을 찾습니다.

반응형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2) 2017.02.23
로보파이낸스의 시대  (2) 2017.02.22
주식회사 대한민국  (2) 2017.02.20
가슴 설렐 땐, Say Yes!  (6) 2017.02.17
이용휴의 '나를 지키며 살기'  (3) 2017.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