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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0

부디 자중자애하시라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 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떴다. 병원 응급실에 아버지가 실려 오셨다고. 아침 산책 나가셨는데 웬 날벼락인가. 병원에 달려가니 팔순의 아버지가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었다. 아파트 정원에 열린 대추를 따겠다고 나무에 오르셨다가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떨어졌단다. 척추에 금이 가고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출혈이 심했다. 몇 달 간 병원 신세를 진 끝에 간신히 건강을 회복하셨다.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를 보고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팔순의 나이에 나무는 대체 왜 오르신 걸까?’ ‘대추나무 가지는 어쩌다 부러졌을까?’ 어느 날 아파트 승강기에 붙은 공고문을 봤다. ‘지하 주차장이 있어 아파트 마당의 표토층은 3미터에 불과합니다. 나무가.. 2020. 2. 18.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줄이는 공부 박사를 따고도 교수가 되지 못해 비정규직 (자발적) 인문학 강사로 살아가시는 고미숙 선생님. 대학에서 제자를 기르는 대신, 세상에 나와 수많은 이들을 만납니다. 청년백수부터, 중년백수, 노년백수까지 만나, '대학만이 지식을 탐구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믿음을 설파합니다. 전국 곳곳의 인문학 공간을 주유하던 고미숙 선생님은 어느날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새로운 모순을 목격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년층/청년층, 상류층/중하층 등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지만, 더 근본적인 장벽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분할이다. 강사는 영원히 강사고, 청중은 영원히 청중이다(무슨 해병대 정신도 아니고^^) (...) 무엇 때문인가? 간단하다. 우리 시대 교육이 읽기와 쓰기의 동시성이라는 이치를 외면한 .. 2020. 2. 17.
깊고도 넓은 정세랑 월드 정세랑 작가님의 오랜 팬인 저의 덕력을 시험하는 잣대가 나왔습니다. '저희는 동시대의 소중한 작가 한명 한명에 주목하여 관심과 찬사를 보내고자 합니다. 비평이라는 그럴싸한 단어가 아니라, '덕질'과 '아카이빙'이라는 단어로 말입니다. (...)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의 설레는 목소리가 일상에서 자주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들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쓰고, 흩어진 독자들은 연결되어 있는 마음으로 외롭지 않은 독서를 하길 바랍니다. 그럼 이제 좋아하는 것들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먼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작가 덕질 아카이빙 잡지, [글리프]입니다.' (서문 중에서) 아, 좋네요. 이런 시도.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의 설레는 목소리, 저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 물어봅니다. "요즘 뭐가 좋아.. 2020. 2. 14.
존댓말로 글을 쓰는 이유 오랜 만에 질의응답 시간입니다. 방명록에 올라온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 유투브로 PD님 만나 블로그까지 넘어왔더니 보물창고가 따로 없네요 ! :D 감사합니다. 매일 글을 쓰고계시는데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어요 ! 피디님은 글을 다 존댓말로 쓰시는데, 많은 독자들을 염두하셔서 그러신거겠죠? 그렇지만 상대방을 의식해서 글을 쓴다면 나의 생각이 덜 솔직하게 나타나지지는 않을까요? 저는 블로그 글이 약간 하루의 일기같아서 반성도 있고, 원망도 있고, 자랑도 있고.. 그런 편인데 그런 제 이야기를 공개적인 어투로 쓰기는 어딘가 모르게 민망스럽더라고요. 누가 읽게 된다는 것에 부끄럽고. 피디님 블로그 글들은 일기장같으면서도 존댓말이면서도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서 쓰시는 것 같아서 신기합니다- 앞으로도 솔직.. 2020.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