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꿈이 있는 삶이 좋은 삶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언제 성장할까요?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고난과 시련을 참고 꾸준히 나아갈 때 성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건 청춘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이 노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여전히 청춘이고요. 오늘은 청춘의 꿈을 중년의 나이에 이루어가는 멋진 이야기를 두 권의 책으로 만나봅니다.
<스피드> <리무진의 여름> (권석 / 넥서스)
두 권 다 청소년이 주인공인 성장소설입니다. <스피드>의 주인공은 집안 사정으로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간 고등학생입니다. 오래 사귄 친구들과 정든 서울을 떠나 동해안 바다로 이사를 하니, 우울합니다. 그런 주인공에게 수영부 활동이라는 기회가 옵니다. 그냥 재미 삼아 하는 게 아니라, 매일 훈련도 받아야 하고, 전국 대회 출전도 해야 합니다. 훈련의 양이 만만치 않아요.
‘수영부 선배는 훈련은 질보다 양이라고 했다. 양이 넘치면 질로 변한다고 믿었다. 그런 점에서 메기의 철학은 학교 앞 분식집 사장님의 신념과 닮았다. 사장님도 질보다 양이었다. 메기는 수영을 잘 못하는 것은 용서해도 훈련을 게을리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았다. 분식집 아저씨도 마찬가지다. 맛이 없는 것은 용서해도 양이 부족한 것은 용서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신봉하는 '양질 전환의 법칙' 탓에 매일 아침 기절 직전까지 발차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꿈을 좇는 사람은 양질 전환의 법칙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공대를 나와 글쓰기를 전공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퇴직 후에 매년 한 권씩 책을 쓰는 작가로 살 수 있는 건, 양질 전환의 법칙을 믿고 매일 아침 한편씩 꾸준히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 라이벌 고등학교와 수영부 대결이 펼쳐집니다. 평영, 배영, 접영, 자유형, 계영, 여러 차례 개인전을 하고 최종 승패를 따져 우승팀을 가리는데요. 객관적으로 불리한 팀에게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요? 선수를 냉정하게 A급과 B급으로 나누는 거죠. 상대팀 에이스가 출전할 경기에는 우리 팀의 B급 선수를 넣습니다. 나머지 경기에 A급 선수를 투입해요. 개개인의 승패는 관계 없어요. 11개 레이스 중에 6개만 따내면 팀은 이기는 겁니다.
저는 이게 인생의 필승전략이라 생각합니다. 다 이길 필요가 없어요. 이길 수 있는 판에 승부를 걸면 됩니다. 수능은 전과목을 다 잘해야 해요. 대학 입시를 망쳤으면 인생 종친 걸까요? 스무 살 이후에 진짜 승부가 펼쳐집니다. 좋아하는 과목, 자신 있는 과목 딱 하나로 승부를 걸면 됩니다. 저의 경우, 그게 책 읽기였어요. 대학 전공 성적은 포기하고 독서에 올인했고요. 그 덕분에 취업할 수 있었어요. 책을 읽어 논술과 면접 실력을 기르면 취업은 쉬워지거든요.
은퇴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잘 할 필요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 하나에 올인하면 됩니다. 독서와 글쓰기, 평생을 지속하고 싶은 일입니다. 부족한 점은 여전히 많지만, 질보다 양이라고 믿습니다. 꾸준히 읽고 쓰다 보면 언젠가는 더 좋아지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요.
<스피드>, 스피디하게 술술 읽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저의 회사 선배님이신 권석 작가입니다. MBC 예능 피디로 일하며 퇴근 후에는 문예 창작 아카데미를 열심히 다니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이분 대학 전공이 영문학이었고요, 젊어서는 문학청년이었어요. 하지만 MBC 입사하고 PD로 일하면서 작가의 꿈은 접었던 거죠. MBC 대박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최초 연출자였고요. 일밤의 <건강보감>도 연출하고 잘 나가는 피디였어요. 하지만 아무리 잘 나가는 피디라도 퇴직은 어김없이 다가옵니다. 은퇴를 앞두고 문득 젊은 날의 꿈, 작가가 되는 꿈이 떠오른 겁니다. 그래서 퇴근하고 저녁마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소설 창작반 수업을 듣습니다. 50대 나이에 작가 지망생이 되어 습작을 꾸준히 쓰시더니,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에 <스피드>란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하셨어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소설 속 주인공도 멋있지만, 작가의 삶도 멋있어요. 나이 50이 되면 이제 슬슬 직장에서는 물러날 준비를 해야 하는데요, 그 시기를 자신의 진짜 꿈을 향해 다시 한번 달리는 기회로 삼으신 거죠.
제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제작진으로 일할 때, <건강보감>을 연출하는 권석 선배님을 곁에서 지켜보았는데요. 정말 성실하게 일하시는 분입니다. 이분의 좌우명이 ‘아이디어는 엉덩이에서 나온다’에요. 그러더니 작가로서도 정말 성실하게 공부하십니다. 젊은 소설가 지망생들과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습작을 쓰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공부합니다. 그러더니 데뷔 2년 차에 두 번째 책을 내셨어요. <리무진의 여름>
<리무진의 여름>은 입시에 찌든 고교생 ‘임우진’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새엄마의 흔적을 찾아 미대륙을 횡단하는 이야기에요. 귀여운 AI 로봇 ‘울룰루’와 미국 스피릿으로 무장한 할머니 ‘베티’, 거리의 시인 ‘테일러’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며 광활한 미 서부의 대자연을 질주하는 성장소설입니다. ‘엄마 찾아 삼만리’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할까요? 평생 재미를 중시하며 살아온 예능 피디 출신 작가답게 이번 소설도 술술 재미나게 읽힙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새엄마는 어느 날 우진에게 나중에 미국을 함께 여행하자고 해요. 자동차로 미대륙을 횡단한다는 이야기에 아이는 겁이 납니다.
“길을 잘못 선택해서 엉뚱한 데로 가면 어떡해요?”
“그게 그거야. 잘못된 선택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곤 하지.”
이게 여행을 즐기고 인생을 즐기는 자세입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어요. 때로는 잘못된 선택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줍니다. 그걸 믿어야 해요. 퇴직하고 저는 혼자 배낭여행을 다니는데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고 믿습니다. 어차피 처음 가 본 나라, 처음 맛보는 음식, 처음 만나는 이들이에요. 완벽한 여행이란 없어요. 완벽한 인생도 없듯이. 다만 시도와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사람은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치 권석 작가님이 소설 공모전 응모를 통해 작가의 꿈을 이루어가듯이요.
작가의 말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집 나가면 고생이란 걸 알면서도 우리는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올 때 우리는 항상 달라져 있습니다. 길 위에서 한 뼘 더 성장해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행의 가치는 도착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믿습니다.’
<리무진의 여름>에서 제가 좋아하는 구절을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고등학생의 독백입니다.
‘사는 것도 피아노 연주와 마찬가지 아닐까. 지구에 81억 명이 살아도 단 한 명의 내가 존재한다. 가장 ‘나’다워지는 게 내가 사는 의미가 아닐까. 틀려도 돼. 아니, 어쩌면 맞고 틀린 건 처음부터 없을지도 몰라.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이 강요한 ‘가짜 나’가 아니라 ‘진짜 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것. 내 이야기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채워 나가 마지막 날에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것. 살아온 과정이 내 인생의 결과가 되는 것. 과정이 결과인 삶. 그게 내가 사는 의미가 아닐까.’
제가 방송사에서 일할 때 흔히들 예능 피디의 전성기는 30대라고 했거든요? 작가로서 권석 선배님의 전성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평생 일한 방송사에서 퇴직하고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거죠.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스무 살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저는요, 스무 살의 꿈이 평생 도서관에서 책만 읽으며 살아도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쉰두 살에 명예퇴직을 선택했고요. 이제 저는 매년 한 권씩 책을 냅니다. 책을 쓰고, 도서관을 다니며 저자 특강을 합니다. 이게 제 평생의 꿈이었거든요. 모쪼록 여러분도 스무 살의 꿈을 다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청춘입니다.
(권석 작가님과 인터뷰를 한 영상을 공유합니다. 피디로 평생 살다, 소설가로 인생 이모작에 도전하는 멋진 삶을 만나보세요.)
https://youtu.be/_XTKJqvqEeU?si=-Rfzd58NhwCPdG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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