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조카의 숙제를 도와준 적이 있다. 모둠 아이들이 관심있는 직업인을 만나 인터뷰하는 게 과제였다. 방송사 드라마 PD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해서 역삼동까지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초등학교 6학년 진로 탐색 과제인데, 스마트폰으로 인터뷰를 찍고 편집해서 동영상으로 과제를 제출한다기에 혀를 내둘렀다. '요즘 아이들 정말 대단하네? 나는 PD가 되기 전에는 동영상 편집은 커녕 촬영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보니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아이들이 셋이었다. 이런 인터뷰를 굳이 카메라 3대로 찍나? 나중에 편집하는 게 더 힘들텐데?


찍는 아이들이 서 있는 위치를 보니 인물 사이즈의 차이가 없어 편집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굳이 3대를 돌리자면, 카메라 한 대는 좀 떨어져서 풀샷으로 질문자랑 나랑 둘을 같이 찍고, 바스트 샷을 찍는 친구는 좀 더 다가와야하고, 질문자를 찍으려면 90도 각도 반대편에서 찍어야할텐데, 셋 다 같은 위치, 같은 거리에서 찍고 있었다. 어떻게 편집하려고 저러지? 조카의 말에 의문이 풀렸다.
"삼촌, 얘들 스마트폰으로 게임해요!"


알고보니 촬영은 한 명만 하고 나머지 둘은 촬영하는 척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좀 어이가 없었다. 바쁜 어른이 어렵게 시간을 내어 숙제를 도와주러 갔는데 이 녀석들이 게임을 하고 있네?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일까?


소설 '잠실동 사람들'에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교권과 공교육의 붕괴 위기는 과도한 사교육 때문이다. 학원이나 과외교사는 물론이요, 같이 놀아주는 태권도장 사범과 음악이나 미술 선생님은 다 돈을 받고 고용된 어른들이다. 그런 강남 아이들에게 나 역시 돈을 주고 부리는 숱한 어른 중 하나였던 것이다. (심지어 난 재능기부로 간건데! ㅠㅠ)


'잠실동 사람들'을 읽고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해법을 찾기 위해 집어든 책이 하지현 엄기호 선생님이 쓴 '공부 중독'이다. 아, 정말 명쾌하게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교육 과잉의 문제를 짚어낸다.

(발리 오기전에 산 책들~^^)

***** 다독비법 3.
좋은 책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읽어야한다. 관련 분야의 책이나,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다른 책을 찾아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독서, 이것이 다독의 또다른 비결이다. (쓰고보니 나야말로 진짜 공부 중독. ^^) 
###########


왜 우리는 공부 중독 사회가 되어가는가?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90세까지 사는 시대니 인생을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더 걸린다. 다만 문제는 모든 공부를 학교에서 하려는 것이다. 대학 졸업을 유예하고, 석박사 유학까지 더해서 끝없이 학생 신분으로 머문다.


한번 배운 것으로 90 평생 먹고 살 수는 없다. 기술의 발전이 너무 빠르고, 직업의 변화도 빠르다. 이제는 평생을 두고 시기를 나누어 배워야한다. 사회 진출은 좀 빨리 하고 일을 하다 40대 이후에 다시 공부해도 된다. 평생 공부에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다. 특정 주제 관련책만 이어읽어도 어지간한 학위 이상 가는 지식의 성취를 이룬다.


경쟁 중심 교육 시스템 속에서 공부는 균질화되고 모두가 정답에 목을 맨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기존의 정답에 집착하기보다 오답도 무릅쓰고 새로운 답을 찾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 남을 앞서는게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는게 진짜 공부의 목표다.


그날 나는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싶었다. 피디란 노는 직업이다. 예능 피디는 시청자와 놀아주고, 드라마 피디는 이야기를 갖고 논다.


처음 만나겠다고 연락한 후, 약속을 잡기가 힘들었다. 아이들마다 학원 일정이 다 달라서. 결국 그중 몇명은 학원을 빠지고 진로 인터뷰를 왔다. 간만에 학원을 빠지니 게임 할 여유가 생겼다. 학원 조리돌림에 지친 아이들에게 나는, 세상은 재미난 공짜 놀이터고 인생은 즐거운 모험이란 얘기를 하고 있었으니, 애들이 '뭥미?' 했을 거다. 무엇이 진짜 공부인지 우린 잊고 산다. 학교란 틀 속에 갇혀있으면 세상만사 사는 일이 다 공부란걸 모른다.


공부 중독,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책과 만나기를, 그리하여 아이들의 고통을 끝내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노후를 만날 것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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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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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라윈 2016.01.06 0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기승전염장이에요... ㅠㅠ
    끄더끄덕, 맞아맞아 하면서 글 읽다가 부러움으로 마무리가 되네요....
    어제부터 영하로 기온이 떨어져서, 따뜻한 나라의 수영장 옆 벤치가 몹시 부러워집니다....

    • 김민식pd 2016.01.06 0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자기최면이어요
      드라마 연출이 아니어도 좋다
      이렇게 하루하루 즐기면 되지
      하고 끊임없이 주문을 거는 중...
      일 중독자가
      일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애처로운 몸부림 ^^

  2. 조아하자 2016.01.06 2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히나 우리나라는 나이가 성공에 꽤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서 어떻게든 빨리 사회생활 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나와보니까 알겠어요. 학벌보다 성공에 더 영향을 많이 주는 요소가 나이라는 것을...

    • 옐로 섬머린 2016.01.07 0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민식PD님의 팬으로 늘 블로그를 방문하다 도저히 질문을 안 남길 수 없어 씁니다. 저는 군대를 다녀와 늦은 나이에 학교를 다녀 이제 졸업을 앞둔 서른 살 청년입니다. 대체 어떤 면에서 나이가 성공에 꽤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물론 회사에서도 똑같은 역량인데 나이가 어리면 더 선호하겠지만, 제가 여러 기관에서 인턴하고, 일 해본 결과 오히려 나이가 너무 어리면 능력보다 덜 대우받는다는 걸 알고 위로받았습니다. 저도 학벌이 의외로 성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걸 간접적으로 체험은 했는데, 나이는 어떤 의도에서 말씀하시는 지 너무 궁금해서 글 남깁니다.

    • 조아하자 2016.01.07 0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정신장애인 인데 장애때문에 몇년을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나이가 다른사람보다 많은 편이고 장애가 있다보니 회사를 늦게 입사했는데 진짜 어렵게 들어간 회사인데도 4대보험 안되고 밥값까지 떼이면서 일합니다. 솔직히 우리 회사 다니면서 비전이 보이질 않아요. 다른사람 돕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직업인데 우리 회사는 그런 부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시키는대로 해야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