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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2016-5 한국이 싫어서

by 김민식pd 2016. 1. 9.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를 드디어 읽었다. 음, 역시 재미있다. 두번 연속 성공이면 이제 전작읽기 돌입이닷!


*****다독비결 5
대학 시절 스티븐 킹의 전작 읽기에 도전한 후,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늘 그의 모든 작품을 읽으려한다. 물론 실패한 작가도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 평생 500권의 책을 낸 작가를 어떻게 당하나. 인생을 걸고 쓰는 작가가 있는데 독자로서 작가가 쓴 책은 다 읽는게 예의다. 전작 읽기, 다독의 또다른 비결.


(2016-4 Full Dark No Stars는 독서일기가 아닌 영어 스쿨에 있습니다. 한권 빼먹은 거 아니에요. ^^)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를 읽다보니 '뉴 논스톱' 얘기가 두 번 정도 나온다. 소설 속 주인공 계나는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이민을 떠나는데, 처음 가서 묵게 되는 곳이 유학생 셰어하우스다. 그곳의 분위기를 묘사하면서 청춘 남녀가 함께 지내는 곳이지만 '논스톱' 같은 분위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속에서 나의 연출 데뷔작을 만나니 무한한 영광이다. ^^ 소설 속에서는 논스톱이 무슨 청춘의 이상향처럼 언급된다. 그립다, 논스톱 만들던 시절...


2000년 당시 '뉴 논스톱'의 주시청층은 중고생이랑 주부였다. 남자 중고생들은 양동근을 짝사랑하는 장나라에 열광했고, 아주머니들은 박경림을 남몰래 사모하는 조인성을 보며 가슴앓이를 했다. 그 시절 중고생들은 대학만 가면 논스톱 같은 생활이 펼쳐진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엔 다들 미래가 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도 그런 청춘 시트콤을 만들지 않는다. 대학이 더이상 청춘의 이상향이 아니다.


나는 '응답하라 1997' 시리즈가 요즘 시대의 청춘 시트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논스톱보다 훨씬 더 진화한 버전이다. 볼때마다 작가와 연출의 기량에 감탄한다. 정말 잘 만든다. 예능에서 버라이어티 쇼를 만들던 친구들이 이런 멋진 드라마를 만들다니. 다만 서글픈 것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이상향은 미래나 현재가 아닌 과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거도 시즌을 거듭하면서 점점 더 오랜 과거로 거슬러간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우리 시대 60대 이상 노인들은 70년대 회귀를 꿈꾸면서 유신 시대 정치를 불러냈고, 30대 청춘들은 90년대 복고를 꿈꾸며 TV속 판타지로 망명한다. 나? 나는 딱 10년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기자나 피디가 남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즐겁게 일하던 시절.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장강명 작가는 대중의 취향에 대한 촉이 뛰어나다. 요즘 사람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들의 열망이 어디에 있는지 예리하게 읽어낸다. '열광 금지, 에바로드'에서는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덕질의 세계로 뛰어든 이들을 그려내고, '한국이 싫어서'에서는 아예 물리적으로 한국을 떠나는 청춘들을 그려낸다.

 


현실엔 답이 없고, 이곳에서는 미래 역시 암울하다.


우울하다........
무엇을 해야할까, 이런 상황에서는.


작년 가을부터 계속 한국을 떠나 떠돌고 있다. 한국에서,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발리에서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서핑의 메카 꾸따 비치로 가는 길에 컵밥집이 있다. 올해 1월 1일에 오픈한 집이다. 한국에서 온 젊은 커플이 운영하는데, 검게 거을린 한국인 서퍼 아가씨들이 많이 오더라. 영어도 잘 하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젊고 예쁜 한국 아가씨들이 이곳 꾸따 해변에서 서핑을 하며 산다. 그을린 정도를 보니 장기 여행 중이거나 장기 체류 중이다. 저들이 매일 파도를 타면서 씻어버리고 싶은 기억은 무엇일까? 저들도 나처럼 한국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나온 것일까?


저들의 눈에 나는 어떻게 보일까? 발리의 한국 식당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50대 아저씨.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486의 한 사람이면서, 오로지 자신의 아이에게는 아등바등 교육자본과 경험자본을 물려주겠다고 해외여행 데리고 다니며 책을 읽히는 그런 이기적인 맹렬 아빠?


문득 부끄러워진다.


다시 돌아가야겠다. 무엇을 하든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무책임한 어른이 될 수는 없다. 그런 한국을 만든 것도 내 책임일테니까.   


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엇이든 해보고싶다. 늘 그래왔듯... 일단 한번 들이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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